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8화
이벤트 돔 안에서의 모든 상황을 관리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다영을 이끌고 오픈 필드를 능숙히 거니는 모습도, 반나절도 안 돼서 게이트 주인 방을 여는 조건을 찾은 모습도 말이다.
나름 그들의 시선을 의식해 조건을 알아챈 후에도 한참을 더 밀림 속을 헤맸다.
의심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상 게이트의 클리어 건이 주목을 끌며 내 모든 행적이 그들의 의심을 산 것 같았다.
감시관은 촬영된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영상 속에서 나와 다영은 밀림 속을 주저 없이 헤치고 다니면서도 절대 웨어울프와는 마주치지 않았다.
얼마간 영상을 지켜보던 감시관이 화면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봤다.
“오픈 필드에서 낮은 등급의 에스퍼들이 소수로 찢어져 움직인 것에 놀랐습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죽거나 다칠 거라 생각했고요.”
높낮이 없는 음조와는 달리 눈빛이 예리했다.
“……운이 좋았죠.”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살 행위와 다를 것 없는 행동이라 여겼습니다만, 놀랍게도 영상을 몇 번 반복해서 보다 보니 흥미로운 게 보이더라고요.”
“…….”
감시관은 영상을 살짝 뒤로 돌려 슬로 모션으로 다시 재생시켰다.
그러자 선두로 나아가던 내가 꺾인 나뭇가지의 방향을 확인하고는 말없이 방향을 트는 장면이 나왔다.
아주 찰나였고 나는 다영과 내내 시답지 않은 대화를 했다.
눈동자의 움직임 말고는 수상할 것도 없는 모습이었는데, 용케도 그걸 잡아냈다.
내가 혀를 작게 차자 감시관이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끈질기다 못해 거머리 같은 감시관은 놀랍게도 4시간 동안 카메라에 찍힌 내 행동을 초 단위로 분석하여 보여 주었다.
빈틈없이 철저한 모습에 나도 중간부터는 혀를 내둘렀다.
“여기까지가 20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양하나 헌터가 보인 이상 행동 113가지였습니다.”
“…….”
나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감시관님의 뜻은 알겠지만, 이상 행동이라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영상 속 제 행동은 헌터로서 당연히 익혀야 하는 몸가짐 아닌가요.”
이런 놈일수록 정통적인 방법으로 상대하는 게 좋다.
괜히 꼼수를 부리려고 했다가는 함정을 밟기 쉬웠다.
내 말에 감시관은 몇 번 눈을 끔벅이다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
“…….”
“솔직히 말하자면 웨어울프의 특성과 밀림에서의 행동 수칙, 오픈 필드의 게이트 보스 출현 조건 등 양하나 헌터가 이번 돔 안에서 보인 행동은 모두 베테랑급의 헌터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군더더기 없는 판단이었습니다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감시관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말의 요지를 잘못 이해하신 거 같습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어떻게 양하나 헌터가 베테랑 헌터급의 경험을 지닐 수 있냐는 겁니다.”
“묘한 말씀이네요.”
“지금까지 실적은커녕 여러 번의 경고로 퇴출 위기에 놓였던 사람이 저런 식으로 현장에서 판단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시관의 한쪽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차라리 그 게이트를 한 번 클리어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게 더 믿음직스러운 변명입니다.”
“……게이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내 대답은 같았다. 감시관도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했는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할 말이 떠올랐는지 내 말꼬리를 잡았다.
“그 점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네?”
뜻밖의 말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감시관이 노트북 모니터에 영상 대신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나는 몸을 굳혔다.
“…….”
“보아하니 본 필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뿐만 아니라 성시현 헌터가 클리어했다는 점까지 알고 있더군요.”
모니터에 떠오른 건 성시현, 그러니까 내 사진이었다.
화려한 금색의 머리칼이 허리춤까지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타인이 되어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저 무료한 눈빛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가 보였다.
“성시현 헌터를 평소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가 성시현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저들의 물음을 그저 흘려들을 순 없었다.
나는 동요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감시관을 똑바로 바라봤다.
“글쎄요, 고인이 된 사람에 대해 딱히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내 대답은 단호했다.
생각보다도 더 건조하게 말이 나가 버렸지만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내 대답에 감시관은 잠시 무언가를 기록하고는 성시현의 사진을 집어넣었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그는 드래곤의 사체 사진을 보여 주며 쉴새 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양하나 헌터의 능력이 정신 감응이라죠.”
그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감시관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정신 감응은 감응한 상대의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상대의 에너지를 능숙히 운용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요. 제 말이 맞나요?”
이미 다 조사한 마당에 구태여 내 확인을 받으려 들었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관의 말처럼 정신 감응엔 확실한 한계가 있었다.
일전에 동굴에서 그랬듯 일정 범위 내에 강한 에스퍼가 없다면 아무리 타인의 에너지에 감응한다 해도 약한 힘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감시관은 내 긍정에 드래곤의 시신을 찍은 사진을 확대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분명 13번 팀에 양하나 헌터가가 감응했을 법한 에스퍼는 B급의 염동력을 사용하는 김다영 에스퍼밖에 없지 않습니까?”
“…….”
“김다영의 에스퍼의 힘으로는 화염 속성으로 변이한 드래곤을 잡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그의 말이 맞았다.
정신 감응의 이론대로라면 나는 B급인 다영의 능력에 기대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 힘으로 드래곤을 대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곳에서 죽었어야 하는 게 맞았다.
이론대로라면 말이다.
감시관이 눈썹 한쪽을 치켜들었다.
“그런데도 김다영 헌터의 힘과 감응해 드래곤을 잡았다는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나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는 시도조차 못 할 방법으로 정신 감응을 성공시켰다.
바로 S급 물리계 에스퍼 성시현, 바로 나 자신과 감응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기에 이 심문은 계속해서 헛돌 수밖에 없다.
나는 다리 한쪽을 꼬며 답했다.
“감시관님께서 믿든 믿지 않든 그게 사실입니다.”
이 지루한 심문을 끝낼 때가 왔다.
“정신 감응에 대해 숨겼던 건 유감이지만, 현장을 봐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정신 감응은 오직 범위 내의 타인의 에너지에만 감응할 수 있습니다. 전 B급 다영 헌터의 에너지에 감응했습니다.”
“…….”
“살기 위해서요.”
이글거리는 감시관의 눈을 피해 어깨를 으쓱이며 심드렁하니 말을 맺었다.
“뭐, 운이 좋았죠.”
* * *
그 이후 서너 시간을 더 붙잡혀 있었다. 감시관은 내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덕분에 지독한 유도 심문을 받았다.
내가 그를 끈질기다고 여기는 것만큼 그도 날 징하다고 여기며 혀를 내둘렀다.
며칠 더 그에게 붙잡혀 있을 용의가 있었으나, 그는 결국 심문 대상을 바꾸기로 한 듯했다.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한 13번 팀 팀원들로 말이다.
그들이 심문을 받는 동안 나는 취조실이 있는 건물의 쪽방에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침대와 테이블만으로도 꽉 차는 좁은 방이었다.
평범한 방 같지만, 침대 맞은편에 난 작은 창문은 특수 창살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제는 대놓고 범죄자 취급이었다.
심란해해 봤자 이 방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감시관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13번 팀 팀원들의 심문이 걱정스럽긴 했다.
병실과 취조실, 이 쪽방까지 모두 외부와 격리돼 있었다.
덕분에 강우신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안부도 알지 못했다.
팀원들이 참고인으로 불려 올 수 있겠다고 여겼지만, 설마 그 많은 인원을 전부 일대일로 심문할 줄은 몰랐다.
정신계 에스퍼가 동원된다면 태용을 비롯한 낮은 등급의 에스퍼 세 사람은 아는 것들을 털어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