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1화
센터의 에스퍼에 대한 막역한 로망을 말하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대단히 비관적으로 에스퍼를 평가해 감정 기복이 심해 보였다.
어떻게 센터 에스퍼로 뽑혔나 싶을 정도로 자기소개서는 엉망이었다.
그래도 그것을 통해 알고 싶은 정보들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양하나는 일찍이 부모님을 잃었다.
그렇다면 친부모 대신 그녀를 돌본 보호자가 있었을 텐데, 이곤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양하나의 이모였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요즘 좀 유명한 게 아니니까, 이모 집까지 기자들이 찾아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연락을 잘 안 하고 사니까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좀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걱정되면 전화해 볼래?”
확실히 이곤의 말처럼 벌써 기자들이 그곳까지 들이닥쳤을 수도 있다.
“…….”
하지만 그 사실보다 더 내 마음을 혹하게 하는 건 다른 거였다.
죽은 지 6년이 지나서야 알지도 못하는 양하나라는 헌터의 몸에 내가 빙의한 이유.
지금까진 서초 게이트의 정보만 찾으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때문에 강박적으로 서초 게이트를 조사하는 데만 매달리고 양하나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양하나의 몸으로 성시현의 에너지를 불러내고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비정상적으로 큰 에너지 그릇과 주변 사람의 무시와 괴롭힘에도 꿋꿋이 살아온 양하나.
겉보기엔 화려한 삶을 살아온 나와 대척점에 있는 듯하다가도 묘하게 닮은 점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양하나의 몸에 빙의된 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정보 역시 게이트의 정보만큼이나 알아내기 어려웠다.
본인에 대한 걸 타인에게서 묻기란 적지 않게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쉽사리 이곤에게도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양하나의 본적이라니. 흥미로웠다.
이곤의 말을 통해 유추해 보면 이모와 사이가 그리 좋은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부모를 잃은 양하나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녀에게서 양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 끝에 나는 불쑥 말을 이었다.
“……가 볼까?”
그러자 연락처를 뒤적이던 이곤의 두 눈이 커졌다.
“뭐?”
확 좁혀진 그의 미간에 순간 양하나가 하지 않을 법한 말을 했다는 걸 직감했다. 나는 급히 말을 이었다.
“역시 너무 갑작스럽지. 그냥 네 말을 들으니 한 번 가 볼까 하고.”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가늘어진 이곤의 눈매는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혀를 깨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이곤이 입을 열었다.
“좋아.”
“뭐?”
“너 센터에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잖아? 오랜만에 가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 거 같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이곤이 뒷말을 이었다.
“센터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진 않았는데, 오랜만에 바깥바람도 쐬고 좋지.”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바깥바람이라니? 너 어디 가?”
내 물음에 그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응, 나도 너랑 같이 갈 거니까.”
* * *
양하나의 이모 댁은 인천에 있었다.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곤은 자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차고지에서 차를 빼 나가는 쪽이 더 기자들의 눈에 띄기 쉬울 거 같았다.
그래서 후문을 통해 조심히 빠져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가는 길 내내 나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이곤은 이모가 너보다 자길 더 예뻐했다며 제가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 답했다.
계속 사양하는 것도 이상했고 이곤을 데리고 가는 편이 뭐든 알아내기 쉬울 거란 판단이 서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철을 타고 이곤과 나란히 앉아 인천으로 향했다.
이곤은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었는데, 고향 집을 방문하는 자의 설렘 같은 것이 묻어났다.
양하나와의 추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당연하게도 내가 공감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대략 그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양하나는 13살에 부모님을 여읜 후로 3년간 이모 댁에서 지낸 모양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왜 이모네 댁에서 살던 양하나가 센터 에스퍼로 지원한 건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자기소개서 내용을 보니 딱히 센터 소속의 헌터에 큰 뜻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곤의 말로 미뤄 보았을 때, 양하나는 이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듯했다.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지원했다고 한들, 왕따 당하는 것보다야 집이 편하지 않나.’
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악착같이 센터에 남으려 했던 양하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져 나는 전철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한산해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익숙할 리 없는 풍경인데…….
어째서인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낯익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을 때, 이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시선은 자연히 이곤을 따랐다.
“이제 내려야 돼.”
그의 말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왜 가겠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모는 아마 예전 그대로이실 거야.”
“…….”
“괜히 또 상처받지 말라고. 너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잖아.”
무심하게 웃어 보이는 이곤의 옆얼굴을 지그시 쳐다보는데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하차하는 그를 따라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역에서 택시를 타고 몇 분간 이동하자 전원주택 단지가 나왔다.
낡긴 했지만, 생각보다 큰 집에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이곤이 주저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마당을 울리는 커다란 벨 소리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머지않아 인터폰을 통해 노이즈 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이곤은 카메라 가까이 얼굴을 비치며 답했다.
“저희예요. 하나랑 곤이요.”
이곤의 말에 인터폰 너머가 일순 정적에 잠겼다. 잠깐의 침묵 뒤 문이 열렸다.
우리는 열린 문을 통해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을 가로지르자, 문 앞에 카디건을 걸친 중년 여성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 위로 불안한 그림자가 졌다.
이곤은 그 명확한 변화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해요, 이모.”
그의 너스레에 중년 여성의 시선이 힐끗 나를 향했다가 다시 이곤에게로 돌아갔다.
“……그래. 연락은 하고 오지 그랬니.”
“…….”
전철에서 내리기 직전, 이곤이 내게 한 말이 하나뿐인 이모네 댁을 찾아가는 조카에게 하기에는 너무 정 없는 것이지 않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양하나의 이모를 마주하자 그의 말이 맞았음을 통감했다.
그녀는 이곤의 경고보다도 더 서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렴.”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몸을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말했다.
자연스레 들어가는 이곤을 따라 나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곤은 능숙하게 거실로 향하더니 테이블 의자를 빼고 앉았다. 나는 잠시 쭈뼛거리다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문을 닫고 들어온 이모를 향해 이곤이 입을 열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어디 가시고 혼자 계세요?”
그의 물음에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던 그녀가 답했다.
“선희랑 강아지 산책하러 갔다. 곧 올 거야.”
나는 그 말보다도 걸음에 주목했다. 보아하니 오른 다리가 불편한 듯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미리 듣지 못했던 터라 의도치 않게 빤히 쳐다봐 버렸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이모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차라도 내오마.”
이모가 주방 쪽으로 사라지고 이곤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나는 넓은 거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어색함에 괜히 주변을 살피는데 테이블 맞은편에 걸린 가족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에는 딸로 보이는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고, 이모와 이모부로 추정되는 남성이 양옆에서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제법 단란해 보였다.
오래전에 찍은 사진인 듯 사진 속 이모의 모습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젊은 건 물론이고 내게 보인 그늘진 낯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살았을 양하나는 지금의 나처럼 이 자리에 앉아 저 가족사진을 보고 있었겠구나.
오래도록 지겹게 말이다.
“…….”
이런 큰 집에 사는 걸 보면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 조카 한 명 정도는 함께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녀가 에스퍼라 불편했을까?
아니면 붙임성 없는 성격 때문에 스스로 겉돌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