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8화
그 크기와 형태를 유심히 살피던 나는 확신에 찬 눈으로 다영을 올려다봤다.
“뭔가가 멀리서 저희를 주시하고 있어요.”
“…….”
성인 손바닥보다 훨씬 큰 발자국은 네발짐승의 것이었다.
나는 계속 느끼던 위화감의 정체를 발견하고는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계심이 높고 무리 지어 다니는 네발 동물형 몬스터라면…… 아마 웨어울프일 겁니다.”
내 말에 다영의 얼굴이 희게 질리며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는 그녀를 지나쳐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세요?”
놀란 듯 나를 부르는 다영의 목소리에 심드렁하니 답했다.
“잠시 이쪽을 좀 돌아봐야 할 거 같아요.”
“그쪽은 왜……?”
“아, 클리어 루트 찾았거든요.”
* * *
스타팅 지점부터 호수까지의 최단 거리를 찾는 겸 일부러 얼마간 더 밀림 속을 헤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우리가 스타팅 지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해가 반쯤 저물어 있었다.
B~C급 게이트인 데다 은신이 가능한 에스퍼도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게이트는 상식을 벗어난 일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스타팅 지점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
희민은 여상스럽게 말하며 수프를 들이켰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아늑하게 피어오른 모닥불에 사람 머릿수에 맞춰 펼쳐져 있는 침낭까지. 아주 캠핑이라도 온 분위기였다.
“이런 건 도대체 언제 챙긴 겁니까.”
나는 발치에 놓인 침낭을 툭 차며 물었다.
“저분이 챙겨 왔다던데요.”
희민은 수프를 모두 먹어 치우곤 제 뒤를 가리켰다. 아직 얼굴에 젖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영우였다.
내 시선이 닿자 그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3군 소속의 영우는 이 중에서도 가장 게이트 경험이 적었다.
듣자 하니 감각계 에스퍼인 그의 능력이 큰 쓸모가 없어서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한다.
오랜만의 게이트에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들떠 짐을 챙겼을 모습이 눈에 훤했다.
가방이 유독 무거워 보이더니, 이걸 칭찬해야 할지 나무라야 할지.
내가 이마를 짚자 희민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왜 그렇게 복잡한 표정입니까.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죠.”
희민은 넉살스럽게 말하며 수프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한참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느라 몰랐는데 막상 따뜻한 음식 냄새를 맡자 배가 고팠다.
“…….”
내 생각이 표정에도 드러났는지 희민은 씩 웃으며 나란히 서 있는 다영에게도 어서 앉아 먹으라며 꼬드겼다.
“그것보다 뭐라도 찾은 거예요?”
조용히 수프 두 접시를 비우고 나자 희민이 물었다. 그의 물음에 다영은 나를 쓱 쳐다봤다.
“네, 그게…… 양하나 헌터가 클리어 루트를 찾았다고.”
다영의 말에 모든 이목이 내게 쏠렸다. 그에 접시를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팀원들을 마주 보며 단호하게 대답하자 에스퍼들은 물론 희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멀찍이 앉아 있던 우신의 시선도 내게 따끔하게 닿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목을 풀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리 여러 명의 감각계 에스퍼가 함께 만든 공간이라 해도…… 여긴 모든 게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땡볕 아래에서 멍하니 걷기만 한 게 아니었다.
걸음마다 부서지는 나뭇가지며 사냥당한 사체가 쌓인 것까지 밀림 속 풍경은 마치 실재하는 공간 같았다.
현재 돔 제작 기술은 완벽한 단계에 이른 게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생한 게이트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감각계 에스퍼들을 갈아 만들었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그런 의문이 자라날 때 웨어울프의 발자국을 보고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돔은 과거 클리어된 게이트의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 공간이에요.”
내 말에 모두가 동요했다.
더 빨리 눈치채지 못한 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돔의 내부는 게이트 그 자체였다.
“돌이켜 보니 그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이네요. 지금의 기술로 13개의 돔을 한꺼번에 만들려면…….”
희민의 동조에 다들 술렁이는데 불쑥 침착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죠?”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우신이었다.
“확신을 얻은 얼굴인데, 탐사 때 뭐라도 본 겁니까?”
이때까지 한마디를 안 하더니 제법 예리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 무덤덤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묘한 불씨가 피어올랐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클리어했으니까요.”
“……양하나 헌터가요?”
내 말에 희민이 놀란 듯 되물었다.
양하나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내가 방금 무슨 실수를 저지른 건지 알 수 있었다.
이내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정정했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직접 클리어했다고 생각할 만큼 잘 알고 있는 게이트란 소리입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먹혔는지 희민은 맥 빠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또 말꼬리가 잡힐까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이곳은 8년 전 성시현 에스퍼가 클리어한 오픈 필드의 데이터로 재구축한 공간일 겁니다.”
과거의 일이 한 번 떠오르자,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그때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오픈 필드가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주인 방을 찾는데, 나흘이나 걸렸었다.
“대부분의 오픈 필드가 그러하듯 이곳 역시 특정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주인 방이 열립니다.”
“그 조건이 뭐죠?”
조용히 경청하던 반소희가 비장하게 물었다.
“……동이 트는 타이밍에 맞춰 중앙 호수에 나타나는 사슴의 목을 베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조건에 다들 안심한 듯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럼 이곳에서 대기하다 동틀 시간에 맞춰 호수로 이동하면 되는 겁니까?”
태용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내 긍정까지 떨어지자 에스퍼 세 사람과 다영은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 * *
그 이후 완전히 긴장이 풀린 팀원들은 얼마간 더 불을 쬐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글게 놓인 침낭과 불티가 튀는 소리까지.
아무리 데이터로 만들어진 허구라지만 게이트 내부라고 생각할 순 없는 평화였다.
나는 침낭에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타오르는 모닥불에 주기적으로 마른 잎을 넣어 줬다.
불침번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앉아 있는 거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잠이 오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는 타오르는 불을 바라봤다.
이 돔은 오픈 필드이기 때문에 주인 방 진입 조건을 찾는 게 까다로울 뿐 난도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 게이트가 이벤트 심사 같은 곳에서 나올 만한 등급의 필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도 나흘을 고생해서 주인 방을 찾았는데, 이 구성으로 이틀 안에 클리어하라니.
사실상 탈락하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이들에게 구태여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성시현이 아니었다면 우린 이틀 내내 웨어울프와 씨름하다 결국 탈락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상한 점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돔 안에서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자고 일어나 당당히 클리어해 보이면 그만이었다.
그럼 뭐가 내 마음을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하게 하는 걸까.
사념 속에 갇혀 강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에 시야를 잠식당한 순간,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품에서 단검을 꺼내 그 방향으로 겨누었다.
“…….”
단순히 우신이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머쓱한 얼굴로 단검을 도로 거두었다.
“……조금 놀라서.”
그렇게 변명하고는 모닥불 안으로 나뭇가지를 집어넣었다. 불이 위로 솟구쳤다.
우신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입을 꾹 다문 채 날 쳐다보는 게 여전히 불만이 있다고 항의하는 거 같았다.
그게 못마땅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틈이 난 김에 묻는 건데, 저번부터 뭡니까.”
“뭐가 말입니까.”
내 물음에 그는 두 눈을 끔벅이며 되물었다. 순진무구한 표정이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없습니다만.”
뻔뻔한 대답에 자연스럽게 한쪽 입꼬리만 올라갔다.
“아, 번번이 눈이 마주칠 때마다 피하기 바쁘면서 한 말이 없으시다?”
“한 공간에 있다 보면 눈이야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대답하는 우신의 태도에 벌어진 입이 쉬이 안 닫히는데, 그가 끝내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거 자의식 과잉입니다, 양하나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