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6화
“여긴 어떻게 왔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
“저랑 잠시 이야기 좀 하죠.”
우신은 내 앞에 앉아 있는 팀원들이 보이지 않는지 그렇게 말했다.
연구실에서 결괏값을 확인한 이후 며칠 노골적으로 피해 다녔더니 단단히 성이 난 듯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보시다시피 선약이 있어서요. 커피도 이제 막 마시기 시작했고.”
내가 식사 대신 주문한 커피를 슬쩍 들어 보이자, 우신은 픽 웃으며 그러냐고 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 앞에 놓인 커피를 들이켰다.
“이게 지금 무슨!”
놀란 내가 언성을 높였지만, 우신은 다 마신 빈 컵을 내려놓으며 방긋 웃었다.
“커피 다 마셨으니 가 볼까요?”
이 미친놈이.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했는데 매칭 테스트 이후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무례하게 구는 모습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식이면 못 가죠.”
나는 다리를 꼬고 그를 빳빳이 바라봤다.
덕분에 분위기가 엉망이 됐지만,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신은 두 눈을 끔벅이다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
그걸 이제 알았냐는 얼굴로 앉아 있는데 우신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여기서 말하죠. 매칭률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례적인 숫자이기에 헌터님만 괜찮다면 각…….”
나는 빛보다 빠르게 일어나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그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신 가이드, 드디어 미쳤습니까?”
사색이 된 내 물음에 강우신은 눈매를 휘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이 자식은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별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아무래도 일이 생겨 먼저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계산하고 갈 테니 편하게 드시다 오세요.”
그 말과 함께 나는 우신을 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이 멀어지는 걸 보고야 희민을 제외한 네 사람이 낮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양하나 헌터님께는 죄송하지만 두 분이 같이 떠나 주셔서 한결 마음이 편하네요.”
소희의 말에 태용이 공감한다는 듯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완전히 긴장했지 뭐예요. 강우신 가이드님은 언제 봐도 무서워요.”
“워낙 유명하잖아요, 사나운 인상으로. 아까도 미간에 힘을 팍 주고는…….”
“……그런가요. 편해 보이던데.”
팀원들의 말에 다영이 나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소희와 태용이 다영 헌터는 참 순진한 거 같다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희민 역시 다영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우신이 언제부터 저렇게 사근사근 미소를 지었나. 확실히 그는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분명 양하나가 있다고 희민은 생각했다.
그게 어딘가 꺼림칙했다.
그래서 희민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네, 사람이.”
* * *
가게를 빠져나가 택시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우신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갑니까?”
나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답했다.
“센터에 가는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 앞에서 얘기 나누는 게 싫은 거 아니었습니까?”
표정을 구기며 그에게 두어 걸음 가깝게 다가갔다.
어느덧 신발 앞코가 닿을 만한 거리에 서게 되자, 나는 얼굴을 굳힌 채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게 통할 줄 알았다면…….”
이를 갈며 그에게 경고하는데 우신이 차 키를 들어 보였다.
타이밍 좋게 그의 뒤쪽에 주차돼 있던 차의 백라이트가 번뜩였다.
일순 그곳에 시선이 뺏기자 우신이 말을 이었다.
“협박 아니고 그저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끼리 할 말이 많으니까.”
우신은 그렇게 말하곤 차 쪽으로 걸어갔다.
무광으로 짙게 선팅된 차가 제법 제 주인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별수 없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신은 억지로 말을 이어 가지 않았다.
내가 침묵을 어색해하자 잔잔한 팝을 틀어 줄 뿐이었다.
나는 한 번씩 운전 중인 그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운전하는 모습이 퍽 자연스러웠다. 마냥 덩치 큰 애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내가 부재한 6년은 긴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신의 나이가 딱 내가 게이트에서 죽었을 때 나이 아닌가?’
의식의 흐름 따라 아무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쯤, 차가 펜트하우스로 들어섰다.
위치를 보니 센터 뒤편이었다.
2군에 오르면 센터 내에 기숙사가 주어지고, 1군 내 인사 평가가 좋으면 센터에서 따로 펜트하우스의 키를 내준다.
물론 그 정도 위치의 헌터가 되면 제집 마련이 우습기에 키를 거절하거나 받더라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이처럼 잘 알고 있는 것도 과거엔 나 역시 이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일이 워낙 바쁘기도 했고 집이라는 공간에 큰 미련이 없었다.
그저 머리 붙이고 누울 곳이 필요했기에 이곳을 이용했다.
설마 우신도 이곳에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잠깐만 그런데 여기로 왔다는 건…….’
나는 급히 우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강우신 가이드 집으로 가는 겁니까?”
내 물음에 우신은 주차를 마치고는 픽 웃어 보였다.
“가는 게 아니라 이미 도착했습니다만.”
돌아보니 어느새 차고지에 주차를 마친 상태였다. 옛날 생각만 하면 꼭 주변 소리를 못 듣곤 했다.
우신은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서둘러 그 뒤를 따라 내렸다.
* * *
우신은 내 앞에 카모마일차를 내주었다. 산뜻한 차의 향이 코끝에 닿았다.
나는 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우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제가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냅다 물었다. 내 질문에 매고 있던 타이를 풀던 우신이 행동을 멈추며 답했다.
“차를 내온 성의를 봐서 입이라도 대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
“그럼 그사이에 옷 좀 갈아입고 올 테니.”
우신은 도착하자마자 양복 재킷을 벗은 채로 손만 씻고 차를 내왔다.
그제야 그의 차림새가 똑바로 눈에 들어왔다.
각 잡힌 와이셔츠의 소매 끝에 약간 피가 묻어 있었다.
이벤트에 참가한 대부분의 에스퍼와 가이드는 이벤트 결과를 앞두고 휴식기에 들어갔는데, 그는 오늘도 일하고 온 모양이었다.
게이트가 사람들의 사정을 봐 가면서 열리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빠듯하게 일하는 게 건강에 좋지 않을 텐데.
그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괜히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대꾸 없이 차를 마셨다.
다행히도 차를 안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마시는 게 카모마일이었다.
우신은 내가 찻잔에 입을 대는 모습을 확인하고야 부드러운 표정이 돼서는 안쪽 방으로 사라졌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나는 조금 더 편안하게 집 안을 둘러봤다.
짙은 남색 계열로 통일된 가구는 모두 생활에 필요한 것들뿐이었다.
찻잔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식기들 역시 아주 소량만 비치되어 있었다.
“…….”
청소를 한 듯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데도 이 집이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겐 제법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저 침대에 몸만 누이러 오는 공간.
센터에서 쥐여 주는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집에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기계 가이딩으로 겨우 진정시킨 에너지는 크기가 맞지 않는 상자에 담겨 언제든 그 뚜껑을 열고 튀어나올 듯 불안정했다.
그런 몸으로 거실에 앉아 있다 보면 무거운 몸이 서서히 끝을 모를 늪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내가 돈과 명예,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없었다.
어둠이 밀려드는 밤이면 그 생각이 날 더 외롭게 했다.
“……별생각이 다 드네.”
나는 카모마일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몸이 따뜻해지는 게 마음이 진정되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커피밖에 마시지 않던 내가 어쩌다가 카모마일을 마시게 됐었지?
“분명 그때…….”
A급 가이드의 가이딩으로도 폭주할 듯 울렁이는 에너지가 진정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분명 누군가 내게 차를 권유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입에 맞을 거예요. 카모마일이 에너지 순환에 도움을 주거든요.”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말이 들려와 고개를 번뜩 들었다.
언제 나왔는지, 편안한 차림의 우신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있자, 그가 눈을 몇 번 끔뻑이다 말을 이었다.
“별론가요……?”
“아니요.”
“다행이네요.”
우신은 싱겁다는 듯 픽 웃고는 맞은편 의자를 빼 앉았다.
그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날 일이 없어 여태까지 양복이나 작업복을 입은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이렇게 평상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느낌이 새삼 달랐다.
끝이 살짝 젖은 머리칼이 이마를 반듯하게 덮고 있었고, 품이 큰 회색 후드티가 편안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