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2화
집중 공격 팀에서 내가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선배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될 마음도 없었고 말이다.
단지 그들이 내게 집중된 시스템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성장하길 바랐다.
팀에 들어가는 것을 꿈꾼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내 걸음이 우뚝 멈췄다.
“…….”
내가 제이의 머릿속에서 본 모습 그대로 한지원이 피투성이의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지 지원은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 복부를 다친 듯 웅크린 채 배를 쥐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내 기척에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지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무릎을 접고 그를 굽어봤다. 지원은 그제야 내 얼굴을 확인한 듯 일순 눈이 커졌다.
다행히 의식은 멀쩡히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지원의 날갯죽지를 받쳐 부축해 줬다.
“의무실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조금만 참아 봐요.”
그렇게 말하며 지원을 자리에서 일으키는데 지원은 똑바로 서기 무섭게 내 손을 쳐 냈다.
손이 내 쳐진 채로 나는 그를 쳐다봤다. 지원은 당혹감이 깃든 내 얼굴을 보고는 터진 입술을 훔쳤다.
“의무실이라면 됐어요. 그냥 모른 척 가세요.”
“…….”
“괜히 불똥 맞고 제 탓하지 마시고.”
움직이기 쉽지 않을 텐데 어지간히도 도움을 받기 싫은지 내 손을 피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할 수 없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절뚝이며 걸어가는 모습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제이 그놈이 무엇을 바라고 이런 걸 보여 준 건지는 몰라도, 나를 심란하게 할 계획이었다면 성공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팀 내에서 외롭게 죽어 가고 있는 이를 모른 척할 만큼 모질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양하나의 몸으로 눈 뜨기 전까지 이런 일을 단순한 기 싸움 정도로 치부했다.
개인이 이겨 내야 할 싸움이라고 묵인했던 게 이렇게 내게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
지원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한 지원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자, 지원은 놀란 듯 서둘러 걸음을 멈췄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요?”
“있잖아요. 내 도움이 싫은 거라면 조금 더 모질게 말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꼭 당신을 도운 나한테 튈 불똥이 걱정된다는 거 같잖아요.”
“그게 무슨……!”
내 말에 눈빛이 흔들린 지원은 무어라 버럭 소리치려 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놀란 나는 그의 허리춤을 받쳤다.
“이봐요!”
아마 언성을 높인 탓에 급격히 피가 머리로 솟구쳐 기절한 모양이었다.
“……놀라게 하고 있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방금 생긴 상처들을 제하더라도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한두 번 구타당한 게 아닌 듯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꾸준히 누적된 괴롭힘이 피로가 되어 밀려온 모양이었다.
“이런 걸 보여 줘서 어쩌고 싶은 건지.”
어쩐지 제이가 원하는 대로 놀아나고 있는 거 같았다.
* * *
지원은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었다 다시 내리길 반복했다.
“정신이 들었으면 이만 일어나는 게 어때요.”
그제야 지원은 번뜩 눈을 뜨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나를 바라보는데 안 그래도 크고 둥근 눈이 충혈된 탓에 토끼처럼 보였다.
나는 대충 데워 온 죽을 내려놓으며 뭉친 어깨를 주물렀다.
나보다 한 뼘 가까이 큰 남자를 업고 오면서 중간중간 그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죽을 뻔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는데 지원은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어디예요?”
잔뜩 긴장한 듯 덮어 준 이불을 꼭 쥐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나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답했다.
“당연히 제 방이죠.”
덤덤한 내 말에 지원은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 그쪽 방에 있냐고요.”
“…….”
기껏 데려와 응급 처치까지 해 줬더니. 누가 보면 저 상처를 내가 만들어 놓은 줄 알겠다.
“그쪽 집은 모르지, 의무실은 안 가고 싶어 하지, 대화하다 말고 냅다 기절하지 그냥 버리고 오려던 거 참은 거니까 괜한 성질은 그만 부리는 게 어때요?”
정신 차리자마자 냅다 화를 내는 모습에 울컥해 나도 덩달아 언성이 높아졌다.
바로 말대답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지원은 풀이 죽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도통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어색함에 데워 온 죽을 내밀었다.
“밥을 먹어야 기운 차릴 테니, 먹어요.”
내 말에 잠시 죽과 나를 번갈아 보던 지원은 조심히 그릇을 들어 올려 한두 입 맛보았다.
그러고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얼굴로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2, 3군 에스퍼의 인적 사항은 포털 사이트에만 들어가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1군 그리고 집중 공격 팀에 속한 이들의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웠다.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평가 보고회에서 나눠 받은 등급 평가서의 정보가 전부였다.
덕분에 내 앞에 앉아 있는 지원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역시 적었다.
그가 괴롭힘의 타깃이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는 지원을 살폈다. 큰 키에 탄탄한 몸을 한 그는 여느 물리계 에스퍼와 다를 것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대강당에서 느낀 압박감 같은 게 어쩐지 그에게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초면에 이런 질문 좀 그렇긴 하지만, 소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제이의 생각을 들여다봤기에 대충 상황을 알고 있지만, 정보가 한정적이었다.
죽을 먹던 지원은 예민한 얼굴로 날카롭게 답했다.
“제가 그걸 왜 그쪽한테…….”
“내가 누군지 알고 있죠?”
“…….”
소각장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는 의외의 사람을 마주했다는 얼굴이었다.
내 방이라는 걸 안 이후로도 경계하기보다는 불쾌한 기색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그건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거겠죠. 2군에서 C급 에스퍼 하나가 주제도 모르고 올라온다더라, 뭐 그런 거.”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그 역시 귀가 있으니 말이다.
“아까 나한테 그랬죠? 불똥 튈 거라고. 그런데 보아하니 그쪽도 누굴 걱정할 처지가 못 되는 거 같은데…….”
정곡을 찔렀는지 지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기세를 몰아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정말 내게 불똥 튈 게 걱정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세요.”
“…….”
입을 열 듯 말 듯 달싹이는 모습에 나는 힘주어 말했다.
“그쪽이 지금보다 더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때는 말하고 싶어도 못해요.”
“…….”
“지원 헌터가 없어지면 다음 타깃은 누구일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에스퍼들은 이미 나를 곱지 않은 눈을 보고 있고, 제이 같은 에스퍼는 직접 행동에 나섰다.
지원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마 그는 오래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그럼 에스퍼들의 관심이 누구에게 향할지는 뻔했다.
“…….”
내 말을 들은 지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나와 눈을 마주쳐 왔다.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가 나를 유심히 살폈다.
“……오늘 팀에 합류해 아직 잘 모르겠지만 보다시피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범은 아마 유제이 헌터고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라니, 어째서 추측인 건지 물어도 되나요?”
당연히 유제이를 주축으로 한 헌터들의 소행일 거라 생각했는데, 당사자인 지원이 말끝을 흐리는 것이 신경 쓰였다.
내 물음에 지원은 잠시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민지민 헌터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에 나는 잠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알고 있죠.”
“그들 모두 민지민 헌터의 그룹에 속한 이들입니다.”
“…….”
“그룹에 대해서는 알고 있죠?”
“……네.”
그룹에 대해서는 일전에 공지로 확인한 바 있다.
집중 공격 팀으로 묶여 불리지만, 실상 한 팀이기보다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나는 1군에 오르기 무섭게 정보실 방문을 위해 라이선스를 신청했지만, 반려당했다.
라이선스를 받으려면 그룹에 포함돼 실적을 쌓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하필 가장 꺼림칙한 놈들이 민지민의 그룹이었다니.’
무엇보다 유제이 그놈이 내게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내기 이후 잠잠하다 싶었는데, 그놈이라면 숨겨진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지원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야 좀 겁이 납니까?”
“네?”
“어떻게 이 팀에 합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지원의 낯에 그림자가 졌다.
“이상적인 팀워크는 이 팀의 설립 목표가 아니거든요. 살아남으려면 각개 전투에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한참 어린 후배의 냉소적인 평가는 아픈 곳을 찔렀다.
표면적으로는 나 때와 다른 시스템을 가진 듯하지만 누군가의 그늘에 묻혀 자유로이 성장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제가 없어져 그쪽한테 관심이 쏠릴 걸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슬아슬하지만 저도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고…… 그렇게 쉽게 사라져 줄 생각 없으니까요.”
“…….”
물론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내가 끝내 지원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른 이들의 괴롭힘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유제이는 내게 두 가지의 이미지를 보여 줬다.
그 하나가 소각장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지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 일어났다.
남은 하나는 일주일 뒤 그의 손에 숨이 끊어지는 지원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지원은 일주일 뒤 죽을 예정이었다.
그는 다 비워 낸 죽 그릇을 내려놨다.
“잘 먹었습니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이다음부터는 각자도생입니다.”
지원은 그 말과 함께 덮고 있던 담요를 개 소파 위에 올려 두고 일어났다.
내가 심각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지원은 조용히 제 점퍼를 챙겨 나를 스쳐 지나갔다.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에 나는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더.”
“…….”
지원은 걸음을 멈췄고, 나는 제법 진중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내 부탁 한 가지만 더 들어줄래요?”
잠시 고민하던 지원은 내 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세요.”
“그럼, 내 쪽으로 손 한 번 뻗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