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3)화 (33/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3화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고 있지만 이미 몸은 한계였다.

“…….”

성시현의 에너지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들 그 힘을 담고 있는 그릇은 양하나의 것이었다.

내 에너지가 동나기 전에 몸이 먼저 산산조각 날 것이었다.

그러니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머릿속으로 공격 패턴을 시뮬레이션하며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데…….

그릇에 다 담기지 못한 에너지가 자꾸만 몸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탓인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드래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탓인지 아니면 심장 박동 소리 탓인지 현기증이 일었다.

실금 같은 이성의 끈을 놓으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 거 같았다.

마치 충동과 이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호명했다.

“양하나 헌터님!”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검이 원을 그리며 빠르게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손쉽게 그것을 잡아챘다.

단단한 장검이 손에 닿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에스퍼의 에너지를 머금는 헌터 전용 무기인 듯했다.

내게 그 검을 던진 건 다영이었다. 다행히 희민의 가이딩으로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다영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걸 써 주세요……!”

흔들리는 호흡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간신히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나를 걱정한 모양이었다.

“…….”

나는 밝게 발광하는 장검을 내려다봤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하는 건 참으로 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걱정스레 흔들리는 다영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답했다.

“안 부러트릴게요.”

말을 끝내자마자 검을 고쳐 쥐고 땅을 박찼다.

그러고는 유연하게 몸을 틀어 정확히 드래곤의 목덜미로 노렸다.

변이하기 전에 내가 남겼던 상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곳엔 그저 E형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단단한 피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황금으로 발광하는 검을 드래곤의 목덜미 중앙에 찔러 넣었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손쉽게 검이 들어갔다.

힘을 주기 무섭게 부드러운 것을 썰어 내듯 검이 아래로 움직였다.

단단한 피부층을 뚫고 들어가는 살생의 감각은 잊고 있던 즐거움을 깨웠다.

목이 댕강 나가떨어지자 더 이상 귀를 찢는 듯한 드래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거대한 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땅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 탓에 뿌옇게 흙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마침내 게이트 클리어를 알리듯 우리가 들어왔던 방향에 문이 생겨나며 동굴이 흔들렸다.

우신과 희민의 가이딩으로 혼절했던 에스퍼들도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 클리어에 성공했다.

땅을 딛고 있는 두 다리에 힘이 풀릴 거 같았다.

나는 흙먼지를 헤치고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갈 생각이었다.

몸 안에서 타오르듯 빛나던 에너지는 어느새 희미하게 꺼져가고 있었다.

검 역시 머금고 있던 빛을 뱉어 내고 무거운 철 덩어리로 변했다.

충격을 견디지 못했는지 검에 실금이 생겼다.

나는 흐린 눈으로 그걸 내려다봤다.

다영의 검이라 안 부러트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일반 헌터용 무기로 드래곤을 잡는 건 무리였나 보다.

문득 손가락에 힘이 풀려 검이 툭 떨어졌다.

에너지가 넘쳐흐르던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시야가 점점이 흐려지더니 인중에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머지않아 그것은 윗입술을 지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코피였다.

나는 한 손으로 입가를 거칠게 닦아 냈다. 손바닥에 피가 묻어났다.

에너지를 너무 마구잡이로 사용했더니 아무래도 몸에 탈이 난 듯했다.

S급 에스퍼의 에너지를 잠깐이지만 C급 에스퍼가 받아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결국 쓰러진 드래곤에게서 몇 발자국 옮기지 못하고 흙바닥 위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막이 나갔는지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겨우 눈알만 굴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끔뻑였다.

그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는데, 멀리서부터 내게로 다가오는 형상이 보였다.

우신이었다.

내 착각일지는 몰라도 내 꼴은 본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틀 내내 못마땅한 얼굴을 하더니, 여전히 다친 사람 보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문득 우신이 소리쳤던 말이 떠올랐다.

“약속 지켜! 보란 듯이 함께 살아 나가기로 했잖아!”

그답지 않은 필사적인 얼굴이었다.

6년 동안 다른 사람처럼 변한 줄 알았는데, 흥분하면 토끼 눈이 되는 건 여전했다.

그 사실에 픽 웃음이 났다.

절박함에 잊고 있던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미소를 지은 상태 그대로 눈을 감았다.

3. 임시 전담 가이드

감은 눈꺼풀 위로 환한 빛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미간을 좁히다 천천히 눈을 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공간에 순간 이번에야말로 죽은 건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맞은편에서 빛이 존재감을 드러내듯 점멸했다.

“…….”

멍하니 황금빛을 쳐다봤다. 나는 저 빛을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금색의 물결은 어둠 속에서 더욱 그 자태를 뽐냈다.

그건 내 에너지였다.

일평생을 몸에 휘감고 살았는데 어째서인지 먼발치에 있는 그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 그 빛 안에 있었다. 빛이 너무 환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도대체 누가…….”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다가서려 하자 몸이 타들어 갈 거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덕분에 무겁게 감겨 있던 눈이 떠졌다.

“…….”

나는 눈을 몇 번 끔뻑였다. 눈앞에 보이는 천장이 현실의 것이라고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근래 눈을 뜨면 번번이 낯선 곳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몸에 감기는 뻣뻣한 이불의 촉감이 익숙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측면에 놓인 가습기 위로 보얀 수증기가 분사되고 있었다.

병실이었다.

정신 감응만 시도하면 끝내 정신을 잃었다. 이는 아직 능력 사용이 완벽하지 않다는 방증이었다.

나는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정신 감응은 결국 타인의 에너지를 빌려 오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에너지 운용을 잘한다 한들 에너지를 빌려준 상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다영의 에너지로 드래곤을 처치하지 못했을 때는 정말이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

나는 완전히 나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다 주먹을 꽉 쥐었다.

게이트에서의 일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양하나의 몸으로 황금빛 에너지와 감응하는 순간 온몸이 전율했다.

기분 좋은 울렁임에 손에 땀이 흥건했지만, 결코 쥐고 있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생동감이었다.

아직도 몸이 저린 거 같았다.

지금까지는 민지민이 정신 감응에 호기심을 보인 이유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

그저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했던 정신 감응을 직접 보는 게 처음이니 흥미로워하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C급 에스퍼의 몸에 S급의 에너지를 일시적이지만 담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로 인해 정신 감응에 대한 이론이 체계화되고 적합한 능력자가 늘어난다면 A급, 아니, S급의 에너지가 남용될 위험이 커진다.

최종적으로 그것이 민지민에게 어떤 이득을 줄진 모르겠지만, 번뜩 그의 탐욕스러운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오싹한 기분에 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번번이 능력을 쓴 직후 기절하는 건 큰 약점이었다.

그러니 운동량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했다.

머리가 복잡해 이마를 짚는데 그제야 몸이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였는데 깨어나 보니 망가지기는커녕 어쩐지 에너지의 길이 정돈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가이딩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기절한 사이 누군가 만진 건가.”

지난번 게이트 사건 때도 기절한 사이 가이딩을 받았으니 그리 놀랍지 않았다.

내가 의아함을 느낀 건, 가이딩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이전 삶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정신이 상쾌하긴 처음이었다.

“도대체 누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