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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5)화 (4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5화

이송할 때의 일이라면.

나는 단번에 소명이 조사인 병실에서 흘린 말을 떠올렸다.

“이송하는 과정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어요.”

음흉하게 웃고 있는 희민이 하려는 말은 분명 그것과 관련된 것일 게 뻔했다.

마침 알고 싶었던 일이었다.

소명은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차마 당사자인 우신에게 물을 수는 없어서 잠시 미뤄 뒀던 문제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팀원들에게 묻는 방법이 있었다. 이럴 때는 말 많은 희민이 참 반가웠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내 물음에 희민은 말해 줄 듯 말 듯 괜히 간을 봤다.

“아, 당사자인 우리 양하나 헌터는 기절해 계신 통에 모르시겠군요.”

그는 사람 속을 긁는 데 재주가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몹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조사받는다고 팀원들을 챙기지 못했는데, 많이 드세요. 제가 사는 거니까.”

내 말에 희민은 기다렸다는 듯 벨을 눌러 주문을 추가했다.

웬일로 조용하다 싶었는데, 음식을 한가득 주문하고서야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 제가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던가요?”

나는 썩은 눈으로 답했다.

“아직 시작도 안 하셨어요.”

그 말에 희민은 내 정신 좀 봐, 라며 입을 열었다.

“강우신 가이드님께서 양하나 헌터를 가이딩했다는 건 알고 있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 *

‘감정이 있긴 할까?’

희민이 센터에 입사한 후 강우신 가이드를 보고 한 생각이었다.

가이드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S급 가이드인 우신을 모를 수 없었다.

원래 유명인일수록 따라다니는 소문은 많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냉혈한이라든지, 이기적이라든지, 인상이 더럽다든지, 에스퍼를 제물로 재각성한 괴물이라든지.

모두 질투에 눈이 먼 자들이 퍼트린 소문 같은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본 우신은 소문과는 달리 일 처리가 빠르며 공과 사 구분이 뚜렷한 사람일 뿐이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처리할 때 표정 변화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덕분에 그의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구분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 우신에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희민은 제가 환청을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일순 고민했다.

“……박희민 가이드가 이대로 무리해서 가이딩을 이어 가는 건 에스퍼와 가이드 양쪽 모두에게 위험합니다.”

저를 내려다보는 강우신 가이드의 시선에 희민은 하나에게서 손을 뗐다.

그녀와 떨어지고서야 메말라 가던 에너지가 겨우 숨을 쉬는 듯했다.

일전에도 하나의 에너지가 C급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르긴 몰라도 더 이상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건 확실했다.

그렇게 무력감에 젖어 우신을 바라보니 그가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손을 잡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우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항상 가면을 쓴 듯 동요 없던 그의 표정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며 희민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가이딩에는 문제가 없었다.

우신은 아주 조금의 에너지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양하나 헌터의 에너지 길을 바로잡고 있었다.

그럼 그 표정 변화는 뭐 때문인 걸까.

그건 화나거나 기쁘다기보다 아주 오랫동안 찾아 헤맨 것을 본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것이 어쩐지 위험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양하나 헌터의 손을 쥔 우신의 손등 위로 실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희민은 나직하게 그를 불렀다.

“강우신 가이드님?”

우신의 시선은 하나에게 고정된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희민이 그의 몸 쪽으로 손을 뻗는 그때, 센터의 관계자들이 빠르게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새카만 작업복 차림의 소명도 보였다.

“소 대리님.”

희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소명은 됐다는 듯 한 손을 올려 보였다.

그러고는 곧장 하나를 가이딩 중인 우신을 바라봤다.

급속도로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 듯 그의 목덜미에 핏대가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에 소명이 입을 열었다.

“가이딩 멈추세요, 강우신 가이드.”

그러나 우신은 소명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명은 작게 혀를 차더니 그녀의 곁에 있는 에스퍼를 향해 손짓했다.

무장한 에스퍼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우신의 어깨 위로 손을 뻗었다.

그때까지도 꿈쩍 않던 그는 에스퍼가 하나에게 손을 뻗자, 순식간에 그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우신에게 팔뚝을 잡힌 에스퍼는 순간 몸을 움찔거리더니 피를 토해 냈다. 그 모습에 소명이 소리쳤다.

“강우신 가이드!”

우신은 그제야 소명이 눈에 보이는 듯 아무 대꾸 없이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

소명은 화가 난 듯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하나와 우신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멋대로 행동하는 건 이쯤에서 그만하시죠. 제가 또 상부에 보고해야 할 일이 늘어나야 하나요?”

그 말에 우신은 서서히 흥분을 가라앉히듯 하나의 몸에서 조심히 손을 뗐다.

그 이후 하나와 우신은 분리되어 본부로 이송됐다.

희민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신이 그렇게 흥분하는 것도,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 * *

“정말이지 그때는 공기 자체가 날카로워져서 숨 쉬기도 힘들었다고요.”

“…….”

툴툴대는 희민의 말이 과장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영 역시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듯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괜스레 민망해졌다.

또한 희민이 들려준 이야기 중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죠?”

“그거라면.”

“강우신 가이드가 에스퍼의 팔뚝을 잡은 직후 그가 피를 토했다는 거요.”

내 물음에 희민은 아, 하고 말을 길게 늘이더니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몸을 기울이더니 작게 소곤거렸다.

“가이드의 가이딩이란 붕괴하려는 에스퍼의 길에 에너지를 밀어 넣어 복구하는 작업이에요. 그렇다면 말이죠. 반대로 에스퍼의 에너지 길에 상처를 내는 일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요?”

처음 들어 보는 이론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물론 가능하지 않죠.”

“네?”

그의 단호한 말에 내가 당황하자 희민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에너지의 형태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에너지를 흘러 넣는 게 고작이에요. 그렇기에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임에도 누군 창이 되고 누군 고작 보충제가 되죠.”

가이드인 희민의 날카로운 자학에 일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희민은 그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니 길에 상처를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정신력이 뛰어나야 하고 가지고 있는 기본 에너지의 총량도 에스퍼를 압도해야 해요.”

희민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에스퍼에 반감을 가진 가이드가 만들어 낸 속설 같은 거예요. 실제로는 저도 그때 처음 본 거였고요.”

그의 말처럼 간혹 높은 등급의 가이드가 저보다 낮은 등급의 에스퍼에게 올바르지 못한 가이딩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에너지의 길을 엉망으로 흩트려 놔 멀미나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가이드가 가이딩으로 에스퍼에게 상처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상대가 우신이라고 생각하니 희민의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퍼가 내상을 입고 피를 뱉어 낼 정도라면 에스퍼의 몸뿐만 아니라…….

“그럼 강우신 가이드도…….”

“제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라면 제가 직접 얘기해 줄 수 있습니다만.”

말을 이으려는 찰나, 뒤통수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앞에 앉아 있던 팀원들의 눈도 동그래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우신이 서 있었다.

“……강우신 가이드.”

그는 내 곁에 앉아 있는 팀원들을 쭉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추첨으로 뽑히긴 했으나 저도 13번 팀 아닌가요. 죽을 위기를 함께 넘긴 건 매한가지인데 이렇게 대놓고 차별 대우하니까 조금 서운한데요.”

그러나 정작 우신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장난스레 올라간 입꼬리가 그걸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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