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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8)화 (5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8화

“하아, 하아…….”

지원은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일 정도로 크게 숨을 골랐다.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 운용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지원은 경기장 밖에서 숨을 고르며 아직 경기장 위에 있는 유제이를 올려다봤다.

유제이는 단상 끝에 서서 묘한 표정으로 지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섬뜩했던 에너지는 사그라들었지만, 조명을 등져 그림자 진 그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뭐 하는 짓이야.”

먼저 입을 연 건 유제이였다.

“왜 멋대로 무대 밖으로 나간 거야? 누가 그래도 된다고 그랬지?”

“…….”

유제이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어둡게 음영 진 얼굴 위로 화마를 닮은 두 눈동자만이 뚫어져라 지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원은 섬뜩함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 방법이 최선이었으니까. 들어가고 나올 때를 아는 것 역시…….”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잘도 지껄이네.”

유제이는 천천히 경기장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관리자는 시합 점수를 계산하기 위해 정신이 다른 쪽으로 쏠려 있었다.

유제이는 그 상황을 뻔히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지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 말이야. 여름이 끔찍하게 싫어. 날벌레가 기승을 부리니까 말이야.”

유제이가 다가온 만큼 지원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보다 유제이가 지원에게 닿는 게 더 빨랐다.

어쩐지 유제이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거 같았다.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죽여 달라 끈덕지게 들러붙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말이야. 화가 나 미치겠거든.”

유제이는 경기에서 그랬듯 아주 느린 동작으로 지원에게 손을 뻗었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너답지 않게 행동하면 더 죽여 버리고 싶어지잖아, 지원아.”

피하기 어렵지 않은 움직임에도 어쩐지 지원은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제이의 손끝이 가까워질수록 불꽃을 닮은 뜨거운 열감에 살갗이 익는 거 같았다.

지원은 움직이지 않는 몸 대신 에너지를 몸에 둘렀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유제이의 손끝이 지원의 목덜미에 닿으려는데, 유제이의 어깨너머로부터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제 상대로 유제이 헌터를 지목합니다.”

지원은 유제이의 얼굴을 빗겨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양하나 헌터?”

그 소리에 유제이의 손이 우뚝 허공에서 멈췄다.

* * *

타이머가 울리기 무섭게 나는 곧장 경기장으로 달렸다.

멀리서 느껴졌던 기묘한 에너지의 흐름에 이끌리듯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무엇보다 지원이 걱정됐다. 유제이라면 이런 식의 승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었다.

멀리 지원과 마주 선 유제이의 등이 보였다.

“제 상대로 유제이 헌터를 지목합니다.”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무승부이니 유제이 헌터를 지목해도 아무 문제 없겠죠?”

나는 관리자를 향해 물었지만, 시선은 두 사람에게서 떼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요?”

관리자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인전은 등급과 능력 계열에 따라 대결 구도를 짠다.

유제이가 그랬듯 상대를 지목하는 일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같은 계열과 등급끼리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나 같은 낮은 등급 에스퍼는 미치지 않고서야 전투계 에스퍼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리자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내게 확인하듯 되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유제이를 바라봤고, 그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긴 관리자는 곤란하다는 듯 유제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무승부임으로 지목은 룰상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연이은 경기는 유제이 헌터에게 무리가 있을 듯하여…….”

꿈쩍 않고 나를 보고 서 있는 유제이의 모습에 관리자가 그 대신 거절하려 들었다.

나는 관리자의 말을 끊고서 불쑥 유제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쪽은 어때.”

“…….”

어느덧 경기장 중앙까지 걸어온 나는 조명 아래에 서 있었다.

조명 덕에 검정 머리칼이 보기 좋게 빛났다.

“나랑 해 보고 싶다며.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는데.”

나는 괜히 유제이를 자극하기 위해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듯 기지개를 켰다.

볼 때마다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던 유제이였지만, 지금은 미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긴 끝에는 거의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으니 그의 성격상 웃을 수 없었겠지.

그런 상황에 정신계 헌터의 지목이라니…….

저런 타입은 헌터 생활을 하는 동안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만나 봤다.

아마 유제이라면 보란 듯 내 지목을 받아들일 것이다.

예상대로 유제이는 지원을 완전히 등지고 가뿐히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미소를 안면 가득 띠며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재밌어. 재밌다고.”

투지가 가득한 웃음이 얼굴 가득 떠올랐다.

관리자는 포기한 듯 각자 위치에서 준비하라고 손짓했다.

나는 허리를 비틀며 스트레칭을 했다. 몸을 풀면서도 꼼꼼하게 경기장의 규격과 바닥 재질 등을 확인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싸움은 내게 독이었다.

지난번 끈 뺏기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그땐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보다 공간도 훨씬 좁을뿐더러 이용할 상대도 없었다. 오직 경기장 위에 선 유제이와 나, 두 사람의 시간이었다.

주위를 살피던 내 눈이 유제이와 마주쳤다. 그는 땀이 식지 않도록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고 있었다.

장난기 묻어난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무언가 고심하는 얼굴이었다.

뭘 고민하는지는 몰라도 그와 내 스태미나 차이는 어마어마했기에 그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관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몇 차례나 더 상대를 바꿔도 좋다고 말하는 걸 세 번쯤 거절하고야 유제이와 나란히 마주 설 수 있었다.

유제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어?”

뜬금없는 물음에 내가 되물었다.

“뭘.”

“내가 아까 지원이 죽이려고 한 거 말이야.”

점심 메뉴를 말하듯 일상적인 어투로 잘도 그런 끔찍한 말을 뱉어 냈다.

무언가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딴 걸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허탈한 숨을 뱉어 내고는 답했다.

“몰랐어.”

내 대답에 유제이는 그럴 리 없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타이밍 좋게 경기장 밖으로 나가 경기를 끝낸 지원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잠시, 지원을 따라 단상 아래로 내려가는 유제이의 뒤통수를 보자마자 그가 내게 보여 준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피떡이 돼 죽은 지원의 모습 말이다.

유제이는 나와 처음 만난 날에도 경고하듯 제 머릿속 이미지를 재연한 놈이었다.

나는 유제이를 바라보며 질린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단지 너라면 네 계획을 완수하려 들 거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내 대답에 유제이는 그제야 고심하던 문제의 답을 찾은 듯 웃었다.

깔깔, 괴이한 소리를 내며 웃던 유제이는 낮은 탄성과 함께 내게 시선을 맞춰 왔다.

“아, 나 이제야 알겠어.”

“…….”

“너구나. 우리 지원이한테 헛바람 넣은 게.”

* * *

경기장에서 내려온 지원은 땀이 식자 급격히 체온이 낮아진 탓에 커다란 담요 한 장을 둘렀다. 그러고는 곧장 2층 관객석으로 향했다.

유제이의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양하나 헌터의 조언을 떠올려 겨우 경기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덕분에 큰 부상은 면했다.

다들 타이머가 끝날 타이밍을 노린 작전인 줄 알겠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도망’만 생각했다.

그러니 무승부로 끝난 건 어디까지나 운이 따라 준 결과였다.

“…….”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도 유제이의 눈빛은 여전히 자신을 죽일 듯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그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만약 거기서 양하나 헌터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정말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유제이가 양하나 헌터와의 대인전을 수락하며 상황이 정리됐다.

지원이 그녀를 본 건 고작 며칠에 불과하지만, 실력이 과장됐다는 소문과 달리 범상찮은 사람이란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멀쩡히 능력을 운용한 것만 봐도 그랬다.

이건 모두 양하나 헌터의 덕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도움 준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려 했는데, 또다시 신세를 졌다.

지원은 걸음을 서둘렀다.

양하나 헌터가 자신을 위기에서 번번이 구해 준다는 건 지나가던 세 살배기도 알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모습만큼은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장 위에 선 양하나 헌터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머지않아 지원은 2층 객석으로 연결된 문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 앞에 낯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지원은 그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 * *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관리자는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타이머를 재가동시켰다.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타이머의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유제이는 시작부터 손가락 마디마다 에너지를 둘러 끝이 날카로운 너클을 만들어 냈다.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객석에서 볼 때도 박력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실제 마주한 유제이의 에너지는 훨씬 대단했다.

창창한 후배가 생겼다고 좋아하기에는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성시현일 때는 쉽게 근육이 붙고 몸이 내 마음대로 잘 움직였다.

반면 지금은 조금만 운동을 게을리해도 금방 근육이 빠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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