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5화
확실히 게이트를 활자나 영상으로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신입 헌터들이 현장에 가면 몬스터의 압박을 못 이겨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과거보다 게이트에 들어가는 가이드의 수도 늘어나는 추세니, 이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훌륭한 훈련 방식이었다.
“좋네.”
공지를 쭉 읽어 내려가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곤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좋다고?”
“응?”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제야 이곤을 쳐다보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말 하나도 안 듣고 있었구나.”
“아, 미안.”
이곤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딱 이 기간에 출장을 가거든. 아쉽겠지만 다음에 있을 심사를 노려 보자고.”
나는 이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출장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진심으로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자 이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이내 머쓱한 얼굴로 말을 늘였다.
“그거야 이건 팀을 이뤄야 하는 거니까.”
“그래, 그게 왜.”
“아, 공지를 다 안 읽었구나? 이거 팀원을 알아서 모아야 해. 앞으로 삼 일 안에 말이야.”
이곤은 그 말과 함께 테스트의 참가 방법란을 손가락으로 꼭 짚어 주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나도 알고 있어.”
도리어 성을 내자 이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말을 돌리고 돌리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뱉어 냈다.
“……너 나 말고 팀원을 어떻게 구하려고?”
“…….”
나는 두 눈을 끔뻑이며 이곤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건 나를 무시하거나 깔보아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팀원을 구할 수 있겠냐는 걱정만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다 방법이 있으니까.”
* * *
모든 에스퍼가 나와 같이 죽음의 위기에서 각성하진 않는다.
대부분은 학교 수업 시간이나 퇴근길의 지하철 같은, 일상 속에서 각성하곤 했다.
그런 에스퍼들은 초인적인 능력이 생겼을 뿐, 그때까진 ‘아직’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에서 동료를 잃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본 후에야 비로소 헌터로서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겨우겨우 제 목숨 하나 부지해 살아 돌아오게 되면 그때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머릿속에 깊게 박혀 버린다.
하지만 센터는 트라우마를 마치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처럼 치부하며 그들을 억지로 게이트에 밀어 넣었다.
이를 막기 위해 나는 앞장서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시작했다.
경험상 주저앉은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센터는 이런 내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회유와 협박을 해 점점 더 많은 업무를 맡겼다.
사실 혼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14년이란 시간 속에서 나는 어느새 혼자 움직이는 게 당연한 영웅이 되어 있었다.
묘한 긴장감에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다듬고 나서야 식당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팀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양하나가 팀원을 구한다고 하면 상위 등급 에스퍼들은 코웃음 치면서 무시할 게 뻔했다.
그러니까 내가 노리는 건 조금은 다른 에스퍼였다.
높은 등급의 에스퍼조차 트라우마 탓에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주저하는데, 낮은 등급의 에스퍼는 오죽할까.
나는 식당을 둘러보다 찾던 얼굴을 발견하고 가장 끝자리로 걸어갔다.
똑똑.
식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밥을 먹는 에스퍼에게 다가가 탁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밥을 먹던 에스퍼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밝은 갈색 머리의 그녀는 얼굴이 창백한 편이었다. 덕분에 기력 없는 인상이었다.
“……무슨 볼일이라도.”
예상한 대로 그녀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씩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나요.”
“…….”
양하나와 같이 노골적인 괴롭힘을 받는 에스퍼는 드물었다.
그렇지만 힘이 약하고 등급이 낮은 에스퍼가 무리에서 소외되는 일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
2군의 B급 에스퍼 김다영.
그녀는 미약한 힘이기는 하나 물리계 염동력자였다.
“곧 있을 이벤트 심사 때문에 찾아온 거죠, 팀원 구하러.”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이었다. 나는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아직 팀이 없으시다면 함께…….”
“사양할게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영은 고개를 숙였다.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나는 두 눈을 끔뻑이다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다영은 고개를 들고 나를 힐끔 보더니 나직하게 답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니까요.”
“결과요?”
“네, 제가 B급 물리계라 이러시는 거라면 잘못 찾아오셨어요.”
“…….”
“전 제가 왜 B급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능력이 형편없거든요.”
너무 평온한 다영의 목소리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본인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야박한 거 아닐까요.”
“무엇보다 이번에 열리는 심사는 힘없는 B, C 등급이 도전할 만큼 수준 낮은 이벤트가 아니니까요.”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안 봐도 훤했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아직 극복하지 못한 거다.
압도적인 능력으로 선발대에 서는 1군이나 보조 역할을 하는 3군과는 다르게 2군의 포지션은 늘 애매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번번이 목숨을 잃는 건 이런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함께했던 팀원들의 빈자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에 골이 생겨 의문이 차오르게 된다.
내가 약해서, 내가 더 강한 등급이었다면…… 혹시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의문.
순간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이 머릿속을 스쳤다.
“…….”
애써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다영에게 집중할 때였다.
가능한 내가 가진 패를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능력은 이미 민지민을 통해 상부에 까발려졌으니 나 역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해야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였다.
잠깐의 고민 끝에 실례라고 작게 말한 뒤 식판 옆에 놓인 다영의 손등 위에 내 손을 포갰다.
“이게 무슨……!”
다영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텔레파시로 내 기억 속에 저장된 지난 전투 장면을 그녀에게 흘려 보냈다.
내가 다영에게 보여 준 건 홍 반장의 에너지와 정신 감응한 순간이었다.
찰나지만 그걸 본 다영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소문이 진짜였네요.”
“…….”
제1 훈련장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소문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다영의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은 수긍하는 편이 내게 유리해 보였다.
나는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감정을 잘 숨겨 오던 다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급한 게 저뿐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왔습니다.”
미리 그녀의 게이트 출입 기록을 확인해 보니 마지막으로 참가한 게이트가 석 달 전이었다.
몇 달간 게이트 최소 출입 횟수를 채우지 못했으니 이대로 있다가는 강등이나 퇴출을 면치 못할 거란 소리였다.
“시작도 안 해 본 일의 결과를 재기에는 저희가 벼랑 끝에 서 있지 않나요.”
내 말에 굳게 다물어져 있던 다영의 입이 열렸다.
“……이 이벤트에서 미끄러지면 그 벼랑에서도 떨어질 거란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
팀원을 모으기까지 삼 일이란 시간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식으로 더 부드럽게 회유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지금 그녀에겐 어설픈 위로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힘이 더 간절할 테니 말이다.
생각 끝에 나는 나직하게 답했다.
“한 번 믿어 보지 않을래요? 나는 이번 심사를 통과해 반드시 1군으로 올라갈 생각입니다.”
“…….”
“물론 팀원들과 함께요.”
* * *
이후는 간단했다.
잠시 주저하던 다영은 속는 셈 치고 믿어 보겠다 말하며 내 첫 번째 팀원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벤트 참가를 위해 필요한 일곱 명 중 세 명을 모아 주었다.
다들 비슷한 사정을 가진 정신계와 감각계 C급 에스퍼였다.
참가 신청서를 읽어 보니 7번째 팀원은 추첨을 통해 정해 줄 심산인 듯했다.
다영은 이 인원으로 이벤트 돔을 클리어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에 나는 제법 태평한 얼굴로 괜찮을 거라 답했다.
“이제 남은 건 가이드인데 어쩌죠?”
다영의 질문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워낙 그 수가 적고 귀했기에 2군에만 소속돼도 괜찮은 연봉과 복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심사에 참여하는 가이드의 수는 압도적으로 적었다.
무엇보다 만들어진 게이트라고 해도 힘이 없는 팀을 따라나섰다가 괜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팀의 구성원이 A등급 이하인 팀이 가이드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이다.
다영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고민 끝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수가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