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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4)화 (34/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4화

나는 시선을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남색 정장을 빼입은 여자가 한 손에 태블릿 PC를 들고 서 있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올려 묶은 그녀는 웃음기 없는 서늘한 인상이었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도 아닌데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느라 너무 빤히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헛기침하는 소리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누구시죠……?”

그녀가 센터의 직원이라는 건 셔츠 라펠에 달린 금속 배지 덕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물은 건 나를 조사인 병실에 둔 게 당신이냐는 의미였다.

이 병실은 일반 병원의 병실과는 달랐다.

창문 하나 없는 새하얀 공간은 실상 감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센터에서 주최하는 이벤트 심사에 참여했다가 진짜 게이트에 휘말려 죽을 위기를 겪었다.

그러니 피해자로 보아도 무방한데 왜 심문받아야 할 사람처럼 대우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서늘한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말없이 걸어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현장 2팀 대리, 소명]

“징계 건으로 여러 번 봐서 안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나 보군요.”

현장 팀이라면 홍 반장이 속해 있는 부서였다.

이 몸으로 몇 번 사무실에 들른 적은 있으나 그녀를 마주친 기억은 없었다.

다만, 소명이라는 이름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쩐지 어딘가 낯익다고 느꼈는데, 내가 성시현이었을 때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센터에 들어온 이유는 일반인도 시행 가능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먹구구식의 대처법을 개선하기 위해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협력 부서에 들어온 신입이 소명이었다.

그때만 해도 소명은 소명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명자라는 이름을 탐탁지 않아 하더니 기어코 개명한 모양이었다.

“…….”

그때도 쭈뼛거리며 본론만 툭 말하곤 했는데 붙임성 없는 건 여전했다.

신입이었던 애가 벌써 대리가 되었다니 새삼 시간이 흐른 게 느껴졌다.

내가 소명의 명함을 가만히 만지작거리자 그녀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게이트 클리어 직후 기절했다고 전달받았는데, 혹 기억나는 부분이 있나요?”

소명은 내 머리맡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만 하고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혀요. 눈을 감았다가 뜨니 병실이었습니다.”

내 대답에 소명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먼저 이상 게이트 건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사전에 공지한 것처럼 돔은 아직 개발 중인 관계로 종종 확인되지 않은 오류들이 생깁니다만, 설마 그 안에 게이트가 발생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상 게이트.

역시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다.

보통,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엔 이상 징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상 게이트는 그런 전조 징후 없이 발생하며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주인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다.

드물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다만 하필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었다.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 게이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센터의 입장 역시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아…… 뭐, 괜찮습니다.”

이어 소명은 내가 기절한 직후 벌어진 일에 대해 대략 이야기해 줬다.

“보고에 따르면 양하나 헌터님이 기절한 직후 에너지 탈수 증상을 보여 가이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직후 쓰러지자 팀원들이 날 부축한 모양이었다.

소명의 말이 이어졌다.

“결국 강우신 가이드의 판단하에 현장 가이딩이 진행됐습니다.”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강우신이 내게 뭘 해?

되묻기도 전에 더 황당한 말이 들려왔다.

“상황이 위급하긴 했으나 센터는 강우신 가이드가 징계 도중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재 그를 제외한 나머지 헌터분들만 숙소에 대기 중입니다.”

간략한 정리였다. 간추려 말한 내용이 머리를 혼란하게 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잠시만요, 징계 중 문제를 일으켰다니. 강우신 가이드가 징계를 받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내 물음에 소명의 눈동자가 일순 커졌다.

“……몰랐나요? 강우신 가이드는 얼마 전 사전 보고 없이 가이딩한 건으로 징계를 받았고 그로 인해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 사전 보고 없는 가이딩이라면…….”

내 물음에 소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하나 헌터의 가이딩 말입니다.”

“…….”

그제야 이벤트 내내 가진 의문의 퍼즐이 맞춰졌다.

제1 훈련장 게임 직후 이곤의 콜에 강우신이 내 병실을 방문했다.

물론 가이딩하지 않고 떠났지만, 센터에는 강우신이 양하나의 병실에 들렀다는 사실만이 퍼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에스퍼가 응급일 때 손이 닿는 가이드가 있다면 도와야 하는 게 가이드의 윤리 의식 아니었나요?”

내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소명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제 무릎 위에 놓으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잘 알고 계시네요.”

“…….”

“양하나 헌터의 말이 맞습니다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네요.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의 가이드에 한해서지요.”

마주 보고 대화하는데도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답답했다.

이번 이벤트의 구원 투수로 투입된 인원들은 대부분이 A급이었다.

민지민이나 그와 밀접해 보이는 S급 에스퍼의 참가가 특이한 경우였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던 민지민과 달리 강우신의 참여는 매우 의아스러웠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다니.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정보에 생각을 정리하다가 번뜩 물어볼 것이 떠올랐다.

“지난 일이야 그렇다 치고, 이번 일은 좀 다르지 않습니까? 징계 때문에 이벤트 심사에 참가한 이상 가이딩하는 건 암묵적으로 허락된 사항 아닙니까.”

내 물음에 소명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맞습니다만, 양하나 헌터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어요.”

작은 사고? 앞서 말한 문제와 관련 있는 듯했다.

그러나 소명은 그 이상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내가 쓰러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다만 소명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 명확해진 건 있었다.

더 이상 우신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거다.

센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구미에 맞는 사람을 보기 좋은 진열장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위하는 척, 보호하는 척하지만 숨이 막히게 감시한다.

그렇기에 소명이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거 같았다.

그 역시 지금 나처럼 격리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설명은 이쯤에서 끝내고 양하나 헌터에게 몇 가지 확인할 게…….”

“어딨죠.”

나는 소명의 말을 잘랐다.

“네?”

그러자 심기가 불편해진 듯 소명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나직하게 되물었다.

“지금 강우신 가이드 어디에 있냐고요.”

소명은 내 단호한 물음에 일순 어깨를 움찔 떨었지만 머지않아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소명은 태블릿을 무릎 위로 내려 두더니 허리를 꼿꼿하게 곧추세웠다.

그러고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가 그걸 양하나 헌터에게 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시선에 담긴 멸시가 지금껏 어떻게 숨겼을까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소명은 제 목덜미를 주무르며 피곤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가 조사인 병실에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줘야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을 자각할까요?”

“…….”

“아무리 멍청해도 이 정도로 주제 파악이 안 됐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성시현이었을 때는 말 몇 마디로도 어렵지 않게 상황이 정리됐다.

S급 에스퍼인 내가 가진 힘과 위치는 그걸 당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양하나의 말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양하나는 고작 C급의,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에스퍼였으니까.

위협이 먹힐 리 없었다.

그러니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 마음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소명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가 강우신 가이드의 현 위치를 안다 한들, 뭘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필사적인 얼굴인가요.”

필사적인 얼굴이었다고?

그녀의 말에 사고가 정지했다.

강우신은 6년 전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줄곧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그가 필요하다 여겼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강우신의 징계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마음이 초조해졌다.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맥박이 빨라졌다.

소명의 말처럼 내가 지금 그를 만나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차니까.

“…….”

당연한 판단인데도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한 탓인지 계속해서 불안한 생각만 떠올랐다.

엉망인 모습으로 갇혀 있거나 고통받고 있을 우신의 모습 같은 게 말이다.

생각 끝에 나는 소명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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