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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3)화 (43/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2화

“…….”

나 역시 가족을 십수 년 전에 잃었다.

S급으로 각성한 이후로는 모든 친척과 연락을 끊고 오랜 시간 가족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나와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양하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고 삶의 방향을 잃은 그녀는 어쩌면 떠밀리듯 센터에 지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길어질 때쯤, 주방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모가 찻잔 세 개와 찻주전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불편해 보이는 무릎이 마음에 걸려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제가 옮길게요.”

그렇게 말하며 바짝 다가서는데,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이모의 어깨가 바짝 굳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모는 쟁반을 놓쳤다.

덕분에 찻잔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산산조각 났다.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이모가 엉덩방아 찧으며 넘어졌다.

나는 손을 내밀지도 못한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치 게이트에서 몬스터라도 마주친 듯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발 떠는 손끝도 두려움에 휩싸인 눈동자도 모두 익숙했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일순 두통이 밀려왔다.

이마를 손으로 짚고 인상을 쓰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야.”

언제 돌아왔는지 이곤이 나를 불렀다.

그제야 사념 속에서 건져진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이곤은 서늘해진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

이곤은 한 발자국 다가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유리 밟겠다. 조심해.”

그렇게 말하고는 고무장갑을 찾아 끼더니 유리를 한쪽으로 치웠다.

“이모, 괜찮으세요?”

그녀는 이곤의 말에도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듯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때 도어 록의 번호 키 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젊은 여자가 갈색 푸들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나를 발견했다.

“…….”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우뚝 멈춰 선 그녀는 깨진 유리와 그 앞에 넘어져 있는 이모를 발견하고는 사색이 됐다.

서둘러 뒤에 있던 여성에게 푸들을 맡기고는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엄마!”

가족사진 중앙에 있던 딸 선희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곤을 지나쳐 제 어머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도끼눈이 돼서는 이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쏘아붙이는 그녀의 말에도 이곤은 흔들림 없이 답했다.

“하나가 쟁반 드는 걸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모가 쟁반을 떨어트린 모양이야.”

그의 대답에 선희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

그녀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3년을 함께 산 친척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마치 원수를 마주한 듯 증오와 원망만이 가득했다.

“이모…….”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온 순간, 이모가 선희의 손을 꼭 쥐며 말을 이었다.

“그만하렴. 나가자,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이모의 말에 선희는 제 어머니를 일으켰다.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묘한 기류 속에서 상황이 정리됐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이곤에게 다가와 청소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멍청하게 서서 문밖으로 나가는 이모와 선희의 뒷모습을 쳐다볼 수 있었다.

* * *

이모와 선희가 집을 비우자, 이곤은 방에 가 있자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2층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느낀 묘한 기시감에 걸음을 멈추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여긴…….”

주춤거리는 내 모습에 이곤이 무심하게 답했다.

“네 방이잖아. 오랜만에 왔다고 너무 낯설어하는 거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3년 남짓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고는 하나 그건 벌써 2년도 더 지난 이야기였다.

하나는 아주 오랜 시간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모나 선희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양하나가 살았던 흔적 따위는 진작에 지우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 매트리스 위에 걸터앉는 이곤을 지켜보다 책상 의자를 빼 앉았다.

그러고는 조심히 물었다.

“너는 안 따라 나가 봐도 돼?”

“뭐?”

이곤이 한 말이 허세가 아닌 듯, 이모는 조카인 나보다 그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나 나 때문에 이곤과 이모의 사이가 어색해질까 봐 내심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표정을 구기며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딸도 왔는데 내가 뭐 하러 따라 나가.”

“…….”

“무엇보다 너도 집에 있고 말이야.”

그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네가 이모를 엄청 신경 쓴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신경 쓰지.”

“뭐?”

이곤은 뒤로 기울이고 있던 몸을 곧추어 세우더니 답했다.

“나는 솔직히 네가 이 집에 안 오는 게 답답했거든.”

그는 한쪽 입꼬리를 비열하게 올려 보였다.

“그렇잖아. 이모가 너 때문에 다쳤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그 사고는 이모의 잘못이었고, 네 부모님 보험금으로 이렇게 큰 집도 장만했으면서.”

이곤은 보란 듯 과장되게 손짓했다.

“너를 센터에 보내고 두 다리 뻗고 지내는 거 생각하면 왠지 열 받잖아. 하나뿐인 가족인데 말이야.”

이곤은 나와 눈을 맞춰 오더니 나직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니까 오길 잘했어, 하나야.”

분명 여기 오기 전에도 그가 비슷한 말을 한 걸 기억한다.

이것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로 말이다.

나는 순간 이곤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금세 평소의 장난스러운 얼굴로 돌아오긴 했으나 일순 그는 아주 냉소적인 얼굴이 됐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표정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묘한 기시감에 내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데 이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나온 김에 내가 뭐 마실 거라고 가지고 올게.”

이곤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문 너머로 그의 걸음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고서야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 집에 오고부터 계속 평정심을 잃는 기분이었다.

나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곤은 모르는 척하지만 집 안의 분위기는 언제 터질지 모를 아슬아슬했다.

그러니 이곤이 돌아오면 그냥 센터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계속 날 경계하던 이모와 선희의 눈빛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무엇보다 이곤은 이모가 나 때문에 다쳤다고 했다.

그녀의 불편해 보이던 다리가 떠올랐다.

“……역시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걸.”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낯익은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책장의 책들 사이에 껴 있는 검은색 클리어 파일.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분명 처음 왔음에도 마치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착각이라 생각했는데 저 파일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희미한 기억 같은 게 밀려왔다.

나는 저 파일을 알고 있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 들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파일 안에는…….

나는 파일을 열고 가장 첫 장에 보이는 글을 나직하게 소리 내어 읽었다.

“성시현, A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 신기록. 신이 내린 능력.”

낯간지러운 헤드라인은 성시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두꺼운 검정 파일을 주르륵 넘겼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성시현의 활약상이 담긴 기사였다.

가장 마지막 장에는 성시현의 사망을 대서특필한 기사가 붙어 있었다.

그 뒤로 스크랩할 공간이 더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내가 기절했던 날, 꿈속에서 봤던 것이었다.

그때는 단순한 꿈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그것이 양하나의 기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지하철에서 본 낯익은 풍경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두 사람의 눈빛까지.

내 기억일 리 없는 것들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게 이 몸에 남아 있는 양하나의 기억인 모양이었다.

나만 양하나의 몸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양하나도 내 영혼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파일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집에 온 이유 역시 내가 양하나의 몸에 빙의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방에서 이런 걸 발견하게 되니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양하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가진 단서라고는 손에 쥔 파일이 전부이긴 했으나 어쩌면 나를 이 몸 안에 불러들인 것이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생각이 엉켜드는 순간 문 너머로 빠르게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파일을 제자리에 넣자마자 이곤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마실 걸 들고 오겠다던 그는 한 손에 핸드폰만 쥔 채 제법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하나야, 센터로 빨리 복귀해야 할 거 같아.”

“뭐?”

“가이딩 팀 호출이야. 너…… 강우신 가이드랑 매칭 테스트 봤어?”

나는 그제야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을 확인했다. 무음으로 둔 핸드폰 화면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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