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0)화 (3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0화

구멍 안으로 뛰어들자, 기포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주인 방까지 인도했다.

이 게이트의 클리어에는 높은 수준의 관찰력과 순간 판단력이 요구되지만, 여기까지 해냈다면 이제 어려울 게 없었다.

주인 방에 자리한 4m 크기의 웨어울프 우두머리를 죽이면 된다.

“이게 이 돔의 주인 방입니까?”

“…….”

분명 그랬는데…….

눈을 뜨자 그곳에는 새하얀 문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이런 문 없이 바로 주인 방에 당도해야 했는데 말이다.

나는 기억에 문제가 있는지 생각을 더듬어 보다가 금방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있는 문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털이 쭈뼛 설 만큼 위험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내가 알던 게이트 주인 것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된 거 같네요.”

불쾌한 파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문손잡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문을 열고 이 불길한 에너지의 정체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때 불쑥 누군가가 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인 거 같지 않은데요.”

문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빼자 우신도 순순히 내 팔을 놓아주었다.

그는 얼마간 굳게 닫힌 문을 응시하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포기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 양하나 헌터 생각은 어떱니까.”

“…….”

그의 말에 뒤에서 숨죽이고 우리를 지켜보던 반소희가 입을 열었다.

“네? 이 문 너머가 보스 방인 거 아닌가요? 다 와서 포기라니…….”

우신은 반소희의 물음에도 나만 지그시 바라봤다.

지금껏 한 번의 간섭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 포기를 운운하면서 최종 판단은 내게 맡겼다.

어이없지만 그는 내 판단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손을 들어 흰 문을 두어 번 두들겼다.

“이 문 너머는 진짜 게이트인 거 같습니다.”

“네?”

다영을 포함한 에스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측정기가 없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닭살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A급 이상인 거 같네요.”

희민은 이어셋을 빼며 내 말에 힘을 실었다.

“여기로 들어온 이후부터 통신이 잡히지 않네요. 완전 먹통. 그러니까…….”

희민은 익살스럽게 웃었다.

“고립된 거네요, 여기에.”

팀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그를 째려보자 희민은 맞잖아요, 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영이 나를 쳐다봤다.

“A급 게이트라니, 이 인원으로는…….”

“네, 턱도 없죠.”

내 단호한 답에 다영의 표정마저 어두워졌다.

팀에 S급 가이드가 있다고 해도, 가이드는 어디까지나 에스퍼를 보조하는 역할만 한다.

그 말인즉슨 나를 포함한 4명의 에스퍼들이 A급 게이트의 주인을 해치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찬찬히 팀원들을 둘러봤다.

웨어울프와의 전투를 피해 이곳까지 온 덕에 피로도가 높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미 기세가 다 꺾인 얼굴이었다.

이들이 내 오더를 얼마큼 수행할 수 있을까.

운이 나빠 고위급 몬스터라도 나오면 무얼 해 보기도 전에 모조리 전멸할지도 모른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우신을 쳐다봤다.

그는 내 결정을 기다리듯 문 옆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서 있었다.

“…….”

심사 종료까지 앞으로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대로 기다리다 보면 구출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안일한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운동장 크기만 한 공간에는 흰 문 외에 다른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높은 등급의 게이트가 그러하듯 이 공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게 흐를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이 이벤트는 보상이 큰 만큼 페널티 역시 컸다.

이대로 구출된다면 두 가이드야 별 피해 없이 제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나머지 팀원들은 아슬아슬하게 지켜오던 자리마저도 빼앗기고 아예 퇴출당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복잡했다.

밀려오는 초조함에 엄지손톱을 깨물고 있을 때, 다영이 다가왔다.

“헌터님.”

“…….”

다영은 떨리는 애써 목소리를 숨기며 한 글자씩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저희 아직 괜찮습니다.”

“…….”

“저, 헌터님께 드릴 에너지도 많이 남아 있어요.”

정신 감응을 말하는 듯했다.

트라우마 때문에 무기력했던 사람이 A급 게이트를 앞에 두고 싸우겠다고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묘했다.

아직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앞장서 포기를 입에 담아도 되는 것일까.

정신 감응으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용기 내 준 다영도 퇴출 위기에 놓인 나머지 헌터들도 모두 내가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결심이 서자 마지막으로 내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힘을 쓰지 않아 충분히 정신 감응에 도전해 볼 만했다.

정신 감응이 없었다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다영의 에너지와 감응하면 어떻게든 길이 생기지 않을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다영 씨.”

“네, 헌터님.”

“잊지 마요. 내가 부르면 주저 말고 손 내밀어 줘야 한다는 거.”

내 말에 흔들리던 다영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네!”

나는 허리를 펴고 문 앞에 섰다.

“정비 끝나는 대로 들어갑니다. 대열 갖추세요.”

“양하나 헌터.”

나를 부르는 우신의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뻔했다.

“돔과 연결된 게이트입니다. 상황도 모르고 마냥 구조를 기다릴 수는 없어요.”

“…….”

“내 곁에서 떨어지지나 마요.”

* * *

문을 열고 희멀건 막을 통과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는 내 뒤를 따라 문을 통과한 팀원들의 머릿수를 확인했다.

다영을 선두로 희민, 주저하던 헌터들까지 천천히 줄을 이었다.

짧은 텀 뒤에 우신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끝까지 게이트 입장을 반대했으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만했다.

그러나 그의 심기까지 고려하며 판단할 수는 없었다.

오랜 경험으로 위급한 상황일수록 고민은 짧게 하는 게 좋다는 걸 배웠다.

나는 팀원 모두가 게이트 안에 들어온 걸 확인하고야 천천히 내부를 살폈다.

암석이 사위를 감싼 동굴이었다. 가장 흔한 필드였고,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인조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압력이 느껴졌다.

돔 역시 잘 구축된 게이트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모형에 지나지 않았다.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천천히 진입합니다.”

내 나직한 말에 스타팅 지점에서 호수로 가기 위해 임의로 맞춘 대열이 갖춰졌다.

엉성하지만 지금 이 팀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대열이었다.

이제부터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영과 나란히 걸어 나갔다.

우리 두 사람이 맨 앞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신호를 보내면 뒤의 사람이 따라오는 구조였다.

선두에 선 사람이 큰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다영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다영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그제야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일이 서툰 내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나는 베테랑 헌터지만 동시에 팀워크와는 대척점에 선 에스퍼였다.

아카데미에서 솔로 플레이의 예시로 내 전투 영상을 수업 자료로 쓴다니, 말 다 했지.

문득 따로 시간을 내서라도 호흡을 맞춰 보는 연습을 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

죽으면서도 큰 후회를 하지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몸에 빙의한 덕에 여러가지 낯선 생각을 해 보는 듯하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순간 다영의 자세가 더 낮아졌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소리?”

그제야 귓가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처럼 몸의 감각이 날카롭지 못해, 조금만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이렇게 작은 소리를 놓치기 쉬웠다.

암석형 동굴에 물 떨어지는 소리라니. 예감이 좋지 못했다.

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다영은 걱정스레 물었다.

“확인해 볼까요?”

바로 앞에 있는 코너만 돌면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사양하고는 직접 코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길목이 탁 트인 광활한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얕은 호수가 있었다.

천장에서부터 얇은 빛줄기가 호수 위로 떨어졌다. 그 빛이 호수 표면 위에서 깨지며 아름다운 물비늘을 만들고 있었다.

넋을 잃은 정도로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게이트의 모습이 매혹적인 것은 위험한 등급의 몬스터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호숫가 가장자리에 놓인 넙데데한 바위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는 게이트의 주인이 보였다.

거대한 몸은 숨을 고를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했다.

“설마…….”

뒤따라온 다영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나는 짧게 긍정했다.

“네, E형 드래곤입니다.”

클리어 난도 최상급을 자랑하는 S급 몬스터, 드래곤.

비정상적인 게이트 입장에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설마 정말 고위급 몬스터를 마주하게 될 줄이야.

최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