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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7)화 (5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7화

그는 경기장에 오른 후로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기에 경기 시작과 동시에 무섭게 공격을 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유제이는 아주 냉정한 눈을 하고 있었다.

침착한 눈빛으로 지원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는 모습이 마치 먹이를 포착한 맹수와도 같았다.

“힘만 믿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쪽일 줄 알았더니…….”

그의 가벼운 행동거지가 은연중 선입견을 만든 모양이다.

낭패였다. 당연하지만 침착한 쪽보다는 흥분한 쪽이 상대하기 수월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 때쯤 유제이가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어 보였다.

“뭐야, 역시 여전하네.”

“……뭐?”

유제이는 그 말과 함께 빠르게 지원과 거리를 좁혔다.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 덕분에 겨우 한 발 내디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손 뻗으면 상대에게 닿을 위치까지 이동했다.

지원이 놀랐는지 허리를 뒤로 젖혔다. 다행히 그의 손에 잡히진 않았다.

유제이는 허공을 꽉 쥐었다. 그가 주먹을 쥐기 무섭게 쿵 하며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손아귀 안으로 에너지를 발산해 폭발시킨 것이었다.

피하지 않았다면 지원의 머리통이 있었을 자리였다.

아무리 봐도 발전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된 에스퍼라고 보기 힘든 에너지 컨트롤이었다.

유제이는 몸을 피한 지원을 눈으로 좇더니 쉴 틈 없이 따라붙었다.

그는 주저 없이 지원의 급소를 노렸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매서운 주먹질에 맞부딪힌 살의 파열음만 경기장 가득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영웅의 타이틀은 단순히 강한 에스퍼가 지니는 게 아니다.

화려한 외모나 강렬한 공격 스타일 등 스타가 되는 에스퍼는 그 쇼맨십부터 남달랐다.

예상보다 더 치열한 육탄전에 경기장을 둘러싼 에스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먼발치에서 보기에는 일방적인 무차별 폭행과 다를 게 없었다.

머리를 숙이고 몸을 한껏 웅크려 최대한 대미지를 줄이는 지원의 모습에 괜히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

하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6일 동안 노력한 끝에 지원은 편안하게 에너지 운용을 할 수 있게 됐다.

내내 붙잡고 있던 골치 아픈 일이 우신의 도움으로 겨우 해결된 거다.

그 사실에 스스로의 무능함을 자각하게 됐지만 그런 감정에 매몰될 시간도 아까웠다.

이후 지원이 깨어난 뒤에도 우신은 끝까지 그를 내 방에서 직접 데리고 나가겠다며 되지도 않는 오기를 부렸다.

덕분에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지원에게 가르친 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었다.

지원에게 두 가지만은 꼭 기억하라고 당부하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우신이 입을 열었다.

“유제이 헌터를 상대하는데 정말 그걸로 괜찮을 거 같습니까?”

나는 그 물음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당연하죠. 이거면 충분해요.”

무차별적인 공격 끝에 유제이는 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에너지를 응축시켰다.

손가락 마디 위로 들러붙어서 뾰족한 형태가 된 에너지는 그의 주먹을 보다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건 흡사 너클을 떠올리게 했다.

빠른 템포의 육탄전으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든 후, 상대가 그에 익숙해질 때쯤 에너지를 담은 공격을 하는 것.

유제이가 대인전에 얼마큼 익숙한 사람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지원에게 가르친 두 가지 중 하나, 그건 상대가 무슨 짓을 하든 동요하지 않고 본인의 에너지 운용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유제이는 너클처럼 에너지가 불룩하게 솟은 주먹을 지원의 옆구리로 뻗었다.

방어하는 지원의 손조차 날려 버리고 갈비뼈를 부술 힘이었다.

유제이는 방어에 실패해 엉망이 된 지원의 모습을 상상하는지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제이의 예상과는 달리 지원은 그의 주먹이 제 옆구리로 향하게 내버려 두었다.

쿵-

커다란 충돌음이 들렸지만 지원의 옆구리는 멀쩡했다. 그걸 본 유제이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 모습에 큰 소리로 웃었다.

“쇼맨십이 흘러넘치는 건 유제이뿐만이 아닌가 보네.”

지원은 타고난 에너지가 남달랐다.

지금까지는 에너지 운용 시 오는 통증 때문에 커다란 모래주머니를 안고 움직이는 듯 힘겨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커다란 힘을 더 이상 아무런 페널티 없이 몸에 두를 수 있게 된다면…….

제 공격에도 끄떡없는 지원에 놀란 유제이는 그가 공격 자세를 취하자 아주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지원의 기에 눌린 듯한 모습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구경하던 에스퍼들이 아우성쳤다.

“뭐 하는 거야, 유제이! 미쳤어?”

“내가 너한테 건 돈이 얼만데? 정신 차려, 새끼야!”

끓어오르는 열기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정말 파이트머니를 걸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객석과 경기장의 거리가 멀지 않은 탓에 에스퍼들의 아우성이 대치 중인 두 사람에게도 닿을 것이었다.

유제이의 안색이 매서워지는 것만 봐도 그랬다.

적수로 보기는커녕 한참 깔보고 있던 지원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자존심이 엉망으로 구겨진 모양이었다.

유제이는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꽉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뭔 짓을 한 건지 몰라도, 그래 봤자 내 눈에는 밟힌 벌레가 꿈틀하는 꼴로밖에…….”

그가 지원을 향해 모욕적인 말을 읊조리는 순간, 무언가 유제이의 왼뺨을 긁었다.

유제이는 하던 말을 삼키고 제 뺨을 긁은 것이 날아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면에 얕게 박힌 것은 에너지 볼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크기였지만, 그 형태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가속에 특화된 총알 모양, 바로 유제이가 주로 사용하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었다.

유제이는 조금 엉성하지만, 형태만큼은 제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그것을 바라보다 지원에게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지원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든 채 서 있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듯 작게 혀를 차는 지원의 모습은 유제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너 이 새끼가 감히…….”

지원은 유제이가 흥분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선 자리에서 반경을 넓히지 않고 방어만 해 오던 지원이 상대에게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유제이와 거리를 좁힌 지원은 그가 그랬던 것처럼 유제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맞은 만큼 돌려주려는 듯 급소를 노리는 주먹이 매서웠다.

평소 격투술에서 두각을 보이지 않았던 지원이기에 유제이는 그의 공격을 거뜬히 막아 낼 것이라 생각했을 거다.

“……윽!”

그의 예상과 달리 지원의 주먹이 무거웠는지 잇새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장내 가득 살이 맞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만 가득했다. 유제이가 지원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열기에 들뜬 함성도, 더 하라고 부추기는 목소리도 없이 장내가 물에 잠긴 듯 조용했다.

“…….”

나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소명은 현 집중 공격 팀에는 과거의 나와 같은 간판 에스퍼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테스트와 누적되는 기록들이 알게 모르게 이들 사이에서 서열과 규칙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매번 상위권을 차지하는 유제이의 승리는 그의 것만이 아니다.

아직 어떠한 그룹에도 소속되지 못한 에스퍼에게는 그의 승리가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유제이가 1등 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건 더 이상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그러니 그 피라미드를 부수는 존재의 등장은 그간 유제이의 기록 뒤에 숨어 왔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하찮게 여긴 이가 자신은 감히 넘보지도 않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니 말이다.

“……하.”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경기장 위에서부터 날카로운 살기가 뻗어 나왔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따끔하게 느껴질 만큼 유제이의 기세가 변했다.

그와 떨어져 있는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니 가까이 있는 지원에겐 엄청난 압박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지원이 빠르게 유제이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덕분에 무겁게 휘두른 유제이의 주먹은 그저 허공을 갈랐다.

전과 달리 느려진 주먹은 피하기 쉬웠지만, 주먹이 스친 바닥에 금이 갔을 정도로 위력이 강해졌다.

이미 충분히 매서운 힘이었는데, 아주 잠깐 사이 그 힘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 모습에 지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유제이는 보란 듯 천천히 입술을 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거야.”

유제이의 붉은 눈동자가 타오르듯 지원을 노려봤다.

지원은 마치 그 시선 안에 갇힌 사람처럼 굳어서는 꿈쩍하지 못했다.

유제이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자 그의 발이 닿은 바닥이 쩍 갈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한 회장이 울릴 만큼 힘주어 소리쳤다.

“정신 차려!”

쩌렁쩌렁하게 회장을 울리는 내 목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유제이는 방아쇠가 당겨진 총알처럼 지원에게 나아갔다.

지원은 굳어 있던 몸을 움직였다. 그의 바로 뒤는 경기장 밖이었다.

그렇기에 유제이의 입장에서 지원이 움직일 방향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타이머의 남은 시간을 보기 위해 전광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지원에게 가르쳐 준 나머지 한 가지.

그건 바로 죽을 것 같으면 도망가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핏줄이 울긋불긋하게 오른 유제이의 주먹이 지원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지원은 주저 없이 경기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경기장 밖. 정확히는 지원의 몸이 아직 공중에 떠 있는 순간, 3분의 끝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렸다.

지원의 두 발은 그 직후 바닥에 닿았다. 관리자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경기 종료, 경기 종료! 타임아웃으로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됩니다.”

지원이 무슨 이유로 제 몸이 엉망이 되도록 집공 팀에 붙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 팀에 있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면 위기의 순간에는 도망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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