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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5)화 (5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5화

옆에서 지켜보면 안 되겠냐는 하나를 방 밖으로 내보내고 우신은 좁은 방 안에 지원과 단둘이 마주 앉았다.

못마땅한 듯 팔짱을 낀 우신은 하나가 나간 이후로는 입을 꾹 다문 채 지원을 똑바로 바라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지원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우신과 단둘이 있는 게 불편한 듯 지원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우신을 대하는 자들은 대게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어떻게든 그를 이겨 먹으려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거나 지금의 지원처럼 온몸으로 불편함을 표출했다.

우신 역시 제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소문에 대해서라면 익히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소문 때문인지 그를 피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해명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편이 편하기도 했고.

‘에스퍼를 제물로 재각성한 괴물.’

어느 정돈 맞는 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분명 양하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오만하고 불순한 태도.

보통 우신의 앞에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에스퍼는 제멋에 사는 고위급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양하나는 약한 주제에 눈에 뵈는 게 없는지 그의 앞에서도 제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태도가 크게 거슬리지 않아 가만두었는데, 이 근래 양하나의 태도는 이상하게 그의 신경을 건드려 왔다.

우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는 간혹 한 번씩 시선이 마주칠 때면 묘한 얼굴이 됐다.

약간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어떤 흔적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가이딩할 때만큼은 눈앞의 있는 그를 온전히 봤다.

그리고 그건 우신에게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하든, 그녀가 아무리 날을 세우고 선을 그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양하나의 방에서 이런 영문 모를 놈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만…….

“…….”

우신은 지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 모습에 지원은 놀란 듯 딸꾹질했다.

우신은 그런 지원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지 셔츠의 소매 단추를 풀고 걷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이딩이 아니니 거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잡아요.”

우신은 제 손을 내밀어 보였다.

지원은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로 주저하다 우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문이 닫힌 이후로 방에서는 좀처럼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본 우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가 에스퍼의 길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가이드라고는 해도 아무에게나 그런 짓을 하진 않을 테지만, 어쩐지 걱정됐다.

우신을 부른 게 옳은 일이었는지 생각하며 손톱을 깨무는 그때, 방문이 열렸다.

나는 놀라 걸음을 멈추고 방을 보았다.

한 손에 재킷을 들고 나오는 건 우신이었다.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는 나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끝났습니다.”

“어떤가요? 가능하던가요?”

우신의 능력으로 좁은 길을 확장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내 가설이었다.

성공할지 아닐지는 그의 능력에 달린 일이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묻자 우신은 일순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제 목덜미를 매만지며 피곤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되는대로 시도는 해 봤습니다만.”

우신은 방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확인은 저 사람이 깨어난 뒤 직접 하는 게 가장 확실할 겁니다.”

지원은 아직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아마 급격한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고 잠든 모양이었다.

우신은 잘 모르겠다는 듯 답했지만, 어쩐지 지원의 평온한 모습을 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우신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한지원 에스퍼 몸 안에 양하나 헌터의 에너지가 느껴지던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 제가 잠시 만졌거든요.”

“만졌다고요?”

우신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긴장이 탁 풀려, 아무 생각 없이 답했는데 어감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해명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급히 말을 이었다.

“문제 파악을 위해서였어요. 아시다시피 신체 접촉이 에너지의 길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러니까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왜 이런 걸 우신에게 해명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양하나 후배가 왜 한지원 헌터를 돕는지는 비밀입니까?”

감정이 상한 얼굴이었다.

“…….”

지원의 문제 때문에 미처 그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어색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제야 그의 시선이나 숨소리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다시금 엉망진창인 부탁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

“다음에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주세요.”

급하게 대화를 매듭짓고 그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대충 마무리 멘트 같은 걸 뱉어 냈는데,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우신이 물었다.

“정말입니까?”

“네?”

정말이냐며 묻는 그의 눈이 지나치게 순진무구했다.

나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부탁이요? 네, 그럼요.”

“무슨 부탁이든요?”

“……가능한 선에서라면.”

방에 들어온 이후 좀처럼 풀리지 않던 인상이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우신은 마치 이런 순간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임시 가이드 말고 전담…….”

“가이드나 각인 관련된 건 제하고요.”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한 입으로 두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못 지킬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내 단호한 대답에 우신의 넓은 어깨가 눈에 띄게 처졌다.

꼬리 만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지는 걸 보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진 기분이 들었다.

제가 그렇게 행동하면 내 마음이 약해질 걸 알고 있는 듯 힐끔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이가 그랬다면 헛수작 부리지 말라며 방 밖으로 걷어차 줬을 텐데…….

문제는 그런 우신의 모습이 아주 싫지 않다는 거다.

가이딩 직후부터였다. 우신과 엮이면 머릿속에 안개가 끼듯 판단이 흐려졌다.

나는 마른세수하고는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전부 괜찮아요. 그러니까 다른 걸…….”

“그럼 말입니다.”

“…….”

마른세수하던 손을 얼굴에서 떼어 내는데 어느 순간 우신이 내게 한 뼘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난 양하나 후배가 ‘그’ 무리와 얽히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것도 들어주기 힘듭니까?”

“…….”

부탁을 들어주겠단 내 말에는 금방 얼굴이 펴졌다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원래부터 이렇게까지 표정이 다양했나 싶을 정도였다. 6년 새 사람이 달라진 거 같아 가끔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스러운 건 이런 순간이었다.

불쑥 진중한 얼굴로 말을 걸어올 때.

이럴 때면 20살의 후배 가이드 강우신이 아닌 현재의 강우신을 똑바로 대면하게 됐다.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조심스레 답했다.

“그건 부탁이 될 수 없죠. 제가 말한 부탁은 강우신 가이드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말하라는 뜻이니까요.”

우신은 내 말에 동요 없이 눈을 몇 번 끔뻑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럼 더더욱 들어줘야 할 거 같습니다. 이건 양하나 후배를 위한 부탁이 아닌 전적으로 나를 위한 부탁이니까.”

“…….”

“왜 계속 위험한 길만 골라 가는지. 꼭 나보고 그 꼴을 보라고 그러는 거 같아서…… 쉽사리 못 본 척할 수도 없고.”

우신의 입꼬리가 묘하게 흔들렸다.

“아슬아슬해 보여서 도무지 양하나 후배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부탁입니다.”

* * *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날이 밝았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마지막 테스트 종목은 대인전으로, 평소 훈련에 불참하던 그룹 소속 에스퍼들도 훈련장을 방문했다.

테스트를 위한 방문이라기보다는 대인전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

대인전은 이곳에서 하나의 이벤트였다.

등급이 높은 에스퍼일수록 게이트 중독 현상을 겪는 이들이 많다.

물론 강한 헌터들도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곤 한다.

그러나 몇몇 헌터는 몬스터를 섬멸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생전 느껴 보지 못한 강한 쾌감을 느꼈다.

그게 바로 게이트 중독 현상이었다.

‘나도 하루에 두세 개의 게이트를 주파했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게이트 중독자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사기도 했는데.’

하지만 중독자들과 나는 확연히 달랐다.

게이트 중독자들은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느끼는 타격감을 즐겼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 체력 증진이나 개인기 연마 같은 것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인전은 달랐다.

강한 힘이 맞부딪치고 때에 따라서는 기교를 발휘하며 치열하게 힘을 뿜어낼 수 있었다.

특히 집중 공격 팀의 대인전이라니.

게이트 중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벤트였다.

그런 내 생각을 뒷받침하듯 평소보다 상기된 에스퍼들의 웅성거림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출석 확인을 위해 관리자가 한 명씩 이름을 호명했다.

그리고 그때, 기다리던 이름이 불렸다.

“한지원 헌터.”

대답이 들리지 않자 여기저기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야유를 들었다. 완전히 내뺀 거라며 지원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청록빛의 작업복을 입은 지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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