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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8)화 (1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8화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입을 열었더니 목소리가 전부 갈라져 나왔다.

이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다 용건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곤은 대뜸 인상을 쓰더니 그렇게 물었다. 그의 언성이 높아진 만큼 내 이맛살도 덩달아 찌푸려졌다.

나는 한쪽 귀를 막으며 답했다.

“시끄러워.”

단호한 말에 그는 언제 소리 질렀냐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

기가 팍 죽은 듯 이곤은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그 시선에 못 이기는 척 되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 그는 다시 다급한 얼굴로 변했다. 참 표정이 다양한 친구였다.

“너 그제 갔던 게이트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

그의 추궁에 게이트에서의 일을 떠올리듯 눈알을 굴렸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을 살리는 짓?”

내 대답이 어처구니없었는지 이곤이 제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치자는 게 아니잖아. 너 지금 상부에서……!”

“양하나 헌터님.”

이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이곤은 동시에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양하나 헌터님, 본인 맞으십니까?”

나는 이곤을 곁눈질했다.

이곤은 늦었다는 얼굴로 마른세수했고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

내 대답에 두 남자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재킷 주머니에서 사원증을 꺼내 보였다.

“감시과에서 나왔습니다. 함께 가 주시죠.”

* * *

모든 에스퍼가 헌터가 되는 건 아니었다.

에스퍼는 각성과 동시에 아카데미 입학이 결정된다.

전문 과정을 모두 이수하는 데는 꽤 큰 금액이 요구됐기에 에너지 운용 같은 기초 수업만이 필수 교육 과정이었다.

그 이후 센터 시험을 보거나 길드에 자원하는 등의 진로 선택은 본인의 자유였다.

물론 이름뿐인 자유지만 말이다.

게이트의 창궐 이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건 게이트 안의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힘이 없고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땅을 가르고 하늘을 나는 에스퍼 또한 몬스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건물 입구에는 에스퍼의 에너지를 읽고 입장을 제한하는 보안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심지어 노에스퍼존이 존재하기도 했다.

분명한 차별임에도 제 몸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일반인들은 저들의 안전을 내세웠다.

결국 항상 에스퍼에게 불리한 판세가 되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에스퍼가 헌터를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에 섞이려면 너무나도 많은 제약과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한정된 자유 같은 거였다.

물론 제힘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에스퍼에게 헌터는 제법 괜찮은 직업이었다.

센터만 하더라도 1군에만 들면 급여도 복지도 대기업 간부 수준이니 말이다.

다만 그런 자리는 한정적이며 제약 역시 넘쳐 났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선 자들을 감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몬스터도 때려잡는 에스퍼들이 유일하게 눈치를 보는 대상.

그들이 감시과 사람들이었다.

머리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조명등이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흔들리는 걸 잡기 위해 자리에서 살짝 엉덩이를 들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움직임에 반응하는 레이저가 곧장 나를 노렸다.

반쯤 선 자세 그대로 멈추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조용히 일어나 조명등을 바로잡아 줬다.

내가 자리에 도로 앉자 남자도 곧바로 따라 앉았다.

그는 서류 파일을 펼쳐서 내게 보여 주며 운을 뗐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모두 녹화되며 외부에 발설 시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류에 적혀 있는 글은 길었지만 남자는 그렇게 딱 잘라 말하고는 만년필을 내밀었다.

조용히 사인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선택권이 없는 내가 펜을 쥐고 사인하려는데 남자가 한마디 더 나직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한 번 더 허락 없이 움직였다가는 경고 없이 사격할 겁니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경고였다.

감시과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항상 고압적인 자세로 에스퍼들을 대했다.

덕분에 에스퍼와 감시과 사이는 좋을 리 없었고, 그건 6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6년이 짧은 시간도 아니고, 조금은 바뀌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한 듯했다.

나는 사인을 마치고 그의 사원증을 보며 답했다.

“네, 그러시죠. 최강혁 감시관님.”

아마 이틀 전 클리어한 B급 게이트 때문에 찾아온 모양이었다.

보통 게이트가 정리되면 현장 담당자가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제출한다.

우리를 인솔한 담당자는 홍 반장이었으니 당연히 그가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날 내가 그의 동의 없이 정신 감응을 했다는 것이다.

내게 에너지를 뺏기면서 혼절한 그는 상황이 모두 끝나고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그와 정신 감응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을 거였다.

그러니 당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양하나에 의해 정신을 잃었으니, 홍 반장의 성격상 절대 조용히 보고서를 제출했을 리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뭐라고 썼길래 감시과 사람이 들이닥친 거야.’

“그럼 양하나 헌터의 말로는 단순한 텔레파시였다는 겁니까?”

그날의 일을 되짚어 달라는 감시관의 말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텔레파시를 썼다고 둘러댔다.

“네, 그렇습니다.”

표정 변화 없는 뻔뻔한 내 대답에 그는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계속 둘러대기만 하면 면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위협을 하듯 그렇게 말했다.

면담은 개뿔. 누가 봐도 심문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게이트가 클리어됐을 당시 깨어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당일 있었던 일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정신 감응은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기술이다.

또한 그간 양하나가 현장을 뛰며 축적한 데이터로는 감히 혼자 게이트를 클리어했으리라고 의심할 수도 없을 거였다.

확신에 찬 나는 입매를 올려 웃었다.

“둘러대다니요.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

나도 오래 버티는 일에 자신 있었다.

이틀이고 삼 일이고 누구 하나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될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미소 짓는데 천장에 붙어 있는 스피커가 노이즈 소리를 내며 켜졌다.

-에이, 거짓말.

“…….”

발랄한 목소리의 주인은 마이크 테스트, 라고 몇 번 읊조린 뒤 정확히 내 폐부를 찔러 왔다.

-그런 건 텔레파시가 아니라 정신 감응이라고 하죠, 양하나 헌터님.

숨기고자 한 기술의 명칭을 정확히 읊어 내자, 일순 나는 당혹감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감시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제 앞에 놓인 서류에 무언가를 필기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인가 보네요.”

“…….”

함부로 입을 열면 불리해질 거 같아 말을 아꼈다.

이제 보니 최강혁 감시관이란 자는 이미 정신 감응에 대해 알고 있으며, 내 입으로 직접 확인받기 위해 유도 심문을 하던 모양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자식들.

감시관을 노려보는데 맞은편에 있던 거울이 어두워지며 거울 뒤편이 보였다.

거기에는 한 손에 마이크를 든 남자가 보조개를 드러내며 예쁘게 웃고 있었다.

-설마 정말 정신 감응을 쓸 줄 아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반갑네요.

“…….”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여 눈을 끔뻑이는데 타이밍 좋게 남자가 제 소개를 했다.

-처음 뵙습니다. 센터 소속 에스퍼 지민입니다.

지민은 제 가슴께에 손을 얹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행동에 그제야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S급 감각계 에스퍼인 민지민이었다.

그 사실을 기억해 내기 무섭게 내 얼굴이 굳었다.

그는 내가 성시현으로 공격 1팀에 있을 당시 강우신과 함께 입사한 막내 에스퍼였다.

공격 1팀은 팀명 그대로 공격적인 내 스타일을 보좌해 줄 뛰어난 능력의 에스퍼와 가이드가 각 축이 되어 줬다.

당연하지만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센터는 내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스케줄을 주었고, 결국 항상 나 혼자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실제로도 팀 전체가 움직이는 케이스는 해외의 게이트 레이스에 참가할 때가 아니면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보여 주기식 팀이었다.

활약할 것을 기대하고 공격 1팀에 들어왔다가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은 실망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입사와 동시에 부서를 옮기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신입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게 됐다.

“…….”

분명 그랬는데, 성시현이었을 때 공격 1팀에 들어온 신입 두 명의 이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 명은 강우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민지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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