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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1)화 (3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1화

드래곤형 몬스터는 등장만으로 재앙급으로 분리됐다.

솔로 플레이에 능한 성시현의 몸으로도 드래곤 사냥은 공격 1팀을 이끌고 진행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조만 받았을 뿐이지만, 그 정도로 부담되는 일이었다는 뜻이었다.

“…….”

불행 중 다행인 점이 있다면, 저 드래곤은 아직 성체가 아닌 거 같다는 점이었다.

둥글게 말린 몸이 비교적 작았고 표피가 매끄러워 보였다.

보통의 드래곤은 모두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변이하기 전인 E형 드래곤에겐 정해진 속성이 없다.

그래서 E형이라는 속칭을 붙여 다른 드래곤들과 구별하게 되었다.

하나 E형 드래곤도 A급 몬스터이기에 지금으로서는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기서 모두 다 죽는 것뿐만 아니라,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해 드래곤이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도시 하나쯤은 가볍게 괴멸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이렇게 복잡한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말이다.

1군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또 게이트에서 죽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 몸속에서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헌터님!”

일순 사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끄집어낸 건 다영의 목소리였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다영이 떨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으셔서요.”

“…….”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영은 덜덜 떨리는 제 손을 꽉 쥐어 보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전 준비됐어요.”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주먹을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손에 피가 안 통하는 듯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영 역시 이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쥐여 주려 하고 있었다.

그 덕에 내가 지금 얼마나 못났는지가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패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 법.

지금은 일단 뒤로 물러나 나머지 팀원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대처법을 생각하는 게 좋을 터였다.

나는 다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그러쥐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일단 뒤로 가서…….”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놀라 말을 멈추고 빠르게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멈춰요!”

하지만 내 말보다 태용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와 있었고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 동굴이 울렸다.

그 울림에 기다렸다는 듯 E형 드래곤이 눈을 떴다.

세 명 이상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오면 주인 방 클리어를 시도한다고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드래곤이 깨어난 이상 이제 정말 죽이거나 죽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이게 무슨……!”

태용이 탄식하기 무섭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모두 벽에서 떨어져요!”

나는 뒤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릴 만큼 큰소리로 외쳤다.

E형 드래곤은 날개가 발달되지 않아 날지는 못하지만, 날갯짓으로 바람이라도 일으키면 낙석의 위험이 있었다.

내 외침에 팀원들은 벽에서 떨어져 이쪽으로 달려왔고, 덕분에 모두 게이트 클리어를 위해 입장한 것으로 간주됐다.

드래곤은 흥분한 듯 둥글게 말고 있던 몸을 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오오오-

커다란 포효에 팀원들은 귀를 막고 멈추어 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드래곤이 발산하는 에너지에 기가 눌리는 모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더 이상의 고민은 무의미했다.

“모두 내 뒤로 물러나요, 다영 씨!”

양하나의 몸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내 부름에 얼어붙어 있던 다영이 그제야 손을 뻗었다. 나는 서둘러 그녀가 뻗은 손을 잡았다.

손이 닿자 다영의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내게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이었지만 한 번 익힌 감각은 금세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에너지는 몸 안의 빈 곳을 꼼꼼하게 채워 나갔다. 오랜 갈증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어느 정도 힘이 채워지자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덕분에 다영은 혼절하지 않았지만, 급속도로 에너지를 뺏긴 탓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영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저 일어나지를 못하겠어요.”

“괜찮으니까 그대로 있어요.”

나는 다영에게서 시선을 옮겨 드래곤이 있는 방향을 보고 섰다.

선명하게 차오르는 낯선 힘이 온몸에서 날뛰었다.

“다영 씨와 가이드분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지금부터 제 말에 집중하세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에스퍼들이 한둘 가까이 내게 다가왔다.

이미 두려움에 잡아먹힌 그들은 단지 살아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버티고 있는 듯했다.

다영의 에너지는 영원한 게 아니었다. 서둘러 작전을 이행해야 했다.

작전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 한 사람에게 힘을 집중시켜야 때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보조를 부탁합니다.”

“네? 어떤 보조를…….”

나는 당황한 소희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답했다.

“제가 최대한 드래곤에게 가까이 붙을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주세요.”

“…….”

말이 쉽지, 틈을 만들어 달라는 건 결국 저 A급 몬스터의 주의를 끌어 달라는 말이었다.

물리계도 아닌 이들에게 이 말은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양날 단검을 손에 쥐었다.

“딱 오 초.”

“…….”

“오 초만 버텨 주면 충분해요. 보란 듯이 다 살아 나가 봐요, 우리.”

서툰 격려였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드래곤에게 가까이 다가갈 시간만 벌어 준다면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모두가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말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 흔들림 없는 시선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먼저 주의를 끌 테니 그 뒤를 부탁드립니다.”

영우가 먼저 나서자 소희와 태용이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순식간에 영우가 오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감각계 에스퍼인 영우는 제 몸을 발광시키듯 빛을 발산했다.

작전에 도움이 된 적 없는 능력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밝게 빛나는 빠른 움직임에 E형 드래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영우를 좇았다.

그 모습에 나는 두 다리에 온 힘을 집중했다.

양하나의 몸으로 E형 드래곤을 상대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비교적 표피가 부드러운 목을 단숨에 베어 내는 것.

손에 쥐고 있는 양날 단검은 날이 짧아 베는 것보다는 찌르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힘이 집중된 다리가 터질 거 같았다.

영우가 제대로 미끼 역을 해 준 덕분에 E형이 내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몸이 곧장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공격 범위에 도달하자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한 대로 단검을 목덜미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그러나 겨우 표피를 뚫었을 뿐 날이 짧고 힘이 부족한 탓에 완전히 베지 못했다.

나는 남은 에너지를 검에 실어 날을 강화했다.

그제야 검이 근육을 끊고 목을 잘라 내는 감각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드래곤의 몸 밖으로 나오는 열기에 내 팔까지 녹아내릴 거 같았다.

마침내 E형의 목을 가로지르고 바닥에 안착했다.

두 발이 멀쩡하게 땅에 닿자 자연히 안도의 숨이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 게 성공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상기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아슬아슬하게 몬스터를 사냥한 적이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고개를 드니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져 있는 영우와 팀원들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이 상황이 안 믿긴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반대편에 있을 다영과 우신의 안위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문득 어째서 클리어 사인이 떠오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순식간이었다.

고개를 돌리는 그 찰나의 순간, 드래곤의 거대한 꼬리가 팀원들을 쓸어 버렸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날아가듯 눈앞에서 팀원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썰리는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확인하니 E형 드래곤의 목이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뜨거운 열기에 얕은 호수가 마르고 암석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드래곤의 변이가 시작된 것이다.

어중간한 힘으로 목을 베어 내려 하니 목숨의 위험을 느낀 E형 드래곤이 변이를 가속화한 것 같았다.

나는 혀를 찼다.

드래곤의 속성과 등급이 정해지는 순간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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