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화
높이가 족히 5M는 넘을 거 같은 문은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낡아 있었다.
앞서가던 홍 반장이 뜀박질을 멈추지 않고 문에 몸을 들이박자 문이 열렸다.
우리는 주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과 동시에 등 뒤 도심의 전경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축구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큰 방에는 벽면을 따라 넝쿨 식물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홍 반장은 눈알만 굴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그런 그의 옆에 서 있던 에스퍼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홍 반장에게 나직이 말을 걸었다.
“……여기 뭔가 공기가 답답하지 않습니까?”
“답답하다고?”
“네……. 꼭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들어찬 것처럼 공기가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던 에스퍼는 말끝을 흐렸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홍 반장이 그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
커다란 방을 에워싼 넝쿨 식물 탓에 방이 어두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방의 천장에 몬스터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들은 넝쿨을 한 손으로 잡거나 다리에 감은 채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든 덮칠 수 있도록 말이다.
“…….”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한 에스퍼 모두 그대로 얼어붙었다.
간혹 게이트 주인 대신 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게이트 주인이 없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주인이 없다는 건 누군가가 무리를 통솔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모든 몬스터의 기본 능력치가 상당히 높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이 방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몬스터의 공격 한 번으로 두 동강 나는 건물을 통해 확인했다.
넝쿨에 육중한 몸을 지탱하고 있던 몬스터들이 한두 마리씩 쥐고 있던 넝쿨을 놨다.
일행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에스퍼들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당장 피해요!”
내가 복부에 힘을 주고 그렇게 외치자 모두 아슬아슬하게 좌우로 몸을 날렸다.
* * *
내 고함 덕분에 단체로 몬스터 아래 깔려 죽는 일은 면했다.
홍 반장은 육중한 몸으로 제법 재빠르게 굴렀다. 그는 몬스터가 내려앉은 땅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우리가 서 있던 땅이 찰흙처럼 뭉개져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뭉그러진 건 땅이 아니라 우리였을 거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겁니다…….”
내 나직한 경고에 홍 반장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고 넌 음파나 똑바로 차단하라고!”
“…….”
상당히 긴장한 모양인지 평소보다 배로 날이 서 있었다. 그럴 만했다.
우리를 둥글게 에워싼 몬스터들은 아무래도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포함한 정신계 에스퍼는 셋뿐이었다.
비전투 계열인 우리를 제외하면 물리계 에스퍼는 열 명 남짓이었다.
그들은 홍 반장의 사인에 맞춰 몬스터에게 뛰어들었다.
물리계라고 모두가 같은 수준인 건 아니었다.
B급이나 C급 물리계는 훈련을 게을리하면 힘쓰는 자세만 봐도 티가 났다.
서류를 보며 예상했지만,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보니 더 절망적이었다.
그들은 몬스터의 손짓 한 번에 쓸려 나갔다.
벽에 부딪힌 에스퍼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우리 쪽 에스퍼들은 이미 한계인 데 반해 몬스터는 아직도 떼거리로 남아 있었다.
정신계인 양하나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홍 반장의 말대로 음파를 막는 게 전부였다.
“…….”
정말이지 처음 느껴 보는 무력감이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정신계 에스퍼인 두 사람은 음파 차단을 그만두고 처음 들어온 문 쪽으로 달려갔다.
더 이상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건지 어떻게든 이 방을 나가려고 낑낑댔다.
하지만 게이트의 주인 격인 몬스터들을 해치우지 않는 이상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벽 쪽으로 물러서며 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눈에 담았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 정도가 아직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서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모두 전투 불능이란 소리였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홍 반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홍 반장은 A급 물리계 에스퍼로 이 팀의 핵심 전투원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염동력 계열의 힘을 똑바로 활용할 줄 모르는 듯했다.
나는 아카데미를 다닐 때부터 물리계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사람을 보좌하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직접 몬스터를 일망타진할 때의 손맛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홍 반장의 움직임이나 힘을 운용하는 모습이 아쉽게 느껴졌다.
평소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헌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홍 반장을 바라보던 그때 내 쪽으로 부서진 바위가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낮춰 공격을 피한 후 바위가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몬스터가 잇몸을 드러내며 날 향해 비열하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완전 장난감 취급하고 있잖아…….”
몬스터는 보란 듯이 바닥에 나뒹구는 바위 조각을 들더니 홍 반장을 향해 던졌다.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한꺼번에 상대하느라 그는 제 옆통수로 날아오는 바위를 모르는 듯했다.
홍 반장까지 쓰러지면 정말 끝이었다.
나는 두 다리에 힘을 모아 뛰었다.
홍 반장 몸 위로 바위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 나는 몸을 날려 그를 안고 돌바닥을 굴렀다.
바닥에 몸이 쓸리며 팔 부근의 옷이 모두 찢어졌다.
홍 반장은 신음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윽, 이게 무슨……!”
내 얼굴을 확인한 홍 반장은 표정이 사나워져서는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비켜!”
홍 반장은 제 위에 엎어진 나를 밀쳐 내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머리가 웅웅 울려 시야가 흔들렸다.
잔뜩 성이 난 홍 반장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무어라 소리쳤다.
바닥을 구르며 뇌가 흔들린 탓에 그의 목소리가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그가 소리칠수록 머리가 더 어지럽게 울렸다.
“너같이 쓸모없는 놈 말고 다른 에스퍼를 데려왔으면……!”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주둥이를 쥐었다.
“……머리 울리니까 조용히 좀 해 봐요.”
그 말에 홍 반장은 얼굴이 붉어져서는 내 손을 쳐 냈다.
“이게 죽을 때가 되더니 드디어 미쳤나!”
“죽을 때가 됐다라…….”
홍 반장 하나 구하자고 몸을 날리는 사이 나머지 에스퍼들은 곤죽이 되어 널브러졌다.
힘없이 늘어진 그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때마침 홍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손으로 땅을 짚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그냥 앉아 있어요.”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 따위 없으니까.”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 생각을 하다니. 보기와는 달리 제법 정신력이 강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상황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멘털이 나갔든지.
“……하.”
어느 쪽이 됐든 지금처럼 넋 놓고 있다가는 앞으로 닥칠 결말이 뻔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오른 소매를 걷어 올렸다. 홍 반장은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말이죠. 한 번 죽어 봐서 아는데, 게이트 안에서 죽으면 사후에도 팔자가 사납습니다.”
“뭐?”
“여기서 한 번 더 죽었다가는 또 누구 몸에서 깨어날지 아찔하거든요.”
“…….”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내 혼잣말에 홍 반장은 드디어 미친 거냐며 혀를 찼다.
나는 소매를 걷어 올린 손으로 홍 반장을 땅바닥에 밀쳐 눕혔다. 홍 반장의 눈이 당혹감에 휘둥그레졌다.
나는 그를 빤히 내려다봤다.
한 달 가까이 체력을 단련하며 이 몸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해 봤다.
그 결과 꽤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됐다.
첫 번째는 양하나의 에너지 흐름이 엉망진창이라는 거다.
에스퍼와 가이드는 각성과 동시에 몸 안에서 에너지가 발현된다.
몸 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에너지를 운용하는 법을 배운 건 각성 후 가장 먼저 교육받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걸 배우지 못하면 금방 힘의 한계에 부딪히고 쉽게 지쳤다.
그런데 양하나는 힘을 사용하면서도 에너지 운용은 할 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좀처럼 에너지의 길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카데미 입학과 함께 배우는 건데, 기초 수업을 받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두 번째는 에너지를 담아 두는 그릇이 등급에 맞지 않게 커다랗다는 점이었다.
거지 같은 체력에 에너지 총량도 미비한 양하나의 유일한 장점.
에너지 운용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양하나가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에너지 운용에 있어 가장 필요한 건 에너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에너지의 양이 많더라도 만약 그릇이 그 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운용은커녕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양하나가 가진 그릇의 크기는 S급 에스퍼에 버금갔다.
그 사실을 깨닫자, 머릿속에 번뜩 흥미로운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과거 아카데미 재학 시절, 정신계 기술은 조금만 배우면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수업에도 별 흥미가 없었다.
덕분에 매일같이 수업 시간에 졸았었는데 딱 한 번 집중한 적이 있다.
수업의 주제는 ‘정신 감응’이었다.
“에스퍼에게 에너지는 지문 같은 겁니다. 각성 시 타고난 에너지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가죠. 이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전제입니다만…… 유일하게 이 대전제를 뒤집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정신 감응에 성공한 정신계 에스퍼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홍 반장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