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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화 (1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화

홍 반장은 사색이 돼서는 미친 사람을 보듯 질색했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

실제로 대전제를 뒤집고 정신 감응에 성공한 정신계 에스퍼는 없었다.

그러니까 정신 감응은 그저 정신계 능력에 심취한 연구진들의 이론일 뿐이라는 소리였다.

교수가 말하는 이론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그 당시엔 그저 허황된 꿈 정도로 여겼다.

분명 그랬는데, 커다란 그릇에 비해 에너지는 미약한 이런 몸을 보니 불현듯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내 아래 깔린 홍 반장을 내려다보며 조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손을 뻗어 그의 이마와 내 손바닥을 맞댔다.

* * *

정신 감응.

이론상 정신계 에스퍼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로 단순히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텔레파시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타인의 에너지에 감응한 시전자가 일시적으로 타인의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에너지에 감응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지만,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한 건 역시 접촉이었다.

“너,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홍 반장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도 이론으로만 알지 직접 해 보는 건 처음이라 집중력이 좀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쉿.”

손바닥에 힘을 집중하고 홍 반장의 몸 안에 흐르는 에너지의 길을 읽었다.

그리고 에너지가 정확히 그의 이마 위를 회전하는 순간, 나는 그걸 낚아채듯 뽑아 올렸다.

순식간에 텅 빈 몸 안의 그릇으로 물이 차오르듯 에너지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에너지였다.

묵직하고 단단한 에너지에 손바닥이 델 듯 뜨거워졌다.

더 욕심냈다가는 손바닥의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는 에너지를 전부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바닥을 뗐다.

“흐읏.”

손바닥 전체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서둘러 홍 반장의 이마을 확인했지만 내 손바닥과는 달리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혼절한 거 같았다. 눈을 까뒤집어 흰자만 보였고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새고 있었다.

이론으로만 알던 기술이다 보니 적정선을 넘긴 모양이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 그의 코 아래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도 숨은 잘 쉬고 있었다.

그에 안심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살릴 수 있는 에스퍼를 확인하는데, 때마침 거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악!”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에스퍼가 몸이 두 동강 날 거 같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몬스터는 그 반응을 즐기듯 에스퍼의 몸을 쥔 손을 주먹 쥐었다 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주저 없이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총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집게손가락 끝으로 총알을 날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에 반응한 몸 안의 에너지가 총알처럼 손가락 끝에서 날아갔다.

피슝-

홍 반장의 에너지 색인 주황빛의 에너지가 총알처럼 작게 응축되어 정확히 몬스터의 손목을 맞혔다.

몬스터는 그 충격에 에스퍼를 놓았지만, 그건 내가 원한 바가 아니었다.

손목을 아예 날려 버릴 생각으로 에너지를 쏘았는데, 아직 홍 반장의 에너지가 손에 익지 않아 힘 조절이 미흡했다.

홍 반장의 에너지 덕인지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닳는 속도도 빨랐다.

시간을 오래 끌면 힘이 바닥나 불리해질 게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투 불능의 환자가 너무 많았다. 최대한 빠르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가야 했다.

그런 판단이 서자 나는 주저 없이 몬스터의 급소만 노리기 시작했다.

원숭이형 몬스터는 청각이 둔해 눈과 음파에 크게 의존한다.

머리 중앙에 있는 몬스터의 눈은 두꺼운 외피에 감싸여 있지 않은 유일한 약점이었다.

따라서 하나뿐인 눈을 날리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물론 몬스터도 지능이 있었기에 제 눈을 보호하려 들었다.

그러니 약점을 가리는 손등과 함께 눈을 관통해야만 했다.

“……방금처럼 쏘면 절대 눈까지 닿지 못해.”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홍 반장의 에너지를 몸속에서 마구잡이로 굴렸다.

손목에 흠집이 난 몬스터는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사방이 울렸다.

그럼에도 나는 에너지를 굴리는 데 집중하여 방금보다 세 배 정도 더 큰 에너지 탄알을 만들었다.

빠르게 덮쳐 오는 몬스터의 손이 내게 닿기 바로 직전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에너지 탄알을 발사했다.

몬스터의 손등을 관통한 탄알이 그대로 몬스터의 머리까지 날렸다.

“…….”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머리가 관통된 몬스터가 쿵 하고 거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에 내 일행을 장난감처럼 쥐고 있던 나머지 몬스터들이 사방을 뒤흔드는 음파를 내질렀다.

“집단으로 몰려다니더니…… 동료애가 끔찍한가 보네.”

나는 오랜만에 힘을 느끼며 몬스터를 발판 삼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번 날아오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힘을 사용할 때마다 에너지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아마 머지않아 홍 반장의 힘이 바닥날 것이다.

그러나 게이트 주인 방에는 여전히 몬스터가 그득했고, 양하나의 몸은 이미 한계치였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 웃음이 났다.

성시현의 몸으로 다녔던 게이트는 마치 만렙을 찍고 하는 게임 튜토리얼 같았다.

그에 비해 지금은 마치 죽음과 삶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했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희한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몸을 사용하는 감각.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흥분을 누른 채 최소한의 힘으로 몬스터의 급소를 찌르는 데 집중했다.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했기에 에너지만큼 정신력 소모도 엄청났다.

정신없이 날아다닌 끝에 나는 몬스터들의 시체 더미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나서야 가쁘게 숨을 골랐다.

그런데 아직 죽지 않은 놈이 하나 있었는지 큰 그림자가 느린 걸음으로 내 뒤를 덮쳐 왔다.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턱으로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쏘아 올렸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공격에 놈의 피가 솟구쳐 올라 비처럼 내렸다.

후두둑.

온몸이 몬스터의 피에 젖어 찝찝해졌다. 그새 응고된 피가 머리칼에 들러붙어 있었다.

대충 머리칼에 묻은 것만 털어 내는데 이제 진짜 홍 반장에게서 뽑아 온 모든 에너지가 동이 났나 보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허한 감각이 번졌다.

한없이 가볍기만 하던 몸이 순식간에 닻을 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저절로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신을 놓으면 이대로 시체 밭 위에서 잠들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힘겹게 팔을 뻗어 기어가듯 홍 반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전자시계의 클리어 사인 버튼을 찾아 눌렀다.

타이밍 좋게 저 멀리, 뒤늦게 지원 팀 에스퍼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엉망이 된 내부 상황에 사색이 된 그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담당자인 홍 반장을 찾는 듯했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었지만, 이제 정말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나는 그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띵동-

아침부터 누군가 초인종을 미친 듯이 눌러 댔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에도 상대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문을 두들겼다.

“양하나!”

노크 끝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베개에 묻은 얼굴을 들고 문 쪽을 쳐다봤다. 이곤이었다.

별수 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온몸이 부서질 거 같았다.

게이트에서 홍 반장과의 정신 감응에 성공했을 땐 정말 놀랍도록 몸이 가벼웠었다.

운동으로 아무리 체력을 길러도 에너지가 주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힘에 취해 너무 무리한 탓인지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이후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

몸을 움직이면 모든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거 같았다.

뒤늦게 도착한 후발대 중 순간 이동을 쓸 줄 아는 에스퍼가 있어, 빠르게 게이트 밖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번처럼 가이딩 순서가 가장 뒤로 밀려나야 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터질 듯 뜨거운 내 몸 상태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현장 가이드가 가이딩을 해 준 모양이다.

물론 그다지 효과는 없는 거 같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정신이 들었을 당시 전혀 가이딩을 받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렇게 깨어난 이후 이틀 내리 약과 기계 가이딩을 병행하며 잠만 퍼질러 잤다.

오늘도 연차를 내고 푹 잘 생각이었는데…….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막 9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무슨 볼일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이곤의 애타는 목소리에 미간에 힘을 주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별거 아닌 일로 일어나게 한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기 무섭게 이곤이 문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덕분에 무거운 몸을 문에 기대고 있던 나는 엎어지듯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이곤은 반사적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놀란 얼굴을 했다.

“괜찮아?”

참 일찍도 물어본다.

나는 그의 어깨를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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