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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4)화 (44/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4화

내 모습에 담당자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매칭 테스트의 주요한 값이 모두 최대치를 초과했습니다.”

“……네?”

“기계가 기록할 수 있는 숫자의 맥시멈이 100이기에 100%라는 거지, 실상 그 이상이나 다름없습니다.”

설마 이런 뜻이 숨어 있을 줄이야.

눈앞이 핑 돌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아무리 가이딩에 면역이 없다 한들 그때 그걸 정상적인 가이딩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우신과 손이 닿는 순간 온몸의 신경 세포가 모두 살아나는 듯한 감각. 다리의 힘이 풀리며 기분이 순식간에 고양됐다.

괜히 그날 일을 상기하니 얼굴이 뜨거워지는 거 같았다.

손바닥으로 뺨 한쪽을 지그시 누르는데, 그 순간 우신과 눈이 딱 마주쳤다.

“…….”

언제부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그는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린 듯 눈매가 휘는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양하나로서 만났을 땐 냉기를 삼킨 듯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기에 6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했는데…….

여전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미소였다.

“…….”

그에게 내 생각을 들킨 거 같아 괜히 버럭 언성을 높였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재검사 부탁드립니다.”

우신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몇 번이고 재검할 용의가 있습니다.”

몇 번을 재검사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에 나는 선뜻 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재검사는 다시 할 수 있지만, 몇 번을 해도 결과는 같을 겁니다…….”

보다 못한 소장이 말했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무어라 말을 이으려 하는 찰나 소명이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 기다려요.”

그녀는 머리가 아프단 얼굴로 상황을 정리했다.

“매칭 테스트까지는 강우신 가이드의 희망으로 진행했지만 이후 일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소명이 나선 덕에 재검사는 말뿐인 이야기가 됐고, 차후 상부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됐다.

극히 드문 매칭률인데, 하필 상부가 지켜보는 주요 인물 둘이 엮었으니 일이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소명이 무어라 말하든 우신의 시선은 좀처럼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결국 나는 소명에게 일을 떠넘기고 자리를 급하게 떴다.

* * *

“여기예요!”

나를 발견한 다영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를 발견하고는 팀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영을 포함한 다섯 사람이 제법 밝은 미소를 띠며 삭제 앉아 있었다.

이상 게이트를 클리어한 이후 우신 외에 나머지 팀원들의 안부는 전해 듣지 못했다.

그러다 이곤과 양하나의 이모 집을 방문했던 그날 저녁, 다영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혐의 없음으로 풀려난 걸 어디서 들었는지 다영은 괜찮냐며 걱정 어린 질문을 쏟아 냈다.

나는 그제야 날 따라와 준 팀원들을 위해 밥이라도 한 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선뜻 말을 못 꺼내고 있자, 다영이 나를 대신해 팀원들을 모아 줬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다영은 검은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내 모습에 조심히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모자 벗어도 괜찮아요. 이 가게 사장님 자녀도 센터에서 일하셔서 에스퍼를 안 불편해하세요.”

심문이 끝난 직후보다는 덜 했지만, 아직도 종종 정문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이 보였다.

덕분에 오늘도 쪽문으로 도망치듯 나왔는데, 다영이 그 점까지 신경 써 준 모양이다.

다영은 역시 룸으로 갈 걸 그랬나요, 라며 웃어 보였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함께 게이트를 주파했다는 유대감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다시 만난 반가움에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게이트 날로 이어졌다.

잠시 긴장의 끝을 놓고 나는 어느 정도 예감했던 일에 아닌 척 귀를 기울였다.

“이상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습니다.”

태용이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듯 과장되게 말했다.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런데 변이한 드래곤을 어떻게 죽이신 거예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당황한 기색을 숨지지 못하고 두 눈을 끔벅이고만 있자, 다영이 대신 답했다.

“그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도 했고, 양하나 헌터는 혼절하기도 했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떨까요?”

다영은 밥 먹을 땐 무거운 이야긴 별로잖아요, 라고 덧붙여 자칫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태용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다영을 힐끗 쳐다보자, 그녀가 옅게 미소 지었다.

우중충한 얼굴로 구내식당에 앉아 있던 모습은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다영 덕분에 난감한 질문은 벗어날 수 있었지만, 팀원들의 말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돔 이벤트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 앉아 있는 모두가 남이었다.

그렇기에 게이트 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 말고는 대화할 거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정적이 길게 이어졌으나 내겐 말재주가 없어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테이블만 두들겼다.

괜히 입술이 말라 물을 마셨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거 같아 머리를 굴리는데 마침 내 옆에 앉아 있던 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각인하게 됐다면서요.”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귀가에 닿았다.

나는 각인이라는 말에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일순 강우신 가이드와의 결괏값이 떠올랐다.

상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비밀로 해 주겠다더니, 벌써 소문이 난 걸까. 나는 불안하게 눈알을 굴렸다.

그때 태용은 수줍은 듯 몸을 비비 꼬며 말을 이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

모두의 시선이 태용에게 향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급히 숨기며 태용을 바라봤다.

“이번 이벤트 결과 발표가 나면 용기 내 고백해 볼까 봐요.”

그제야 소희의 물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민망함에 괜히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각인할 가이드가 계신 줄 몰랐네요.”

내 물음에 태용은 눈을 빛내며 언제 수줍어했냐는 듯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매칭 테스트의 결괏값이 높게 나온 후 그 가이드와의 사이가 발전돼 연인이 됐다는 흔한 이야기였다.

한참 볼을 붉히며 말하던 태용의 낯빛이 일순 어두워졌다.

“아시다시피 제 등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항상 퇴출 위기라 도무지 고백할 용기가 안 났거든요. 그런데…….”

태용은 조심스럽게 나와 눈을 마주했다.

“양하나 헌터님 덕분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제 실력으론 평생 3군에서 벗어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게 많아요.”

그는 이벤트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고백할 용기를 준 내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나는 별다른 할 말이 없어 그저 슬며시 웃을 뿐이었다.

매칭 테스트의 결괏값이 높게 나왔다고 모두가 각인하는 건 아니다.

평생을 함께할 가이드가 생긴다는 것은 지킬 것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스퍼의 목줄을 쥔 가이드는 연약한 존재였기에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 에스퍼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가이드의 입장에서도 어중간한 에스퍼와 각인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각인은 에스퍼와 가이드, 모두에게 어려운 결정이다.

“…….”

각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신이 떠올라 급히 고개를 저었다.

태용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소희가 질문했다.

“각인까지 생각할 정도이니 매칭 테스트 퍼센트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태용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88%가 떴어요.”

“세상에, 진짜 높은 수치네요.”

“정말요. 85%를 넘는 것도 아주 드물다면서요. 확실히 가이딩의 질이 다르던가요?”

모두의 감탄에 태용은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다른 가이드의 가이딩이 맹숭맹숭했다면 제 파트너의 가이딩은 뭔가 막 찌릿찌릿했어요! 각인하면 더 유별나진다는 데 벌써 걱정이에요.”

“각인 관계의 가이딩만 유별난 것 같지는 않던데요?”

지금껏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희민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그렇게 말했다.

박희민이 저런 미소를 지을 때면 무슨 꿍꿍이가 숨겨져 있었다.

내게 눈을 맞춰 오는 희민의 태도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태용의 질문에 희민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세 분은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 안 나실 수도 있지만, 왜 저희 게이트 아웃할 때요.”

희민의 말에 다영은 뒷말을 예감한 듯 움직임을 멈췄다.

희민은 이 모든 게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님을 이송할 때 강우신 가이드님이 참 대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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