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3화
지민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그 사람 앞에선 이 성격 어떻게 죽였나 몰라. 꼬리 흔들며 알랑방귀 뀌는 거 보기 좋았는데…… 아쉽게 됐어. 그렇게 죽어 버려서 이제 보지를 못하니…….”
우신은 지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멱살을 잡았다.
표정 변화는 없지만, 우신은 마치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처럼 주저 없이 주먹을 쥐어 올렸다.
살기등등한 모습에 홍 반장은 어찌할 줄 몰라 하는데, 지민은 우신의 귀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작게 말을 이었다.
“이거 놔, 병신아. 의무반 불러야 저 계집도 살 테니까.”
지민의 말에도 우신은 주먹을 풀지 않았다.
대신 지민이 턱짓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힘없이 쓰러진 하나가 있었다.
우신은 한참 동안 무감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잡고 있던 지민의 멱살을 밀치듯 놓아주었다.
* * *
온몸이 부서질 거 같았다.
정신을 놓기 직전, 누군가의 흐릿한 기억을 들여다본 거 같았다.
나는 방 안에서 성시현의 활약상이 담긴 기사를 스크랩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방이었고,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나온 신문을 스크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나지만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선명했다.
고개를 들자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스크랩북을 들고 있는 사람은 양하나였다.
“양하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이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내가 누워 있는 곳이 어딘지 확인하니 그는 그제야 안심한 듯 자리에 앉았다.
“곧 깰 거라고 하더니 정말이네.”
“병원이야?”
“……그래.”
몸이 으스러질 거 같더니, 결국 병원에 온 모양이었다.
나는 손으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앉아 있던 이곤도 한 손으로 내 등을 받쳐 주며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아직 약 기운 때문에 몽롱할 거야.”
나는 내 몸을 살펴봤다.
팔이 부러진 거 같았는데 치유계 에스퍼가 금세 뼈를 붙여 준 모양이었다.
그렇다 한들 뼈가 부러질 때 느꼈던 통증까지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왜 말 안 했어.”
이곤의 질문에 나는 눈을 천천히 끔벅이며 되물었다.
“뭘?”
“너 가이딩에 문제 있다며.”
“……어떻게 알았어?”
되묻는 말에 이곤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모르는 게 더 어렵겠더라. 네 가이딩을 부탁했더니 오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러고 보니 몸에 열감이 있었다. 힘을 너무 많이 쓴 듯했다.
“들어 보니까 머리 다쳤었던 그 게이트에서 나온 직후부터라며…….”
그는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민지민 헌터랑 어울리고 가이딩에도 문제가 생기다니……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렇게 묻는 이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
민지민 헌터든 가이딩이 안 되는 일이든 내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성시현으로 살아갈 때는 누구도 이런 사소한 일을 걱정해 준 적 없었기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죽상을 하고 양하나를 걱정하는 이곤이 내가 그녀가 아님을 알게 되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쉽사리 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자연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대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곤은 나를 가만히 노려보고는 문 쪽으로 갔다.
“그게 무슨…….”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보란 듯이 문을 열었다.
나는 문밖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쪽이…… 왜 여기에.”
문밖에는 강우신이 서 있었다.
“내가 부탁했어. 너 당장 가이딩받아야 하는 상태래. 뭐가 됐든 일단 몸이 먼저잖아.”
“너 이게 무슨……!”
내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이곤은 혓바닥을 내밀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이곤이 사라진 문만 바라봤다.
문이 쿵 닫히고 우신과 나 사이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숨 막힐 듯한 어색함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약에 취한 탓인지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꿈 같았다.
“앉아도 됩니까.”
내가 굳어 있자 우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놀라 고개만 세차게 끄덕였다.
우신은 허락을 받고서야 침상까지 걸어왔다.
이곤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은 그는 평소처럼 표정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긴 왜 온 건지 도통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가이딩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오면서 들었습니다.”
“…….”
“센터 연구실을 방문하는 게 더 중요하지만, 급한 불 먼저 꺼야겠죠.”
우신은 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멀뚱히 쳐다만 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이딩받는 게 주저됐다.
어째서인지 받으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 상태로 한참을 가만히 있자 우신이 입을 열었다.
“그전에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나는 안도감에 작게 숨을 내쉬고 답했다.
“네, 그러세요.”
질문하겠다던 우신은 잠시 고민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훈련장에서 양하나 헌터가 봤던 거, 그거 허상입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어요.”
지민의 능력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허상을 보여 주는 감각계 에스퍼였다.
그리고 그의 성격상 그 정도 트릭은 놀랍지도 않았다.
내 차분한 반응에 우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왜 계속 그쪽을 신경 썼습니까? 마지막에 배리어도 본인이 아닌 그 방향에…….”
“만에 하나 허상이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요.”
“네?”
“민지민 에스퍼 성격상 변수의 변수를 두고, 제가 그걸 허상이라 판단해 무시하는 경우까지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제 판단이 어긋나는 순간…….”
나는 말끝을 흐리며 우신을 지그시 바라봤다.
강우신, 네가 다칠 수도 있으니 그랬다는 말이 혀 위에서 녹아 사라졌다.
하지만 우신은 마치 내가 말하지 않은 뒷말을 들은 사람처럼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절 위하는 척하셔도 그때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또다. 내가 모르는 양하나와 강우신의 이야기였다.
“…….”
내가 조용히 있자 그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분명 저번에도 말한 거 같은데요.”
우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저는 제 목숨 소중한지 모르는 인간을 가장 혐오합니다.”
“…….”
“그러니까 내가 가이드라는 이유로…… 아니, 그 어떤 이유에서건 날 지키려고 하지 마십쇼. 하나도 고맙지 않으니.”
단호했다.
이 몸으로 마주한 우신은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감정의 폭이 좁은 듯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핏대를 세우며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괜히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거…….”
“…….”
“성시현 때문인가요.”
충동적으로 뱉어 낸 이름이었다.
약에 취해 몽롱한 정신 덕분인지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물음이 슬그머니 새어 나왔다.
육 년이나 지난 일이고 너는 그사이에 많이 달라졌으니 혹여라도 다 잊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당신, 지금 뭐라고…….”
내 이름을 들은 순간 강우신의 표정은 보는 사람의 가슴이 찢어질 만큼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고작 이름 하나에 동요해 무너져 가는 얼굴에, 나는 감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신은 허벅다리에 올려놓은 손을 꽉 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먹 안으로 말려 들어간 손가락에서 화를 누르는 그의 마음이 엿보였다.
병실에는 무거운 침묵만 내려앉았다.
도대체 무엇이 육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신을 곪게 하는 건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신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의 절망적인 표정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질 만큼 그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바닥을 향해 있던 속눈썹이 걷히고 이내 우신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우신은 그게 우스운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찰나였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저는 양하나 헌터가 어딘가 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
“꼭 다른 사람 같아졌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뭔가 단단히 착각한 모양입니다.”
우신의 날이 선 목소리는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제가 에스퍼인 당신에게 이런 말 하는 게 우스울지 몰라도…… 한 번 더 제 앞에서 그 이름을 꺼낸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감한 표정으로 한 글자씩 눌러 말하는 우신이 당장에라도 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안하다는 사과를, 그게 아니라면 무슨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입이 말라 갔다.
그 순간.
똑똑-
“양하나 에스퍼님 계십니까?”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병실로 활달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