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4화
* * *
“반드시 에너지 운용에 성공하도록 도와줄게요.”
나는 자신만만했던 과거의 내 입을 꿰매고 싶다 생각했다.
지원이 운용 시 느끼는 통증은 좁은 길에 대량의 에너지를 흐르게 하려 해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니 흘려 보내는 에너지 양을 줄이면 문제는 해결된다.
처음에 지원은 그 해결책대로 하면 운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들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에 나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는 얼굴로 답했다.
“흘려 보내는 양을 줄인다고 왜 총량이 줄죠? 그만큼 에너지를 흘려 보내는 속도를 늘리면 되는데.”
그제야 지원은 아, 라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생각 없이 힘껏 에너지를 길 안으로 흘려 넣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모든 행동을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난도가 높은 만큼 감 잡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
하지만 길어도 사흘이면 될 거라 예상했는데…….
지원은 집중력이 흐트러졌는지 소파 위에 드러누웠다.
“이게 정말 가장 간단한 방법 맞아요?”
6일 내내 고생하더니 이제 슬슬 내게 토를 달고 싶어지는 모양이었다.
‘진척이 없는 것치고는 오래 참았네.’
나는 쏟아져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는 단호히 답했다.
“간단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것조차도 못 하면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요. 그만큼 가장 기초가 되는 거란 말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매정하게 말해 버렸다.
혹여 기가 죽은 건 아닌지 슬쩍 쳐다봤더니 역시나 입술이 댓 발 나와 있었다.
나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내가 이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 내일이 유제이가 살인 예고를 한 날이었다.
내일 있을 테스트마저 참석하지 않았다가는 지원은 자동으로 퇴출당하게 된다.
반대로 이대로 참석했다가는 유제이의 계획대로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벼랑 끝이었다. 격려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해 봅시다. 요령 부릴 수 있는 일이 아니…….”
나는 말을 하다 말고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내 모습에 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하나 헌터……?”
“……요령.”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정신 감응 능력 덕에 지원의 문제를 확인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으나, 그 이상은 내 능력 밖이었다.
에너지의 길에 영향을 주는 건 가이드의 일이니 말이다.
물론 가이드가 하는 일은 대게 능력 사용 직후 연약하게 흔들리는 에너지 길을 복구하는 것이다.
지금 지원에게 필요한 건 좁은 길을 확장해 줄 재건축이었다. 그런 게 가능한 가이드를…….
나는 알고 있었다.
‘에스퍼의 에너지 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가이딩.’
물론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너지의 길에 상처를 내는 게 가능하다면 확장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우신과 말을 섞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는 일이 바빠 보고회 이후에는 좀처럼 훈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
밑져야 본전이라고, 지금 기댈 곳이라고는 그밖에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앱을 확인했다.
임시 전담이 된 이후로 강우신 가이드의 모든 스케줄을 확인 가능했다.
물론 그 역시 내 스케줄 확인이 가능하고 말이다.
오늘 날짜를 클릭하자 다행히 아무런 일정도 잡혀 있지 않은 게 보였다.
초조함에 다리가 떨렸다.
바로 며칠 전, 신경 꺼 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을 했다.
그러니 이제 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연락하는 꼴이 얼마나 웃길까.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자기도 멋대로 행동했으니까 나도 한 번쯤은…….”
나는 대뜸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원이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물었지만, 나는 그를 안쪽 방으로 밀어 넣었다.
“알려 준 방법으로 집중해서 운용하고 있어 봐요.”
그렇게 말하고 문을 쾅 닫았다. 나는 작은 심호흡 뒤 강우신에게 연락을 넣었다.
[양하나입니다. 잠시 시간 괜찮을까요?]
* * *
띵동-
초인종 소리에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강우신이 서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나머지도 나도 그를 따라 웃어 보였다.
“바로 오셨네요.”
“마침 근처에 있어서요.”
“……아, 마침.”
나는 고심 끝에 우신에게 문자를 넣었다.
혹시라도 그가 바쁘다거나 멀리 있다고 하면 과감하게 이 선택지를 버리고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를 보내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우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대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마치 이 근처에서 대기라도 하고 있던 사람처럼 재빨리 도착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을 텐데 고마워요.”
내 감사 인사가 새삼스러웠는지 우신은 잠시 말을 고르다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감사 인사는 문제를 해결한 후에요.”
그의 대답에 나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비켜섰다. 그 틈으로 우신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우신은 느린 걸음으로 들어서며 집 안을 둘러봤다.
그와 통화하자마자 지원이 어지럽힌 집 안을 치운다고 치웠는데, 아직 지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물론 그걸 숨길 이유는 없다만…….
나는 우신의 시선이 묘하게 지원의 점퍼가 걸쳐져 있는 의자에 오래 머문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 들어온 타인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곤이고 한지원이고 아무렇지 않게 들였는데, 이상하게 우신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제가 봐 줬으면 하는 게 있다고.”
우신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그와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은 방을 가리켰다.
“네. 저 방 안에 있어요.”
그는 내 손끝이 향한 방을 쳐다보더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를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설명하자면 긴데, 간추려 말하자면 에너지의 길을 조금 넓혀 주셨으면 해요.”
내 불친절한 설명에도 우신은 그러냐며 주저 없이 방문을 열었다.
그의 덩치가 큰 탓에 뒤에 선 나는 좀처럼 우신이 마주한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아마 서로 안면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을 잇는데, 방 안에 시선을 고정한 우신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말도 걸지 말고, 아는 척도 말라기에 그 이유가 뭘까 제법 고민을 많이 했는데.”
뜬금없는 말에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의 굳은 옆얼굴을 쳐다봤다.
우신은 내 시선을 느낀 듯 몸을 틀어 내가 방 안을 볼 수 있게 했다.
“설마 이런 이유 때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
각성 후 별다른 의식 없이 에너지 운용을 하다가 의식적으로 하려면 힘이 든다.
그 과정에서 혈압이 오르면 자연히 머리에 열이 올라 얼굴이 상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지원은 겉보기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랬기에 큰 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왜 하필 지금…….
강우신이 도우러 온 이 순간, 내 방 안에 있던 지원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거친 호흡을 삼키며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강우신 가이드님이 왜 여기에.”
지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우신은 낮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해명을 요구하듯 나를 바라봤다.
정말이지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당장 내일 한지원 에스퍼가 완벽하게 에너지 운용에 성공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그 과정을 ‘우연히’ 양하나 후배가 돕고 있었다, 맞습니까?”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을 우신은 냉정한 얼굴로 정리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그게 맞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쩐지 우신의 앞에 주눅 든 얼굴로 앉아 해명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지원은 내 뒤에 숨어 우신을 훔쳐봤다.
정말 ‘그’ 강우신이 맞는지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우신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한 번씩 아주 서늘한 눈으로 지원을 쳐다봤고, 지원은 놀란 토끼처럼 시선을 피했다.
나는 급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무 갑작스럽지만, 강우신 가이드가 에너지의 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요. 혹시 한지원 헌터를 봐 주실 수 있을까 해서 불렀습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네?”
당연한 질문인데도 우신이 이런 상식적인 질문을 하니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가 내 임시 전담 가이드라고 당연히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어떻게 회유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이런 상황에 놓이고 나니 내겐 우신을 회유할 수 있을 만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고만 있자, 우신이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양하나 헌터의 전담 가이드인 것도 맞고, 당신이 부탁하는 거라면 그게 뭐든 들어줄 용의가 있는 것도 맞습니다.”
대뜸 하는 말이 꼭 고백처럼 다가왔다.
내가 당혹스러움에 눈을 끔뻑이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제가 양하나 헌터가 그를 도우려는 이유를 알아야겠다면, ‘이건’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지금껏 우신이 내게 건넨 몇 안 되는 물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지금껏 우신의 질문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음을 기억했다.
우신은 항상 그저 내 엉성한 대답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걸 자각하고 나니, 제법 미안했지만…….
나는 미간을 좁히고 우신을 쳐다봤다.
“……미안해요.”
이건 그 모든 것에 대한 사과였다.
우신이 넌더리를 내며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처졌다. 우신은 그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과받으려고 한 말 아니니까 그런 얼굴 할 필요 없어요.”
우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서 우리 두 사람의 상황을 살피던 지원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미리 말해 두지만, 친절을 바라진 마세요.”
지원은 놀란 듯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