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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1)화 (6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1화

말끝을 흐리는 민지민의 태도에 마른침을 삼키는데 그가 미간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네?”

터무니없는 말에 그렇게 묻고 말았다.

아니, 먼저 말을 꺼낸 주제에 내기 내용을 생각 안 했다는 게 말이 되나?

혹시 고도의 심리전인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민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재미 없는 내기는 질색이란 말이죠. 양 헌터랑 여기 팀원들이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걸 골라야 할 텐데. 그렇다고 저번에 했던 걸 또 하긴 싫고.”

학교 체육 대회 종목 정하는 것처럼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답긴 했으나, 맥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닌지, 유제이와 권미래 역시 또 시작이라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러지 말고 양 헌터도 아이디어 내 볼래요? 너무 한쪽에 유리한 것만 아니면 고려는 해 볼 생각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뭐를 가져와도 양 헌터한테는 불리하겠지만.”

그는 그 말을 하며 하하, 웃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이 새끼, 웃는 얼굴로 사람 엿 먹이는 데 뭐 있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저 멤버로 저한테 내기를 제안한 것부터 공평한 게임은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그런가요? 뭐가 있지 않을까요?”

태평한 말에 화를 내려는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제가 아이디어 하나 내도 괜찮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문 쪽으로 향했다.

반쯤 열린 문 앞에 서 있던 우신은 천천히 방 안에 들어오고서야 문을 두드렸다.

우신은 미소 지으며 우리가 둘러앉아 있는 소파까지 느긋하게 걸어왔다.

그 모습에 지민이 입을 열었다.

“……우신 가이드가 여긴 무슨 일입니까?”

지민은 대놓고 못마땅한 얼굴로 다리를 꼬며 물었다.

우신은 어젯밤 기어코 지원을 데리고 내 방을 떠나며, 해야 할 일이 있어 대인전에 참관하지 못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다.

예고한 대로 경기장에서 우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이곳에 모습을 나타낸 건 내게도 의외의 일이었다.

우신은 지민을 똑바로 직시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와서 말이죠. 아이디어 필요한 거 아닌가?”

“우리가 이번에 하는 건 끈 뺏기가 아니라서 말이죠. 우신 가이드는 필요 없을 거 같은데.”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는 말이었다.

지민의 적대감에도 우신은 상관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바로 며칠 뒤가 원정인데. 지난번 같은 그런 야만적인 내기는 아무래도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럼 네가 제안하려는 건 뭔데.”

“왜, 있잖습니까. 괜찮은 내기 종목인 ‘그늘’ 말입니다.”

* * *

게이트는 통상적으로 주인을 죽이는 순간 클리어 판정이 나며 이후 공간이 무너진다.

판정이 난 순간부터 평균 20분 후에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그러니 그사이에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않으면 사망 처리가 된다.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게이트의 기본 상식이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물리계나 정신계 에스퍼는 그 기교의 폭이 비슷하다. 반면 감각계 에스퍼는 정말 별의별 능력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주영우만 봐도 그랬다. 제 몸을 발광시키는 능력자라니.

그와 같이 세계적인 감각계 에스퍼 중에는 클리어된 게이트를 유지시키는 자도 있다.

‘죽음으로 비로소 영생을 갖는다’.

일본계 미국인 알몬드 도고의 말버릇이었다.

그는 탁월한 전투 센스와 게이트를 유지하는 능력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S급 감각계 에스퍼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며 게이트와 에스퍼의 등장이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매뉴얼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국에 본적을 둔 S급 에스퍼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중에 도고도 있었다.

처음 한국에 생긴 게이트의 위치가 바로 현재 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커다란 센터의 현 부지 어딘가에 클리어된 채 유지되고 있는 게이트가 있을 거란 소문이 돌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센터 내에 게이트가 있었다면 14년 남짓 센터를 집으로 삼았던 내가 그걸 몰랐을 리 없지.’

아무리 클리어된 게이트라 한들 작은 파장은 남을 테고, 그럼 반드시 내가 느꼈을 것이다.

당시 도고는 소국가를 사들일 연금을 받으며 3년 가까이 한국에 머물렀다.

그동안 제 능력을 이용해 흔적을 남겼다.

당시 도고의 능력으로 박제된 게이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게이트를 통과하면 황무지나 보잘것없는 무너진 도시가 나오지만 간혹 황금이나 정제석의 원재료가 되는 에너지석이 산처럼 쌓인 곳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를 대비해 2군에 탄광 조가 있지만 안전하게 채굴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탄광에 집중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클리어된 게이트를 효용보다 제 기분에 따라 박제하는 도고를 보고 누군가는 ‘도고의 도 넘은 장난’이라 말했다.

때때로 도고에 의해 박제된 게이트는 관광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늘’이었다.

나는 서울 외곽에 자리한 터널의 입구에 섰다.

산턱 중심에 있는 터널의 입구를 따라 넝쿨 식물이 자라나 있었다.

‘뜨거워.’

이 근래 점점 날이 더워진다고는 생각했는데 대낮에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서 있자니, 더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 같았다.

길지 않은 터널이었다.

그 길이가 500m 남짓한. 심연을 닮은 터널 안을 바라보고 있자니 주먹만 한 반대편 출구의 빛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조금 더 또렷하게 보기 위해 이마에 손 그늘을 만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양하나 헌터님.”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 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았다.

현장 요원이었다. 그는 터널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천막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룰 설명이 시작될 거 같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주억였다.

‘그늘’.

그건 센터에 등록된 이름은 아니었다.

등록된 이름은 도고의 작품을 뜻하는 D를 붙여 ‘D5-늪’으로, 그 이름처럼 늪을 형상화한 게이트였다.

정확히는 하우스형으로 분류되는 게이트지만, 어둡고 끝이 없는 공간에는 사람의 악몽을 먹고 사는 머드 웜이 몬스터로 등장했다.

시야를 앗아 가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땅을 움직여 먹잇감의 체력을 빼앗고 정신을 붕괴시키는 머드 웜의 공격을 막기란 쉽지 않아 A급 난이도로 측정되고 있다.

그런 늪은 현재…….

“아카데미를 나왔으면 한 번쯤 와 봤겠지?”

민지민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도고의 작품들이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은 사실이나 관광객의 입장이 허락된 건 기이한 형태로 열려 있는 입구까지만이다.

게이트의 주인만 사라졌을 뿐 그 안에는 여전히 잔여 몬스터가 존재했기에 헌터나 센터의 출입 허가를 받은 이만 입장이 가능했다.

늪의 경우 센터 주간으로 운영 중이기 때문에 아카데미생들의 수업 장소로 이용됐다.

물론 나는 아카데미 정규 과정을 속성으로 마치고 센터에 입사해 경험한 적 없다만, 아마 양하나는 다르겠지.

나는 마지 못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 모습에 민지민이 씩 웃어 보였다.

“좋네. 몸으로 겨루지도 않고, 등급은 낮아도 양 헌터는 정신계니까 형평성도 맞는 것 같고.”

민지민은 상기된 얼굴로 마음에 드는 점을 하나씩 열거하다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 냈는지, 괜히 어른들 관심을 받는 게 아닌가 보네.”

비꼬는 투였지만 우신은 상관 안 한다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다문 입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강우신의 표정을 들여다봤다. 좀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 * *

사무실에 불쑥 나타난 강우신이 이 그늘을 말하고 나서부터 어째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민지민은 곧바로 소명을 통해 아카데미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학생들의 수업 장소로 활용되는 곳이었기에 이용 허가를 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말로 구슬렸는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허가가 떨어졌다.

그 이후는 지금 보는 그대로였다. 소명은 현장 팀 몇 명을 붙여 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어제 대련으로 생긴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상태로 그늘 안에 들어가게 생겼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그늘 입구로 향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은 유제이와 권미래 그리고 강우신이 그곳에 있었다.

유일한 사복 차림의 민지민이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다 모였으니까, 입장 전 간단하게 한 번만 더 룰을 정리하고 들어갈까요?”

“…….”

혼자 편안한 옷을 입은 채 안면 가득 꽃이 핀 듯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게 누가 보면 소풍 나온 줄 알겠다.

“룰은 간단해요. ‘그늘’을 먼저 빠져나오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저를 포함한 관리자들은 반대편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카데미생들이 빠져나오는 데 평균 사흘 걸린다고 하니 여러분은 그보다 빠르겠죠? 해지기 전에 다시 보길 바라요.”

그의 말에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해 지기까지 7시간도 남지 않았으니 조금은 빠듯했다.

그의 말에 유제이와 권미래가 들어갈 준비를 마친 듯 장비 정비를 마무리했다.

그 모습에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다 좋은데 꼭 2인 1조여야 하는 겁니까?”

내 물음에 두 사람과 우신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민지민은 잠시 눈을 굴리다 입을 열었다.

“뭐, 여기 있는 세 사람은 프로니, 게이트 주인도 없는 A급 게이트를 어찌어찌 빠져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민은 말끝을 늘리다 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맺었다.

“양 헌터는 아니지 않나? 내가 먼저 내기를 제안했다고 해서 오해하면 안 돼요. 양 헌터의 가능성을 좋게 봤을 뿐 아직 스스로 증명한 것이 없다는 걸.”

실력을 멋대로 재단해 버리는 말에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민지민은 곧바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참가하는 건 아무래도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우리는 제이랑 미래를 한 팀으로, 거긴 양 헌터랑 강우신 가이드를 한 팀으로. 이 얼마나 최상의 밸런스인가요?”

권미래는 A급 치유계 에스퍼로 상황 판단은 물론 격투가 가능한 인력으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유제이는 어제 있었던 대인전 때문인지 내게 앙심을 품은 듯하니 민지민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캐스팅이었다.

“그럼 입장은 10분 텀을 두고 들어가는 거로 하고, 순서는 동전 던지기로 정하죠.”

그는 손 위에 동전을 올리며 물었다.

“숫자? 그림?”

우신은 이 모든 상황을 내게 맡긴다는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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