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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9)화 (29/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9화

“…….”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저번 일로 삐진 게 분명했다.

꼬마 아이처럼 유치하게 구는 게 삐졌다는 말이 제격이었다.

육 년 전에만 해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도대체 뭐가 애를 저렇게 비뚤게 만들었는지.

양하나의 몸으로 들어온 이후 저 녀석과 대화를 하면 끝내 마음이 엉망이 됐다.

‘아마 그 이유는 저 얼굴 때문이겠지.’

흔들림 없는 그의 두 눈은 마치 내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시선을 피해 다시 모닥불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우신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일부러 이러는 겁니까.”

“네?”

불꽃이 흔들리자 우신의 얼굴 위로 진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래서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말이 많지도 않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편도 아니지 않았습니까?”

“……시비라도 걸고 싶은 겁니까.”

“글쎄요.”

싱거운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물음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시선을 돌리며 손을 저어 보였다.

“말장난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요. 내일 일정 힘들…….”

“시비를 걸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양하나 헌터 아닙니까?”

“…….”

“양하나 헌터가 지금 하는 행동 말입니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우신은 그보다 더 깊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현 선배를 흉내 내는 건 단순히 저를 자극하기 위함입니까.”

“……네?”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누구 흉내를 낸다고요?”

“…….”

성시현을 흉내 낸다니,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행동한 것뿐이지만 성시현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핵심을 건드리는 물음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의아스러운 건 내게는 성시현의 삶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강우신에게 성시현은 6년 전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양하나의 몸에 들어온 이후 그와 마주친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저번 병실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더니…….

도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게서 무엇을 보고 성시현을 떠올린 걸까.

묘한 기분에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날카롭게 물을 때는 언제고 내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치자, 우신은 도리어 작게 혀를 찼다.

그러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라면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우신은 도로 침낭에 들어가 나를 등지고 누웠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입 밖으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아 그의 뒤통수만 바라봤다.

‘저 혼자 한껏 날을 세우며 몰아붙일 때는 언제고, 아니면 됐다고?’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 싶었다.

S급으로 각성한 이후로는 누구한테 제대로 혼나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랬기에 잘 알고 있다.

선배든 선생이든 내 눈치를 보며 내가 실수해도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며 특별 대우했다.

그런 대접을 받다 보니 애 성격이 이 모양 이 꼴이 됐겠지.

양하나의 몸으로는 우신에게 손가락 하나 대기가 어려웠기에, 나는 울컥울컥 치미는 말을 삼키며 혼자 화를 식혀야 했다.

* * *

“괜찮으세요?”

침낭을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하던 다영이 퀭한 내 얼굴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서 있는 우신을 한 번 흘기고는 답했다.

“……네. 뭐, 괜찮습니다.”

썩은 동태눈을 하고는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하루를 쉬었더니 멀미하던 에스퍼들도 이제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아직 동이 트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날이 어두울 때 웨어울프가 활동하는 지역을 지나야 했기에 신속하게 움직이는 게 관건이었다.

나는 가볍게 손뼉을 쳐 이목을 내게로 집중시켰다.

“어제 미리 길을 봐 뒀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아직 어두우니 앞사람을 잘 보고 쫓아 걸으면 됩니다.”

한 줄로 선 팀원들을 둘러보다 우신과 딱 눈이 마주쳤다.

이제 피할 생각도 없는지 멀뚱히 눈을 마주하는 모습에 묘한 오기가 생겼다.

그 때문에 나도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이드 두 분은 행렬 중심에 서 주세요.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겨도 구할 수 있으니까요.”

일부러 끝말에 힘을 줬다.

풀어 말하면 네 목숨 줄은 내가 쥐고 있으니 신경 그만 건드리라는 뜻이었다.

“…….”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우신의 표정에는 작은 미동도 없었다.

도리어 희민이 내 등 뒤에 꼭 달라붙어 있겠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그를 떼어 내고 서둘러 출발했다.

* * *

둥그런 호수 초입이 보이자 두셋씩 조를 짜 나무 위에 대기했다. 슬슬 통이 틀 시간이었다.

나는 다영과 두께가 굵은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았다.

-1조 임태용, 강우신 자리 잡았습니다.

흩어져 자리를 잡은 이들이 하나둘 무전을 치기 시작했다.

주인 방으로 들어갈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어제 다영과 진땀을 빼며 주변 지형을 파악해 둔 덕에 빠르고 조용하게 호수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주인 방의 입구를 열어서 게이트 주인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려와 달리 일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데도, 어젯밤부터 이 묘한 평화가 거슬렸다.

“곧 해가 뜰 거 같네요.”

멍하니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내게 다영이 속삭였다.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해가 떠오르는 듯 검기만 하던 호수가 밝아져 왔다.

도심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풍경에 마음이 점점 차분해져 갔다.

작게 숨을 뱉어 내는데, 이어셋을 통해 노이즈 소리가 들리더니 1조 임태용의 무전이 들려왔다.

-나타났습니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호수 초입에 나타난 사슴이 보였다.

눈처럼 새하얀 사슴은 가벼운 걸음으로 호수로 다가와 목을 축였다.

나는 그 모습에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과거 기억과 똑같았다.

그때는 웨어울프가 득실거리는 곳에 사슴이 사는 게 생뚱맞다고 생각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결국 그 게이트 클리어 시간이 내 최장 클리어 시간으로 기록되었다.

무슨 이유로 이런 필드를 심사에 넣은 건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지만, 덕분에 손쉽게 1군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곧 떠나겠어요.

태용의 재촉에 나는 다영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오면서 내가 한 말 기억하죠.”

“네.”

나는 한 손을 쭉 뻗어 손끝으로 사슴을 가리켰다.

다영 역시 그 모습을 유심히 보며 내 동작을 똑같이 따라 했다.

“손가락 끝이 뜨거워지면, 그 끝에서 빠르게 에너지가 날아간다고 상상하면 돼요.”

내 나직한 말에 다영은 숨을 참고 사슴의 목을 향한 제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모두가 그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 타이밍을 놓치며 돔을 클리어하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그런 중요한 일을 내가 하지 않고 다영에게 맡긴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어젯밤 강우신이 한 말 때문이다.

“시현 선배를 흉내 내는 건, 저를 자극하기 위함입니까.”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양하나의 모습 위로 성시현이 겹쳐 보인다는 소리였다.

겉모습이 이렇게나 다른데도 말이다.

어제는 황당해하는 내 반응에 아무 말 없이 넘어간 거 같지만, 자꾸만 눈에 튀는 행동을 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최대한 다영을 잘 활용해 이 돔을 클리어할 생각이다.

“지금……!”

내 말과 동시에 그녀의 손끝에서 남색의 에너지가 빠르게 날아갔다.

다영이 쏜 에너지는 정확히 물을 다 마시고 고개를 드는 사슴의 목을 베어 냈다.

다영은 제가 해냈다는 사실에 나를 보고 활짝 미소 지었다.

옅은 미소로 그녀에게 호응하면서도 시선은 사슴에 고정하였다.

이내 사슴의 머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머리가 물에 잠기자 호수의 물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전을 쳤다.

-이제 문이 열릴 겁니다. 준비하세요.

내 말에 모두가 분주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붉게 변한 물 아래서부터 작은 기포가 올라오더니 이내 회오리쳤다.

-저게 무슨.

머지않아 회오리의 중심부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시커먼 구멍 속은 그 깊이가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나는 그걸 확인하기 무섭게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저게 입구예요!”

내 고함에 모두 주저 없이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차례대로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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