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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9)화 (39/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9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시현과 감응한 시점에선 세 사람은 모두 혼절한 상태였다.

내 기억상 내 모습을 본 건 다영과 희민 그리고 우신뿐이었다.

다영이나 희민의 경우 등급도 높고 경험도 많으니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우신에 관해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다영과 희민은 내 감응을 지켜보긴 했으나 내가 무엇에 감응한 것인지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신은 달랐다. 우신은 내가 시현의 능력을 사용했다는 것을 아주 완벽하게 캐치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그는 굉장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결국 끝까지 모르는 척하겠다는 거군요.”

그러니 변수가 생긴다면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강우신 때문일 것이다.

“하…….”

머리가 깨질 듯 복잡해 나는 자리에 누웠다.

아무리 고민해 본들 지금은 그저 결과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그렇게 사흘이 더 지나니 감시관이 방으로 찾아왔다.

어떤 처우를 받게 될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있는데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조사가 끝났으니 나가셔도 좋습니다.”

“네?”

의외라는 내 얼굴에 감시관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남은 여섯 사람의 진술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양하나 헌터의 진술과 일치해 혐의 없음 처분됐습니다.”

내 얼굴이 저절로 환해졌다. 사흘 내내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모두가 뜻대로 움직여 준 모양이었다.

기쁨에 입매가 올라가는데, 날 안내하는 감시관이 출입구가 있는 중앙 계단이 아닌 서쪽으로 향했다.

“혐의 없음으로 숙소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나요?”

내 물음에 앞서 걷던 감시관이 답했다.

“남은 테스트가 있어 그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내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테스트요?”

재각성 테스트를 떠올렸다. 지난 심문에서도 재각성 테스트를 받았으니 말이다.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재각성 테스트라면 지난번에 분명……!”

내가 말을 채 다 잇기도 전에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재각성 테스트가 아닌 매칭 테스트라 들었습니다만.”

“네?”

* * *

센터에 소속되는 순간, 에스퍼는 센터 소속의 모든 가이드와 몇 달에 걸쳐 매칭 테스트를 봐야 했다.

그래야 이후 알맞은 능률과 효율을 가진 가이드와의 연결이 가능하니 말이다.

입사 직후 질릴 만큼 매칭 테스트를 본 후에는 신입 가이드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테스트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성시현이었을 때는 센터 가이드 중 최소 매칭률도 충족하는 이가 없어 길드의 가이드까지 되는대로 테스트를 보고 다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S급 에스퍼였기에 주어진 특권이었다.

양하나 역시 2년 전 입사 당시 센터 소속의 가이드 모두와 테스트를 마쳤다.

그렇기에 나는 이 타이밍에 함께 매칭 테스트를 봐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쉽사리 추측하지 못했다.

마침내 당도한 테스트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강우신.”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입사와 동시에 모든 가이드와 테스트를 본다고 하지만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이다.

S급 성시현이 여러 길드의 가이드와 매칭 테스트를 봤던 것처럼 S급 가이드인 우신은 상급 에스퍼들 중에서도 사전 미팅한 사람만 가이딩했다.

그렇기에 C급의 양하나는 그와 매칭 테스트를 본 이력이 없을 터였다.

“…….”

우신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매칭 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안쪽으로 향했다.

황당해하는 내 얼굴이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간단하게 채혈 검사를 할 것이라 여겼다.

입사 후 몇 달에 걸쳐서 하는 매칭 테스트도 대부분 채혈 검사를 통해 결과를 받았다.

접촉 검사보다 정확도가 떨어지긴 하나 그게 가장 빠르고 간편했다.

그런데 내가 안내받은 곳은 접촉 검사를 위한 탈의실이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탈의를 하며 담당자에게서 짧게 이 상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심문을 끝내고 나오기 무섭게 피로한 얼굴을 한 우신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군 소속 C급 에스퍼 양하나와 매칭 테스트 보겠습니다.”

당연하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테스트를 위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각성 테스트 때 봤던 것과 비슷한 캡슐이 그곳에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매칭 테스트 상대와 얇은 젤리 막을 하나 사이에 두고 등지고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자세한 정보 값까지 나오는 기계였기에 한 번 사용할 때면 수천이 깨져 잘 사용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나는 미리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힐끔 쳐다보다 그의 등 뒤로 가 앉았다.

“30분 가까이 걸립니다. 편안하게 휴식해 주세요.”

담당자의 말을 끝으로 내 몸을 감싼 의자가 서서히 달궈지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긴장이 서서히 풀려 갔다.

요 며칠 심문 결과를 기다리며 잠을 설친 탓인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문득 성시현일 때도 이런 식으로 우신과 매칭 테스트를 봤던 일이 떠올랐다.

* * *

그 당시에는 이미 가이드가 없는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받는 가이딩도 불편하고 기분 나쁠 뿐이었다.

그래서 신입 가이드가 들어왔다는 말에 크게 반가워하지도, 그렇다고 마뜩잖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껏 그래 왔듯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여겼다.

덕분에 2달이 지나고야 의례적인 매칭 테스트를 위해 우신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신을 마주하고 인사를 받았다.

지나가며 두어 번 봤던 그의 인상은 서늘했다.

무표정한 그를 보고 은연중에 어린놈 표정이 뭐 저렇게 어둡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우신은 스쳐 지나가며 본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글서글했다.

그를 데리고 온 팀장이 나서 그의 프로필을 읊어 주었고, 우신은 그 뒤에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탓에 괜한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는 생각에 일순 미안한 마음도 들었었다.

나는 짧은 인사 뒤 매칭 테스트를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매번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방문했던 터라 매칭 테스트를 할 때면 습관처럼 눈이 감겼다.

내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 눈치를 보느라 누구 하나 쉽사리 다가오지 않은 탓에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몸이 한결 개운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몸을 굳혔다.

팀장과 연구진들 모두 떠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강우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놀란 눈을 끔뻑이며 우신에게 다가갔다.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내 물음에 우신은 한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입을 열었다.

“제 소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 같아서요.”

“뭐?”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기다렸습니다.”

우신의 말에 나는 두 눈을 끔뻑였다.

생각해 보니 그를 데리고 온 팀장만 한참 떠들었지 우신은 한마디도 못 한 채 밝은 미소만 띠고 있었다.

하지만 대개 신입들은 내 앞에 서면 입이 무거워지곤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상대 가이드에 대한 정보를 받아 그가 신입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따로 인사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껏 이런 사소한 걸 신경 쓴 가이드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우신은 일순 당황한 듯 두 눈을 끔뻑이다 말을 이었다.

“혹시 불편하신가요?”

그의 물음에 나는 그제야 손을 저었다.

신입 가이드라더니, 요즘 애들은 패기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야.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그의 장단을 대충 맞춰 주고 보낼 생각이었다. 별것 아닌 내 물음에 우신이 눈매를 휘며 답했다.

“강우신입니다.”

반달처럼 예쁘게 휜 눈매가 제법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신이 뻗은 손을 잡았다.

악수에 응했을 뿐인데 그의 손을 그러쥐는 순간 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때는 그 감각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우신과의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이 무색하게 7%라는 너무나도 낮은 값이 떴다.

그걸 보고야 참 나답지 않은 기대를 품었다는 생각이 들어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이후 우연히 받기 시작한 우신의 가이딩이, 나만 보며 웃어 보이는 그의 미소처럼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 감각을 잊지 못해 죽기 직전까지도 우신의 가이딩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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