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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9)화 (49/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9화

그녀는 들고 있던 펜으로 나를 가리켰다.

“마땅히 합류를 제안할 사람이 없어 미루던 중 이번에 진급한 양하나 헌터가 눈에 띄더군요.”

소명은 그 말과 함께 펜을 내 앞에 내려놨다.

서류에는 소명의 말이 글로 기록되어 있었다.

“어차피 제겐 선택권이 없는 것 아닙니까?”

내 물음에 소명은 뒤에 서 있던 에스퍼에게 슬쩍 손을 저어 보였다. 나가 보라는 의미였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소명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양하나 헌터의 합류를 반대했습니다만 이 근래 양하나 헌터가 보인 실적이 좀 특별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날 포기하진 않았을 거라 여겼는데 역시나다.

손바닥 위에 놓고 지켜볼 생각인 거겠지. 그게 관리하기 더 편할 테니.

“양하나 헌터가 속했던 13번 팀 전원이 진급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평소 1인분은커녕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그 에스퍼들이 모조리 말이에요.”

그 말에 주먹을 쥐자, 소명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게 될 겁니다. 양하나 헌터도, 13번 팀의 에스퍼들도, 전부요.”

“…….”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왕관을 쓰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해 결국 목이 부러지는 법이거든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 속을 긁는 소명의 도발에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마지막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무거운 왕관은 결국 스스로를 해칠 뿐이라는 그 말.

그건 아주 오래전, 소명이 팀 막내였을 적에 열등감에 가득 찬 그녀에게 내가 해 준 말이었다.

높은 자리를 선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해 준 말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사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게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내 앞에서 콧대 높은 선임을 흉내 내지만 여전히 그녀가 팀의 막내였을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상기하게 했다.

덕분에 겨우 진정된 나는 서류에 거침없이 사인했다. 소명이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펜을 내려 두며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이후 출근은 집중 공격 팀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잊고 있던 걸 생각해 낸 사람처럼 짧은 탄성과 함께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건조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무슨 이유로 절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괜한 걱정은 사양하겠습니다.”

“내 말이 걱정처럼 들리나요?”

그녀의 말처럼 13번 팀의 팀원들은 얼마간 힘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래곤을 눈앞에 두고도 나를 믿고 작전대로 움직여 준 이들이었다.

그 정도의 깡은 있는 사람들이기에 앞으로도 충분히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말을 맺었다.

“네, 그러니 왕관이니 뭐니 하는 충고는 괜찮습니다. 여전히 남한테 관심 많은 소 대리님.”

내 말에 소명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빠져나갔다.

* * *

며칠이 지나고 집중 공격 팀 합류를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팀 합류에 대해 거창하게 말한 것에 비해 문자로 온 공지 사항은 짧고 단순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어.’

집중 공격 팀을 굴리는 거대한 시스템. 그것이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2, 3군의 경우 게이트 참가 스케줄을 제하고는 대부분 일정이 자유로웠다.

정기 훈련이 있긴 했으나 1년에 한두 번이었고, 개인 훈련 역시 공용 훈련장을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 사설 훈련장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부지가 넓은데 왜 훈련장이 항상 부족할까 의아해했는데, 1군과 집중 공격 팀 때문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훈련은 혼자 해야 한다.

거기에 갈증을 느껴 개인적으로 아는 헌터를 찾아가 지도를 받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런데 집중 공격 팀은 모든 훈련을 스케줄로 관리받고 있었다.

나는 내 스케줄을 훑어봤다.

‘훈련밖에 없네.’

집중 공격 팀의 인원은 제법 많았다.

그 탓에 전체가 움직이기보다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그룹을 짜 게이트를 출입하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그룹이 없으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카데미 때를 떠올리게 하는 스케줄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발걸음을 옮겼다.

센터 건물의 7층으로 가 대강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미 대부분의 헌터들이 출석해 있었다.

오늘은 근 한 달간의 평가 보고회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는데…….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 한번 살벌하군.’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강당은 안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높이가 높아지는 계단 형식으로 층마다 기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에스퍼들은 그곳에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노골적으로 날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 반면,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층계를 올랐다.

“…….”

확실히 지금껏 본 에스퍼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이 제 에너지를 다룰 줄 아는 것 같네.’

흐르거나 부족하지 않게 적정량의 에너지를 얇은 막처럼 몸에 두르고 있는 일.

그건 전투에 앞서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준비 자세 같은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이라고 하지만 운용에 실패하면 에너지 소모가 심해 탈진할 수 있었다.

에너지 운용이 숨 쉬듯 익숙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6년 전까지만 해도 그 단계를 통과한 이들이 손에 꼽았는데, 지금은 이 강당만 돌아봐도 족히 20명은 돼 보였다.

시간이 흐르며 뛰어난 인재가 늘었다는 건 기쁜 일이긴 하나, 어쩐지 분위기가 묘했다.

나는 의자를 빼고 빈자리에 앉았다.

“……이걸 팀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처음에는 나 때문에 날 서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체돼 있었다.

평가서 보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조용히 낯선 공간을 탐색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귀에 익은 이름이 들려왔다.

“강우신 가이드랑 했다고?”

나는 행동을 멈췄다.

뒤에 앉은 헌터 둘이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였는데, 책상 간격이 좁아 선명하게 들렸다.

“그래, 웬일로 현장 가이딩을 나왔더라고.”

집중 공격 팀이 살아 있다고 들었을 때부터 나는 강우신을 떠올렸다.

그의 소속 역시 그대로일까 했는데, 그런 모양이었다.

“징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저기압이더라고. 근데 그럼 뭐 어때? 그 강우신이랑 하는 가이딩인데.”

나란히 앉은 에스퍼가 뒷말을 재촉했다.

“그래서 가이딩은 어땠어? 소문처럼 끝내줘? 생긴 거랑 다르게 부드럽게 해 준다며.”

그 대화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나 역시 강우신 가이드와의 가이딩에 이성이 날아갈 뻔했다.

그때도 이런 상황을 걱정했는데, 역시 내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나도 다음 주에 강우신 가이드랑 원정 있는데, 그때 한번 만나자고 말해 볼까?”

“미친, 너 그러다 걔 성질 건드리면 어쩌려고.”

“제가 뭘 어쩌겠어. 그래 봤자 가이드인데.”

마지막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또렷하게 들려왔다. 순식간에 내 낯이 창백해졌다.

힘과 권력을 쥔 에스퍼가 가이드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너무나도 흔해 빠진 일이니까.

듣는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은 명백한 무시였다.

일단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어쩌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분명 그랬는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뒤돌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순 당황한 두 사람이 나를 올려다봤다.

“지금 뭐라고 했어.”

“뭐?”

나는 두 사람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각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이후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우선 이 더러운 기분을 떨쳐 내고 싶었다.

내가 단검의 손잡이를 잡는 그때, 등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하나 헌터.”

상대는 단검에 쥔 내 손목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찾았는데, 이런 데 있었습니까?”

어느새 한 뼘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강우신이었다.

우신은 말없이 나를 내려다봤다.

저들이 떠드는 소리를 다 들었을 텐데도, 그는 아주 미세한 동요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의 시선 안에는 나만 사는 거 같았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의 새까만 눈은 올곧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상의 아래로 무기를 숨기며 그의 손아귀에서 손목을 빼냈다.

“……강우신 가이드.”

“네, 양하나 헌터.”

내 이름을 부르는 차분한 목소리에 빠르게 진정이 됐다.

애써 그의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저를 찾았다니……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그 말에 우신이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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