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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8)화 (4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8화

다음 날, 오래도록 기다린 돔 이벤트 결과가 발표됐다.

대부분 팀의 한두 명만이 높은 포인트를 획득해 진급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13번 팀은 전원이 진급에 성공하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돔 이벤트 점수 이외 A급 게이트 클리어가 성과로 인정되며 특별 가산점이 추가됐다는 게 센터 측의 입장이었다.

덕분에 나는 팀원들을 모으며 뱉은 말을 지킬 수 있게 됐다.

태용과 소희, 영우는 나란히 2군으로 진급했으며 나와 다영 역시 1군으로 진급했다.

원래 1군 소속인 희민은 성과급이 떨어졌다며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불렀다.

결과가 발표된 후 다영과는 구내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결과를 받고 이런 인사를 하니 속물 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정말 감사해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게 민망해 그만두라고 손을 저어야 했다.

“괜찮으시다면 그때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다영에게 처음 팀 제안을 했던 장소가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구내식당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지금처럼 표정이 밝지 않았었다.

다영은 그때의 제 언사에 대한 용서를 구했지만 오히려 그때는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의 뭘 믿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역시 이런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부드럽게 답했다.

“다영 헌터님이 없었다면 애초에 참가조차 못 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도 약속했던 걸 지킬 수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

나답지 않게 솔직한 대답이었다.

다영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기분 좋다는 내 말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어왔다.

그럼에도 이렇게 함께 마주 앉아 웃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안다.

비록 찰나의 평화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닌지 다영 역시 환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같은 시기에 1군에 올라가게 됐으니 이후 스케줄만 맞으면 또 함께 게이트에서 뛸 수…….”

“양하나 헌터님.”

다영이 신이 나 말을 잇는데 불쑥 누군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서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소 대리님이 찾으십니다. 잠시 같이 가 주시죠.”

그제야 그가 조사인 병동에서 우신이 격리된 방까지 날 안내했던 에스퍼라는 걸 떠올렸다.

나는 다영을 힐끔 쳐다봤다. 다영은 다녀오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 * *

홍 반장 같은 현장 담당자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 소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층의 개인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나를 안내해 온 에스퍼가 사무실 앞에 멈춰 서서 노크했다.

“대리님, 양하나 헌터님 도착했습니다.”

에스퍼의 말에 문 너머에서 들어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덩치 큰 에스퍼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은 여느 사무실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그녀만이 다른 현장 담당자들과 동떨어져 있는 게 의아했다.

소명은 소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소명 앞뿐만 아니라 건너편 자리에도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에스퍼는 소명의 뒤로 가 뒷짐 지고 섰다.

내가 멀뚱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자 소명이 제 건너편 자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앉죠.”

그제야 자리에 가 앉았다. 소명은 내가 앉은 후로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 뿐 좀처럼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다리를 떨다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강우신 가이드와의 매칭 테스트 결괏값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건가요?”

이 근래 나를 둘러싼 가장 큰 이슈는 그것이었다. 어제만 해도 강우신 가이드도 같은 이유로 나를 찾아왔다.

상부의 결정이 떨어진 건가 싶어 그렇게 묻는데, 소명은 냉소적인 표정 그대로 답했다.

“오늘은 그 일 때문에 부른 게 아닙니다.”

“그럼……?”

다음 말을 재촉하는데 소명이 싱긋 웃어 보였다.

“우선 1군 진급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에 따라 양하나 헌터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 급히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제안이요?”

어울리지 않는 축하를 건넨다 했더니, 이게 본론인 듯했다. 소명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뒷짐 지고 서 있던 에스퍼가 서류 파일을 소명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눈으로 좇는데, 문득 소명의 사무 책상 위에 놓인 명패 속 직함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병실에서 내게 소개한 대로 그녀는 현장 담당자인 동시에…….

“집중 공격 팀 담당?”

나는 소리 내어 그녀의 직함을 읽었다. 소명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맞아요. 저는 고위급 현장 담당자인 동시에 집중 공격 팀의 현장 담당자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내민 서류에는 ‘집중 공격 팀 합류 제안서’라는 글씨가 굵은 폰트로 적혀 있었다.

내가 서류를 눈으로 훑자 그녀가 책상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려 시선을 그녀에게로 집중시켰다.

“아무리 양하나 헌터라도 센터의 자랑인 집중 공격 팀에 대해선 알고 있겠죠?”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길게 말하지 않아도…….”

“대규모 게이트 브레이크 혹은 높은 등급의 게이트 클리어 시 공격적인 S급 에스퍼를 뒷받침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죠. 공격 1팀은…….”

“…….”

나는 미간을 좁히며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성시현이 죽은 지금도 그 팀이 유지되고 있던 겁니까?”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 공격 1팀.

처음 그 팀 개설 제안을 받았을 때의 이름은 집중 공격 팀이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공격을 하는 전문화된 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노골적으로 내 공격을 보조한다는 의미였다.

날 위한다는 양 꾸민 팀 개설 기획서가 불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공격 1팀은 개설됐다.

당시 센터는 체계를 잡아가기 위해 나를 앞세워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

센터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는 말에 개설을 반대할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죽게 된 후에는 그런 비정상적인 팀은 사라졌으리라 믿었다.

‘공격 1팀이 사라진 후 나온 게 지금의 피라미드형 구조라 생각했는데…….’

설마 1군 안에서 소수의 뛰어난 인물을 모아 공격 1팀 같은 걸 만들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자 소명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군요. 양하나 헌터의 말처럼 공격 1팀은 S급 성시현 헌터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팀이 맞습니다.”

소명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 이상하네요. 그녀가 죽었다고 팀이 해체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 팀은……!”

“양하나 헌터 말대로 성시현 헌터는 죽었습니다. 평소처럼 혼자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다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턱 막혀 왔다. 소명은 내 반응을 살필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네요. 양하나 헌터는 입사하기 한참 전 일이라 잘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이미 공격 1팀은 뛰어난 이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소명은 당시를 회상하듯 일순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그런 이들과 합 한 번 제대로 맞춰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건 성시현 헌터였고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툭 튀어나온 냉정한 평에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소명은 개의치 않고 다 식은 차를 들이켜더니 말을 맺었다.

“어찌 보면 참 그녀다운 죽음이었을지도 모르죠. 이상 게이트를 클리어하던 중 고작 C급 가이드를 살리고 죽었으니.”

“별로 듣고 싶지 않네요…….”

“아니죠. 그 C급 가이드가 재각성했으니 돌이켜 보면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끝까지 나라에 득이 되는 선택을 한 게 참 그녀답달까요?”

소명의 빈정거리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런 소릴 들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왔던 게 아니다.

스스로 떳떳한 만큼 뒤에서 누가 무어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소명은 달랐다.

그녀는 당시 내 팀의 일원이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런 소명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목울대가 떨려 오는 바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명은 내 침묵을 공감의 의미 정도로 생각했는지 서류로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괜한 말이 길어졌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의 집중 공격 팀은 성시현 헌터를 주축으로 했던 공격 1팀과는 성질이 많이 다릅니다. 성시현 헌터같이 압도적인 간판 에스퍼 없이 매달 헌터들의 등수가 바뀌죠.”

“…….”

“원래라면 1군에서 실적을 쌓은 이들 중 심사를 통해 합류케 하지만…… 몇 달 전 팀원 한 명이 게이트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결원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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