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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5)화 (3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5화

“소명 반장님, 아니, 소 대리님이라 부르면 될까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

여기서부터는 도박이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조사인 병실에 있는 이유라면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게이트가 이상 게이트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다.

게이트 클리어 이후 당도한 현장 관리인들이 게이트 정보를 수집하며 자연히 게이트 주인의 사체를 마주했을 것이다.

아무리 이상 게이트라지만 드래곤은 최소 A급, 그중에서도 상위 랭크에 속할 만큼 위험한 몬스터다.

그러니 현장 팀에겐 하나의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어떻게 B, C급 에스퍼만 있는 13번 팀이 이 게이트를 클리어했을까.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다.

이런 형식적인 사과로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정말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는 말이다.

이따위로 일 처리하는 게 이제 넌더리가 나서 화도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를 믿고 목숨을 건 싸움을 함께해 준 팀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그들에게도 이런 성의 없는 사과했을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의례적인 사과만 하고 게이트 클리어에 대한 호기심을 풀려는 속이 너무 훤히 보였다.

내가 조사인 병동에서 눈을 뜬 게 그 증거였다.

몇 달 전 비슷한 일로 감시과에 회부된 적이 있었기에, 이들의 의구심이 내게 집중된 건 당연했다.

다른 팀원들에게 불똥을 튀기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작은 조소 끝에 표정을 가다듬었다.

“제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 대리님도 어깨에 들어간 힘을 좀 빼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소명은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알고 계시죠? 몇 달 전부터 제 가이딩 적합도에 문제가 있다는 거.”

“…….”

역시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의 침묵이 내게 확신을 줬다.

나는 최대한 태평한 모습을 연기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역시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이 다르긴 다른가 봐요. 지금껏 받은 가이딩 중 컨디션이 가장 좋네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빙의 전의 삶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에너지의 흐름이 안정적인 건 처음이었다.

내 말에 소명은 잠시 곤란한 얼굴이 됐다.

얼마든지 가차 없이 거절당할 수 있는 제안이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이라면…….

센터가 내 가이딩 효율까지 확인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런 도박도 먹히지 않을까.

이런 내 희망에 응하듯 소명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죠.”

나는 눈매를 휘며 웃어 보였다.

“제 협조를 바라신다면 환자 몸 상태부터 똑바로 봐 주세요. 가이딩 한 차례만 더 받고 나면 뭐든 따를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

나는 웃음기를 지우며 다시금 단호하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강우신 가이드 어디 있죠?”

* * *

내 예상대로였다. 강우신은 나와 같은 조사인 병동 건물에 격리돼 있던 모양이었다.

소명은 잠시 통화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얼마간 돌아오지 않던 그녀는 커다란 덩치에 새카만 정장을 빼입은 에스퍼 둘과 돌아왔다.

순간 도박이 실패한 건가 싶었지만, 소명이 말을 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지만, 내부는 모두 촬영되고 있습니다. 10분 안에 해결하고 나오세요.”

결국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죠.”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직후 바로 옷을 갈아입고 정장 차림의 에스퍼를 따라 우신이 격리된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제법 삼엄했다.

에스퍼를 격리해 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에너지 흐름을 방해하는 정제석과 경비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에스퍼의 경우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탈출 위험도가 높기에 격리에 사활을 거는 것이 이해됐지만 강우신은 가이드였다.

그러니 이런 삼엄한 분위기가 내 눈에는 그저 S급 가이드를 향한 숨 막히는 집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팍팍한 감시 속에서 살아왔을지 안 봐도 훤했다.

곧 검은 철문으로 된 방문 앞에 도착했다.

“잠시 대기합니다.”

안내를 위해 앞서가던 에스퍼가 손을 뻗어 나를 멈춰 세웠다.

이어셋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 중인 듯했다.

정제석으로 만들어진 검은 철문을 보고 있자니, 문득 병실에서 소명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송하는 과정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는 그저 우신의 위치를 알려 주기 싫어서 말한 핑계라 여겼는데, 어째서인지 그 말이 순간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말한 작은 사고가 뭘까.

머리를 굴려 보지만, 소명 역시 A급의 정신계 에스퍼였다.

그런 그녀가 가이드를 상대로 ‘사고’라 지칭할 만한 일이 무엇일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 와 고민한들 달라질 것도 없었다.

결국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강우신을 찾아오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곧 열릴 철문 안으로 들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확인하면 됐다.

“입장하세요.”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리자 에스퍼가 말했다.

그들은 문 앞에 대기한 채 나만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환했다. 새하얗고 넓은 방 안에는 1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짙은 남색의 소파에 강우신이 앉아 있었다.

안대를 쓰고 있는 탓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내가 입장함과 동시에 손끝이 굳는 걸 보니 분명 깨어 있는 게 분명했다.

“…….”

강우신을 마주하면 초조한 마음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목을 잡고 걸음을 느려지게 하는 이런 불안한 마음을 정리해야,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하얀 방 안 작은 소파에 기대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피가 차게 식는 거 같았다.

* * *

양하나가 달라졌다고 느낀 건, 일 년 만에 마주친 복도에서였다.

작년 가을 1, 2군 합동 훈련에서 우신은 그녀와 처음 마주쳤다.

2군의 양하나가 속한 조를 담당했기에 입사 후 실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늘 어두운 낯에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그녀는 그저 그런 C급 정신계 에스퍼일 뿐이었다.

그런 말을 남기기 전까지 말이다.

“생각한 것보다 더 최악이네요. 그쪽이나 그 사람이나.”

엉망진창이었던 만남 이후 우신은 다시는 양하나를 보게 될 일이 없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도에서 마주친 양하나가 먼저 아는 체했다.

“명성과 달리 도망가는 뒤꽁무니가 더 잘 어울리시네요.”

그것도 꽤나 건방진 말로 말이다. 어떻게 매번 자신이 신경 쓰는 부분을 건드리는지.

원래라면 귀담아듣지 않고 넘어갈 말이었는데 눈이 마주친 양하나의 표정이 이전과 달랐다.

누군가와 닮은 듯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 때문일까, 우신은 복도 한복판에서 충동적으로 가이딩을 시도했다.

호출이 없었다면 정말 그 상태로 가이딩을 해 버릴 뻔했다.

겨우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드디어 자신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충동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저 이 근래 일이 힘들어서 괜한 생각이 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머지않아 우신은 양하나의 모습 위로 그리운 얼굴을 겹쳐 보게 됐다.

제1 훈련장에서 그녀는 1%의 가능성 때문에 몸을 날려 S급 에스퍼의 공격을 받아 냈다.

저와 무슨 애틋한 사이라고 그런 짓을 한 건지.

우신은 하나의 미련하고 멍청한 모습이 자꾸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진저리가 났다.

그러니까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양하나의 병실을 방문한 건, 단순히 빚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남을 위해 제 몸 하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에 이골이 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자신의 뜻만 전하고 나면 다시는 양하나와 볼일 없을 거라 믿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날 지키려고 하지 마십쇼. 하나도 고맙지 않으니.”

하지만 어딘가 달라졌다 느낀 양하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거 성시현 때문인가요?”

우신을 관통했다.

그런 상태로 한 팀이 되어 밀림에 들어가게 됐을 땐, 이상하게 그녀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버릇이 시현 선배와 닮아 보였다.

저 보란 듯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괜한 소리까지 하게 됐다.

“시현 선배를 흉내 내는 건 단순히 저를 자극하기 위함입니까?”

그러자 양하나는 어처구니없는 얼굴이 돼서는 우신을 바라봤다.

그녀와 있을 때면 작은 서랍 안에 겨우겨우 욱여넣은 마음 같은 게 삐져나왔다.

그 마음은 평소엔 하지 않을 실수나 말을 하게 만들었다.

우신은 양하나 때문에 충동적으로 변하는 스스로가 몹시 싫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 이벤트 돔을 빠져나가야 했다.

이곳에서 나가면 그녀와 엮이는 일 따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벤트 돔 안에 이상 게이트가 발생하더니 드래곤이 나타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그보다 더 말 안 되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양하나가 다영과의 짧은 접촉 직후 그녀의 에너지를 몸에 두른 것이다.

그 광경을 직접 보고서야 민지민이 괜히 양하나에게 집착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건 우신이 보기에도 가히 무서운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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