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51화
4. 집중 공격팀
소명이 팀 분위기를 운운하길래 6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래도 예전에는 나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아래의 에스퍼들을 모두 동등한 위치로 만들었다.
그 장벽이 사라진 지금, 호랑이 없는 굴에서 여우들이 제가 왕이 되겠다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이걸 그리 자신 있게 말한 거라면 실망스러운데.’
아마 집공 팀의 약자 괴롭힘은 다른 곳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할 일 없는 에스퍼들의 넘쳐 나는 힘이 가까이 있는 약자를 향하는 건 당연한 이치니까.
나는 미약하게 떨리는 그의 어깨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나도 이제 막 합류했으니 누굴 동정할 처지는 아니지.’
집공 팀에 들어왔을 정도의 인물이니 그가 알아서 해결하리라 여기며 이 불편한 시간이 어서 끝나길 기다렸다.
* * *
“신입한테는 신고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
날 둘러싼 이들은 하나같이 신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가 보고회가 끝난 다음 날인 오늘, 스케줄상 체력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단체 훈련은 오랜만이었기에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왔는데 훈련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목덜미가 잡혔다.
얼굴들을 보아하니 아직 팀 내에서 그룹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런 좁은 우리 안에 높은 등급의 에스퍼를 모아 두다 보니 해소되지 못한 힘이 엄한 곳을 향한다고 생각한 게 바로 어제다.
설마 이렇게 바로 내게 시비를 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도 신고식 같은 게 있나요?”
“당연하지.”
가장 앞에 선 푸른 눈의 사내가 그리 말했다. 나는 그들을 쭉 훑어보며 심드렁하게 읊조렸다.
“어딜 가든 한가한 놈들은 꼭 있네요.”
“뭐?”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신고식 같은 걸 만들었나 싶어서요.”
뭔가 켕기는 게 있는지 금세 얼굴이 붉어진 사내가 버럭 소리쳤다.
“이 신고식은 무려 성시현 헌터가 있을 때부터 대대로 이어지던 거라고!”
“아…… 그래요?”
새파랗게 어린놈이 내 이름을 운운하며 이런 못된 짓을 하고 있을 줄이야.
죽다 살아나니 별 희한한 꼴을 다 본다.
이런 말까지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답했다.
“마침 훈련 전에 가볍게 몸을 풀까 했는데 잘됐네요. 워밍업으로 딱이겠어. 그래서 신고식이 뭐라고요?”
* * *
양하나가 C급 정신계 에스퍼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체력전에서는 나를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기초적인 체력 기록 내기였다.
그는 이 내기에서 지는 자가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는 것을 내걸었다.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싹싹 빌라는 그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당장 시작하자 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날 보고 눈먼 호승심이라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남자와 나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큰소리쳤던 그 역시 얼굴이 붉어져서는 나를 올려다봤다.
“……너, 너 뭐야. 너 사실 정신계 아니지?”
나는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답했다.
“글쎄요. 그쪽이 형편없는 거 아닐까요?”
“뭐?”
신고식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건 헛소리지만 내가 이곳에서 훈련했던 것은 거짓이 아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게이트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나중에는 이곳에 오는 일이 줄었지만, 입사 초기에는 여기가 집인 양 머물렀다.
그리고 양하나가 되고 나선 곧잘 훈련장을 찾았다.
능력을 쓸 때마다 기절하는 통에 이 근래 시간 날 때마다 체력 훈련에만 매진했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몸 쓰는 일쯤은 자신 있었다.
“인정 못 해. 이런 기초 체력 따위로 뭘 제대로 알 수 있겠어.”
남자는 숨을 고르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바꿨다.
그 모습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처음 스케줄을 받았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훈련 시간은 능력 심화가 절반, 체력 단련이 절반으로 채워져 있었다.
앞서 말한 심화 훈련의 경우 베테랑 헌터나 아카데미의 교수를 초빙해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체력 단련의 경우 지금처럼 지켜보는 이 한 명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성실히 훈련에 임하는 이가 적었다. 물론 그 점에 대해 지적할 생각은 없다.
다만 높은 등급의 에스퍼를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모아 둔 것부터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에게는 무언가를 배우기보다 실전 경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센터는 항상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현장에 있는 이들만 고생하는 구조였다.
그러니 이들을 여기 모아 둘 게 아니라 선배나 사수를 붙여 현장에 밀어 넣는 편이 빠르게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였다.
어제 본 평가 보고회도 그렇고, 내 눈에 이건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완전 우리 안의 사육이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기 무섭게 총알처럼 작은 에너지가 내 팔뚝을 스쳐 바닥에 박혀 들었다.
웬만한 힘으로는 부서지지 않는 특수 바닥이 한 움큼 패였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팔이 날아갔을 거였다. 나는 그것이 날아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 머리칼을 한 남자가 2층 난간에 매달려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는 아주 흥미로운 걸 보듯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휘파람을 불었다.
“끈 뺏기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더니, 요행이 아니었나 보네.”
그의 등장에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에스퍼들의 기가 죽는 게 느껴졌다.
아까까지 보이던 패기는 어디 가고 모두 그 남자의 눈치를 봤다. 나는 나지막하게 운을 뗐다.
“요행?”
“그래.”
그는 신난 듯 난간을 놓고 2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제법 덩치가 컸다.
그는 내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다가서더니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얼굴을 가깝게 들이대는 행동 때문에 몸을 뒤로 기울여야 했다.
빗지 않은 듯 부스스한 붉은 머리칼을 한 그는 어딘가 사나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제법 큰 힘을 담은 에너지를 응축해 날릴 때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대단한 실력자일 수도 있겠지만 초점 없이 맛 간 눈을 보고 있자니 도핑하는 놈이 아닌가 싶었다.
도핑으로 비약적으로 힘을 올린 놈들은 그 부작용 때문에 눈앞에 남자처럼 눈에 초점이 나가 있었다.
미간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불쑥 그가 큰 소리를 냈다.
“나랑도 하자.”
“뭘 말이지.”
“끈 뺏기. 그거 나도 잘하거든. 너 정도면 단숨에 두 동강 내고 이길 수 있어.”
이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지. 나는 하, 하고 숨을 뱉어 낸 뒤 답했다.
“싫어.”
내 대답에 그는 눈에 띄게 실망하더니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다시금 눈을 맞춰 오는데 그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그런데 말이야. 너 왜 나한테 말 놔?”
“시비 걸어온 놈한테 친절할 만큼 착하지 못해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는 내 말에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나와 싸워 보고 싶다며 끈 뺏기를 하자 졸라 댔다.
이런 미친놈들은 상대하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내 앞에서 생떼 부리던 남자를 누군가 불렀다.
“제이.”
그의 말에 붉은 머리가 뒤를 돌았다.
그가 서 있던 2층 난간에 무료한 얼굴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만하고 올라와. 브리핑 시작한대.”
그녀의 말에 제이는 입꼬리가 내려가서는 느린 걸음으로 그쪽으로 향했다.
한시름 놓는 순간, 그는 무언가 번뜩 생각난 듯 다시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너 옛날부터 다른 사람 생각 함부로 읽는 음침한 짓을 했다며?”
“…….”
다른 사람 생각을 함부로 읽는다고?
양하나의 과거 이야기인가.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무어라 답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제이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곧장 내 손을 붙잡았다.
“내 생각도 읽어 봐.”
순식간이었다.
C급 양하나의 정신계 능력 중 하나인 교감은 타인의 얕은 생각이나 기억 등을 읽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낮은 등급의 에스퍼나 가이드에 한정된 것이지만 말이다.
이런 고위급 에스퍼는 정신에 진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제이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신의 벽을 허물고 아주 깊은 무의식까지 내게 보여 줬다.
그것과 닿는 순간 놀라 반사적으로 그의 가슴께를 거칠게 밀어냈다.
내가 불쾌한 표정이 되든 말든 그는 그럼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2층으로 향했다.
나는 그가 떠나고도 한참을 더 심란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복잡한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늦게까지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그 탓에 공용 훈련장에 나만 남았을 때쯤 탈의실로 향할 수 있었다.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는데, 눈앞에 시계가 보였다.
이제 곧 있으면 여섯 시였다.
나는 얼마간 탈의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내 훈련장 건물 뒤편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했다.
보통 이런 사각지대에서 더러운 짓거리가 이루어졌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제이가 정신의 벽을 허물어 내게 보여 준 이미지.
그건 피투성이가 된 한지원이 소각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살인 예고장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나는 그게 단순히 재미없는 장난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온 것이었다.
코너를 돌아 커다란 소각장에 도착했다.
나는 조용한 소각장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