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0)화 (4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0화

“테스트 다 끝났습니다. 양하나 헌터.”

나를 깨우는 소리에 스르륵 눈을 떴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옆자리를 보니 이미 우신은 떠나고 없었다.

“…….”

텅 빈 자리를 보고 있자, 담당자가 밖으로 안내해 줬다.

그를 따라 문을 열고 나가는데, 한 발자국을 내딛기 무섭게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테스트실 내부가 보이는 유리창 앞에 우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치자 우신은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순간 6년 전 내가 깨어나길 기다린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내 괜한 생각이라고 고개를 젓는데, 담당자도 우신을 봤는지 말을 이었다.

“강우신 가이드님이 알려 주셔서 헌터님이 아직 테스트실에 있단 걸 알았습니다.”

“…….”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섬세하시더라고요.”

직원의 말에 나는 그렇냐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 * *

접촉 검사를 본 터라 결괏값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입사 후 처음 접촉 검사를 했을 때는 혹시 높은 매칭률이 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하지만 테스트 대상이 강우신이었다.

“…….”

일순 얼마 전 그와 가이딩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온몸의 감각 기관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찰나였고,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때만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나는 괜히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건 단지 우신이 S급으로 재각성하며 생긴 간극일 뿐이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결괏값을 기다리며 골머리 앓아 봤자 소용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덕분에 의도치 않게 휴식 시간이 생겼다는 거였다.

이벤트에 참여했던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센터 밖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나들이라 해도 근처 맛집이나 돌 생각이었는데 센터 밖으로 몇 발자국 나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양하나 헌터다!”

모자를 눌러쓰고 센터 정문을 통과하기 무섭게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내가 고개를 들자 정문 입구에 잔뜩 모여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내 쪽을 바라봤다.

그때 타이밍 좋게 문자 하나가 왔다.

띠링-

소명에게서 온 문자였다.

[아 참, 제가 깜빡하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요 며칠 센터 밖으로 안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벌써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있더라고요^^]

“…….”

그 문자를 읽기 무섭게 기자들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양하나 헌터님! C급으로 이루어진 팀으로 E형 드래곤이 있는 게이트 클리어에 성공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이 근래 감시과가 헌터님을 연달아 회부했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재각성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양하나 헌터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정면에서 터지는 플래시에 눈이 부셔 캡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능력만 쓰면 번번이 쓰러지는 이런 몸뚱이 안에 들어와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센터의 상부 사람들이나 기자들같이 성가신 존재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C급 정신계인 데다 인사 평가가 엉망인 에스퍼를 누가 주목하겠는가.

그런데 근래 눈에 띄는 짓을 몇 번 해 버렸더니 유일한 장점마저 사라진 듯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옹송그리고 기자들을 지나쳤다.

그러나 입장 제한선까지 따라붙는 탓에, 결국 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센터 밖에서 휴식하긴 글러 먹게 됐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나는 센터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센터 직원들과 에스퍼, 가이드의 시선이 뒤통수에 따라붙었다.

차라리 모두에게 무시당할 때가 더 나았다.

날 괴롭히던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 양하나를 없는 사람 취급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가는 곳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C급의 반란.

누군가에겐 주제넘은 발악처럼 보였고 다른 누군가에겐 희망의 불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난 정말이지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꼬리표였다.

나는 사내 라운지를 한 바퀴 돌고야 어딜 가든 마음 편하게 쉴 수 없음을 인정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 * *

띵동-

초인종 소리에 손 하나 들어올 만큼 문을 열었다.

그 틈으로 이곤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뭐 하냐?”

“……너 혼자야?”

내 물음에 이곤이 픽 웃으며 답했다.

“한바탕했다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장난기 가득한 어조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너도 그 이야기하러 온 거야? 그럼 돌아가. 피곤하니까.”

그대로 문을 닫으려 하자, 이곤이 급하게 손을 문 틈새로 비집어 넣었다.

“에이, 출장에서 방금 막 돌아온 친구를 문전 박대 하다니, 너무한 거 아냐?”

“…….”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악력 때문에 문이 꿈쩍도 안 했다.

나는 괜히 힘 빼지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이곤은 활짝 웃어 보이며 유명하신 양하나 헌터님 방에 들어올 수 있어 영광이라고 끝까지 장난을 쳤다.

그는 포장해 온 초밥을 꺼내며 능숙하게 식사 준비를 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출장 간 곳에서도 너희 이야기가 들려오냐. 이상 게이트 출현에 몇 년 만의 나타난 드래곤형 몬스터를…….”

이곤은 젓가락을 내밀며 비뚜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C급 정신계 에스퍼가 선두로 선 팀이 잡았다고.”

“……그건.”

대충 둘러대려고 하자, 이곤이 빠르게 말을 잘랐다.

“나한테까지 거짓말하려는 건 아니지?”

“…….”

귀신 같은 놈이었다. 거짓말을 하기도 전에 눈치채서는 말을 막았다.

거짓말을 못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는 내 변화에 민감했다. 양하나를 오래 봐 온 탓인가.

나는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받아 들며 말을 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엄밀히 말하자면 E형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E형이던 것이 전투 중에 결국 화염 속성의 드래곤으로 변이하긴 했다.

그러나 상부만 알고 있는 정보를 구태여 말해 줄 필요가 없었다.

내 말에 이곤은 흥미롭다는 듯 초밥을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하나 네가 모은 헌터들은 거의 다 B, C급의 비전투 계열들이었다며. 한 명 있던 물리계 에스퍼도 전투 경험이 거의 없어서 재활용 팀이라고…….”

순간 내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이곤이 눈매를 휘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안, 미안. 출장 다녀왔더니 거기 있던 헌터들 말투가 옮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행이라고.”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의외의 말에 나는 젓가락질을 멈췄다.

이곤은 민망한 듯 괜히 과장된 몸짓으로 구구절절 말을 이었다.

“출장지에서 소문 속 C급 에스퍼 이름이 양하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앞이 핑 돌았어.”

“…….”

“평소에 드래곤은 커녕 B급 몬스터 한 마리에도 절절매던 앤데, 혹여라도 온몸의 뼈가 부서져 병실에 누워 있으면 어쩌지 했거든. 근데 이렇게 괜찮은 거 보니까 다행이야.”

“그래, 고맙다. 덕분에 점심은 안 굶었네.”

내 건조한 대답에 이곤이 잠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무언가 번뜩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센터에 너랑 인터뷰 한번 해 보겠다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던데, 너네 이모 댁까지 몰려가진 않았나 몰라.”

“이모?”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다. 내 물음에 이곤은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날 쳐다봤다.

서둘러 말을 돌리려 했지만, 이곤이 한발 빨랐다.

“너…… 또 이모랑 연락 안 하고 있구나.”

“…….”

내 침묵에 이곤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제 이마를 쓸어 올렸다.

“넌 내가 말 안 하면 꼭 그러더라? 그래도 그렇지, 일 년에 한 번씩은 연락 넣으라니까.”

“…….”

“하나뿐인 가족인데.”

걱정하는 듯 덧붙여진 한마디가 어딘가 묘하게 들렸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이곤은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안 그래?”

양하나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볼 때, 그녀의 노트북에서 센터 에스퍼로 자원하기 위해 쓴 자기소개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자기소개서는 대충 쓴 듯 아주 성의 없었고 거의 일기에 가까워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