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7화
담당자는 우리와 거리를 두고 서서는 이어셋을 통해 입을 열었다.
-다 모이셨으니 중요한 사항만 다시 빠르게 확인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태블릿 PC로 사진을 띄워 이해를 도왔다.
-13번 팀이 클리어해야 할 게이트는 B~C등급의 오픈 필드입니다. 이틀 내로 게이트의 주인을 해치우면 자동으로 클리어될 겁니다.
간단한 일이라는 듯 말하지만,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오픈 필드라면…….”
옆에 서 있는 다영이 내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맞아요.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 될 거 같네요.”
게이트의 필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동굴, 성, 건물처럼 보편적인 형태의 폐쇄적인 하우스형 필드와 얼마 전 클리어한 게이트같이 가야 할 방향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로드형 필드가 있다.
이 두 필드는 방향을 잡아 줄 길잡이가 없어도 눈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가면 주인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제 우리가 클리어해야 할 오픈 필드는 명칭 그대로 직접 돌아다니고 주변을 탐색해 주인 방을 찾아야 했다.
심지어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숨어 있던 주인 방이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추위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실종되는 에스퍼가 간간이 존재했다.
보통 오픈 필드는 베테랑이거나 높은 등급의 에스퍼로 이뤄진 탐사 팀의 도움을 받아 클리어한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B, C급의 에스퍼가 오픈 필드를 클리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13개 팀 중 가장 전력이 약한 우리 팀에게만 오픈 필드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계속 마음에 의심의 그림자가 졌다.
만약 누군가의 계략이라면 이걸 꾸민 자가 누구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입장하겠습니다.
규정상 가장 높은 등급의 물리계 에스퍼가 앞장서야 했기에 다영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선두에 섰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조심히 누르며 속삭였다.
“바로 뒤에 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했던 말 항상 기억하시고요.”
내 말에 좀 진정이 되었는지 다영은 입구를 막고 있는 검은 천을 젖히고 돔 안으로 들어갔다.
* * *
돔 안은 온통 시커멓게 어두웠다.
일곱 명이 모두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오자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무겁게 닫혔다.
완전한 암흑에 사로잡힌 순간 몸이 나노 단위로 흩어졌다.
아주 찰나의 감각이었다. 까무룩 죽었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을 땐 이미 필드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어지러움에 잠시 주춤거리다 중심을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오픈 필드는 넓은 평야나 바다 위의 외딴섬일 때도 있었다.
이곳은 열대 지방의 울창한 밀림이었다.
사방이 빽빽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하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윽.”
뒤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그제야 팀원들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공간 이동에 일행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괜찮습니까.”
내 물음에 스포츠머리를 한 에스퍼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괜찮습니다. 잠시 어지러워서.”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몸이 기울어졌다.
내가 반사적으로 팔뚝을 잡아 준 덕에 넘어지진 않았으나 회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게이트가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며 누구도 공간이 어그러지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초보자들은 게이트를 넘나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몸이 잘게 나뉘는 느낌에 극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돔은 여러 명의 감각계 에스퍼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 게이트만큼 견고하지 못해 팀원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다영을 통해 전달받은 인적 사항을 떠올렸다.
스포티한 인상의 그는 아마 C급 감각계 에스퍼로 이름이 분명…….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인사가 늦었네요, 임태용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남은 두 에스퍼도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반소희예요.”
단발을 한 그녀가 팔짱을 끼곤 그렇게 말했다.
내가 무슨 답을 하기도 전에 반소희보다 한 뼘 정도 작은 남자아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주영우…… 입니다.”
완벽하게 갖춰진 팀이 아니었고 이벤트 참가를 위해 머릿수를 맞춘 팀이었다.
겨우 시간 맞춰 참가 신청을 하고 따로 연습을 위해 모이지도 않았기에 당연히 통성명할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인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조금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양하나입니다.”
그 이름이 제법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워하는데 희민이 휘어진 눈매를 과시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좋네요. 낮은 등급 사람들끼리 더 으싸으쌰 해 보자고요.”
“…….”
혼자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얼굴이었다.
희민은 세 사람의 대장 노릇이라도 할 심산인지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거둬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기온이 습한 데다 뜨거운 볕이 작열했다. 울창한 잎 때문에 시야도 한정적이었다.
숨 쉬는 것도 답답한 이곳에서 주인 방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뿐이다.
그 안에 어떻게든 클리어 루트를 찾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희민에게 잡혀 있는 팀원들을 살폈다.
급하다고 상태가 엉망인 팀원을 이끌고 다니다간 도리어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세 분은 휴식을 취하다 상태가 괜찮아지면 오늘 밤을 보낼 준비를 해 주세요. 가이드분들 역시 세 분을 도와 여기서 대기하며 체력을 보충하시고요.”
그러고는 다영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다영 씨는 저랑 주변을 탐색해야 할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다영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나는 옅게 미소 지어 보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영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불쑥 희민이 한 손을 들었다.
“질문이요.”
“네.”
“보아하니 두 분이 가장 믿음직스러운 거 같은데 그런 사람 둘이 자리를 비워도 괜찮은 겁니까.”
희민은 언제 싱글벙글 웃었냐는 듯 냉정한 얼굴로 제 뒤에 있는 에스퍼들을 가리켰다.
“전투 불능 에스퍼들에 가이드 둘이 전부라니, 무섭잖아요.”
불쌍한 척 눈꼬리를 내리며 입술을 비죽이는 모습은 제법 장난스러워 보였지만 가이드로서 걱정할 만한 일이긴 했다.
그에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오픈 필드에서는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출몰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도 안전 구역이 있습니다.”
“안전 구역이요?”
“주인 방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가 들끓어요. 그건 다른 말로 하면 그곳에서 멀어질수록 몬스터가 나타날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는 겁니다.”
“그럼…….”
나는 신발 앞코로 그들과 나 사이에 금을 하나 그었다.
“네, 스타팅 지점이 바로 안전 구역인 셈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이었다.
스타팅 지점이 백 퍼센트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불안감을 최대한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적당한 긴장은 괜찮지만, 과한 불안은 의도치 않은 사고를 불러일으키곤 하니까.
“그리고 임태용 헌터님께서 지속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단체 은신에 능하십니다. 그렇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자 태용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한 시간 안에 올게요. 그래도 정 무서우면…….”
나는 내 이어셋을 한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연락하세요. 바로 달려올 테니까.”
심드렁한 내 말에 희민은 반하겠어요, 라며 미소 지었다.
그 찰나 희민의 뒤로 우신과 눈이 마주쳤다. 우신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시선을 피했다.
보아하니 멀미는 하지 않는 듯했다.
아까부터 번번이 눈이 마주치는 거로 봐서는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할 것이지 힐끔힐끔 살피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려본 뒤 휙 돌아섰다.
“그럼 다영 씨, 출발합시다.”
먼저 앞장서 걷기 시작하자 다영도 서둘러 내 뒤를 따라나섰다.
* * *
한참을 조용히 걷다 보니 어느새 밀림 깊숙이 진입했다.
눅진한 땅 위로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덕분에 좀처럼 속도는 나지 않는데 체력은 배로 깎였다.
“……좀처럼 몬스터가 보이지 않네요.”
나직한 다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다영의 말처럼 듬성듬성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왔음에도 우리를 덮쳐 오는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근처 수풀을 힐긋 보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눈앞에 나타난 평지를 걷다 우뚝 걸음을 멈춰 서자 땅만 보고 걷던 다영이 놀란 듯 급히 날 따라 멈췄다.
나는 주위를 슬쩍 돌아본 후 시선을 땅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놓인 잎사귀와 나뭇가지를 치웠다.
다영은 조용히 서서 내 모습을 주시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네?”
잔가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젖은 땅 위로 비교적 근래에 찍힌 듯한 동물의 발자국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