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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0)화 (6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0화

* * *

탈의실로 와 상의를 벗자 배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게 보였다.

지원에게 에너지로 본인 몸을 보호하는 건 기본이라고 입 아프게 말했지만, 그렇게 한 방에 성공한 지원이 괴물인 거다.

양하나의 몸으로는 아무리 운용을 잘해도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형편없으니 방어하기도 쉽지 않다.

숨 쉬는 데 문제없는 거 보니 뼈는 멀쩡한 모양이었다.

내 몸을 미끼처럼 사용하는 건 그만둬야지. 이런 식이면 몸이 남아나질 않을 거다.

나는 그대로 옷을 마저 갈아입고 소 대리의 사무실로 향했다.

* * *

“왔어요?”

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에 익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민지민과 유제이, 그리고 지난번 훈련장에서 유제이를 데리고 간 죽은 눈을 한 긴 머리 여자까지.

소명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어 있는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그래서 제안이 뭐길래 익숙한 얼굴들이 이렇게 많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끈 뺏기 내기와 돔 이벤트로 이미 내가 가진 패는 전부 까발려진 거나 다름없다.

민지민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언제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제야 내게 접근해 오는 게 더 의아할 정도였다.

나는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앉아 삐딱한 자세로 그를 쳐다봤다.

민지민은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바쁜 사람들 모아 둔 거니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집공 팀의 체제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죠? 양 헌터.”

“그룹에 대해서 말하는 거라면, 알고 있어요.”

“그럼 쉽겠네요. 다음 주 중 파견 팀이 돌아오는 대로 집공 팀에서 두 그룹이 이천 게이트에 파견됩니다.”

“이천 게이트라면.”

“알고 있죠? 요즘 TV만 켜면 그 이야기니까.”

물론이다. 이천 북부가 게이트에 먹히는 바람에 게이트에 휩쓸린 사람들의 구조를 위해 센터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이 게이트는 아마 한국에 생긴 게이트 중 최대 규모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천 게이트 앞에 최초나 최대 같은 수식어가 붙고 있는 지금, 센터는 협회로부터 공동 작전을 제안받았다.

협회는 다수의 길드가 모여 만들어진 단체로 불과 6년 전만 해도 센터와는 비견할 수 없는 작은 민간단체였다.

그런데 6년 사이 많은 길드를 단결시키고 인지도 높은 에스퍼를 포섭하며 규모를 키웠다.

모든 게이트 클리어의 우선권은 센터가 쥐고 있기에 이번 게이트 공략 역시 센터의 독단적인 주도하에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예전과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이천 게이트에 휩쓸린 일반인의 수가 너무 많아.’

여러모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만큼 게이트 클리어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협회의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센터는 협회와 함께 이번 작전에 임하기로 했다.

센터 대표로 참여하는 에스퍼가 당연히 집공 팀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고작 두 그룹뿐이라니, 그 점이 의아스러웠다.

고민 깊어지는데 불쑥 지민이 말을 이었다.

“이번 주 내로 멤버 구성이 완료될 거 같은데…… 스타팅 멤버 구성에 제 입김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민지민은 제 아래턱을 매만지며 씩 웃어 보였다.

“그게 말씀하신 제안과 관련 있나요?”

내 물음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괜찮다면 양하나 헌터를 스타팅 멤버로 추천할까 해서요.”

“스타팅 멤버요?”

탐사 팀이 게이트의 조사를 마치면 그 내용에 따라 투입 멤버를 결정하게 된다.

탐사 팀이 조사를 했다고 해도 게이트 안에는 예기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이번 이천 게이트는 S급으로 추정되는 만큼 클리어하는 게 몹시 까다로울 것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런 게이트의 경우, 스타팅 멤버가 팀의 최대 전력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이번에 스타팅 멤버로 뽑힌다면 현 센터의 간판 헌터임을 입증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 자리를 구태여 저한테 제안하는 이유가 뭐죠.”

아무리 A급 게이트 클리어 전적이 있다 한들 스타팅 멤버로 추천하는 것은 과한 처사였다.

아직 이름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나는 일종의 미지수 전력이다.

그러니 스타팅 멤버에 나를 넣을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렇게 보고도 모르나. 내가 양 헌터 능력을 굉장히 높게 사고 있는 거.”

내가 미심쩍은 얼굴을 하자, 지민은 속고만 살았냐며 소리 내 웃었다.

능력을 높게 사기는 개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하는 건 여전했다.

다만 민지민과 달리 팀원들은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양옆에 앉아 있는 유제이와 긴 머리 여자의 얼굴에 그들의 생각이 훤히 드러났다.

유제이는 살짝 부어오른 뺨에 밴드를 붙이고 있었는데, 팔짱을 끼고 괜히 창밖을 쳐다보는 게 이 상황이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반면 긴 머리의 여자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아마 권미래였나.

“역시 저는 잘 모르겠어요.”

때마침 권미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턱을 괴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고는 눈이 마주치자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비열한 경기, 잘 봤습니다.”

숨긴 무기를 휘두른 걸 말하는 모양이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네. 나는 그저 나직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말에 지민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 정말 고민되네요. 내가 아무리 인정한다 한들 팀원들의 의견도 중요한 법이니까.”

“…….”

“그래서 양 헌터한테 제안하는 거예요. 이 둘과 가벼운 내기를 해 예비 팀원들에게 실력도 증명하고, 스타팅 멤버도 되어 보는 게 어때요?”

영업 사원처럼 그는 일거양득할 절호의 기회라며 방긋 웃었다.

나를 위하는 척 말하지만, 아마 이번 일은 민지민이 유흥 삼아 벌인 일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걸 내걸어도 참가할 생각이 없어서요.”

당연했다. 나는 스타팅 멤버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곳에 없으니 말이다.

혹시나 해서 왔더니 순 영양가 하나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김 빠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지민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입을 열었다.

“내기에 걸린 게 뭔지 들으면 대답이 달라질 거 같은데요.”

“스타팅 멤버라더니, 그새 뭐가 추가됐나요?”

“양 헌터, 집공 팀에 올라오기 무섭게 라이선스 신청했다면서요?”

나는 일어나려다 말고 행동을 멈췄다. 민지민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정보실에서 무슨 정보를 열람하고 싶은지는 몰라도 보안 등급이 높은 정보를 열람하려면 집공 팀 라이선스만 한 게 없죠?”

‘이 자식…….’

민지민은 도로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소파를 향해 턱짓했다. 나는 머리칼을 헝클이며 자리에 앉았다.

“스타팅 멤버가 된다는 게 무슨 소리인 줄 알고 있죠? 집공 팀 멤버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헌터가 된다는 소립니다. 몸값을 올리는 건 물론이고 그런 라이선스? 발급이 문제겠어요?”

민지민이 성가신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판을 깔기 전 상대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온다.

절대로 지는 게임은 하지 않는 민지민의 필승법 같은 것이기도 했다.

민지민은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이 돈이나 유명세, 명예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찾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그것이 정보라는 걸 눈치챘다는 말이다.

감이 좋은 그와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는 건 위험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해이기만 한 제안은 아니었다.

‘내기가 뭔지만 알면 좋을 텐데…….’

몰려드는 고민에 자연히 생각이 많아졌다.

지민은 내 대답을 기다리듯 검지로 탁상을 톡톡 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침묵을 가르던 그 소리마저 뚝 끊겼다. 민지민은 지루하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검정 파일을 펼쳤다.

파일의 겉장은 그저 깨끗했다. 덕분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지민은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챈 듯 콧노래를 부르며 파일 안의 서류를 휙휙 넘겨 보았다.

“인간관계가 영 엉망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이 많은가 봐요.”

“글쎄요.”

“뭐, 정이든 뭐든 상관없지만 그런 건 우선 제 몸 하나 챙긴 다음에나 신경 쓰는 거 아닌가?”

지민은 파일을 소리 나게 덮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근데 내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라이선스는 물론 큰 힘 들이지 않고 내 사람을 지킬 수도 있어요.”

그는 내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검정 파일을 내 바로 앞 탁상에 내려 뒀다.

그 파일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굳이 열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 게 권력 아닐까.”

민지민이 샐쭉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

6년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리 긴 시간이라 여기지도 않았는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불쑥불쑥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얼굴을 해 보였다.

민지민 입에서 나오는 권력이라는 말이 이질적으로 들렸다.

나는 검정 파일을 집었다.

“권력이나 그런 건 모르겠고…….”

나는 그것을 열어 보지 않은 채 지민의 가슴께로 던지듯 내밀었다.

“그런 시답지 않은 말 안 해도 내기 내용은 들어 볼 생각이었어요.”

내 말에 지민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진작 말해 주지 그랬어요. 괜히 나쁜 생각 할 뻔했네.”

“…….”

내가 이 내기를 거절한다면 그는 내가 그룹에 포함되는 모든 길을 막아 실적을 쌓지 못하게 방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라이선스를 받는 것도 요원해질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나는 시선을 슬쩍 유제이 쪽으로 돌렸다.

내기의 내용이 무언인가에 따라 그가 쓴 에너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확히 내기 내용이 뭔가요.”

만약 또 터무니없는 걸 내민다면 그냥 거절할 생각이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패는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거니 말이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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