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화
“그게 무슨 소리야!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꾀병인 거 아니야?”
저게 담당자라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뒤통수를 쏘아보다 말을 덧붙였다.
“주영 에스퍼라면 B급 정신계네요. 텔레파시가 필요한 필드인가 봐요, 이번 게이트가.”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는지 홍 반장의 인상이 구겨졌다.
지금까지 나는 체력 훈련만 한 게 아니었다.
지난 6년간 활동해 온 에스퍼와 새로 들어온 에스퍼까지 그 목록을 모두 훑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방긋 웃어 보이자, 홍 반장은 내 말을 무시하고는 직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장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에스퍼 찾아와.”
홍 반장의 우렁찬 말에 직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곤란하다는 듯 답했다.
“그게…… 이미 리스트를 전부 뒤졌습니다만 A급 정신계 에스퍼 중에는 시간이 비는 인원이 없고 B급 역시 세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합니다.”
6년 동안 새로운 체계를 쌓아 왔다고 하더니 여전히 엉망이었다.
“에스퍼가 무쇠도 아니고 막 굴려 대니 이렇게 결원이 생겼을 때 문제가 발생하지.”
한심한 꼴에 혼잣말하는데, 제 험담은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는 홍 반장이 나를 돌아봤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나는 모른 척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돌렸다.
“그것보다 이제 제가 싫다고 해도 반장님께서는 저를 데려가야 할 것 같네요.”
당장 게이트로 가야 하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정신계 에스퍼를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이제 어쩌실래요?”
홍 반장은 내가 꼴 보기 싫으면서도 마땅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지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
직원은 급하다는 듯 시간을 확인하며 재촉했다.
“이제는 정말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홍 반장은 책상을 꽝 하고 발로 찼다.
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장서 걸었다.
“걸리적거렸다가는 3군으로 떨어질 줄 알아!”
그 말에 나는 쾌재를 부르며 그를 따라나섰다.
* * *
에스퍼들이 단체 운송 버스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나는 가장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게이트에 가까워질수록 게이트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자기장에 털이 쭈뼛 서는 거 같았다.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나는 한 손으로 왼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3분 뒤 정차합니다.
이어셋을 통해 운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전사의 예고대로 정확히 3분 뒤 게이트 통제선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일반인은 통제선이 그어진 곳까지만 들어갈 수 있기에 통제선 근처는 구경꾼과 기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앞사람을 따라 통제선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 게이트는 대학교 내에 있는 체육관 안에서 발생했다.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현장 팀 말로는 B급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현장에는 직원들과 외근 나온 가이드 몇 명뿐이었다.
인원 체크를 마친 에스퍼들은 입장을 기다리며 장비를 점검하는데, 나는 멍한 얼굴로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6년이 흘렀다지만, 이 몸에 빙의한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성시현의 몸으로 제집처럼 드나들던 게이트였다. 그런데도 굉장히 낯선 기분이 들었다.
불안감이나 두려움과는 달랐다. 오히려 흥분감에 온몸이 달싹이는 거 같았다.
게이트 입장 전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양하나가 된 이후로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오른다.
이 감정이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곧 입장하겠습니다.”
현장 직원의 말에 에스퍼들은 한두 명씩 입구 쪽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C급 정신계이기 때문에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대부분 차림새가 가벼웠다. 너무 단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리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B급 에스퍼 세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C급 에스퍼였다. 그나마 있는 B급마저도 3군 소속이었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현장 팀 말에 따르면 지금 들어갈 게이트는 B급이다.
서식 몬스터는 사람의 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음파를 이용하는 동물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음파를 차단해 줄 정신계 에스퍼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음파만 잘 차단하면 쉽게 클리어할 수 있어 난이도를 B급으로 측정한 듯하다.
그래도 그렇지 상당히 의아한 조합이었다.
동물형 몬스터들은 대부분 숨겨진 습성이 있고 근력이나 스피드의 평균값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 이 파티는 조합으로 보나 개개인의 실력으로 보나, 몬스터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뭐 하는 거야. 가만히 서서는…….”
고민하느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행렬을 놓쳤다.
내 옆에 서 있던 에스퍼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와 고민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직접 부딪힐 수밖에.
나는 6년 동안 바뀐 시스템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작동하는지 지켜봐 주겠다고 생각하며 당당히 안으로 입장했다.
* * *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각성 이후 내가 한 모든 일 앞에 최초 혹은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년에 걸쳐 수료해야 하는 아카데미를 6개월 만에 졸업하고, 어렵기로 소문난 센터의 입사 시험을 손쉽게 통과했다.
그때 내가 시험을 치르며 기록한 점수는 최고점인 동시에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입사 초부터 여러 게이트에 긴급으로 투입되곤 했다.
나중에 생긴 공격 1팀도 나를 중심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구조였으니 팀원들과 합을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6년간 바뀐 시스템을 확인해 보기에는 비교군이 부족하다는 거다.
6년 전의 나는 예외적인 존재였으니까.
“…….”
나는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일렬종대에 맞춰 걸었다.
게이트 안은 폐허가 된 도시를 재현한 듯 기울어진 전봇대와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들이 즐비해 있었다.
우리는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도심의 다 갈라진 도로를 따라 걸었다.
로드형 게이트는 어느 갈래의 길로 가든 자연히 게이트 주인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아주 기본적인 상식임에도 앞서 걷는 일행은 음산한 게이트 분위기에 압도된 듯 걸음이 더뎠다.
나는 그 모든 게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무리에서 벗어나 앞서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몸으로는 무리였고 그랬다가는 홍 반장에게 찍혀 3군으로 수직으로 하강할 수도 있었다.
별수 없이 나는 내 일에 집중했다.
일이라고 해도 별로 어렵진 않았다.
지정된 서너 명의 에스퍼에게 주기적으로 텔레파시를 발산해 외부의 음파를 막아 주면 될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느리긴 해도 별 탈 없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B급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음파를 사용하는 동물형은 얼굴이 크고 몸집이 작은 원숭이형 몬스터다.
그러나 중심부로 들어선 우리를 맞이한 건 원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몬스터였다.
덤프트럭만 한 크기의 몬스터는 비대한 주먹을 아스팔트 위에 내리꽂으며 음파를 발산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에스퍼들에게 보내는 텔레파시의 양을 늘려 음파를 막았다.
내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 이후에는 물리계 에스퍼들이 능력을 사용해 몬스터를 처치해야 했다.
분명 사전에 브리핑받은 내용은 그러했다. 하지만 몬스터에게 달려든 에스퍼는 그것의 주먹질 한 방에 날아갔다.
몬스터가 제 몸집만 한 주먹을 휘두를 때면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잠깐 한눈판 사이 훙,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 파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서둘러 몸을 낮춰 공격을 피하자 내 등 뒤에 있던 낡은 건물이 힘의 여파에 두 동강 났다.
몬스터는 영화 <킹콩>에 나오는 고릴라처럼 하늘을 보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낯선 행동에 당황한 에스퍼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지? 왜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거야.”
불안감으로 떨리는 목소리에 내가 답해 주었다.
“……소리 지르고 있는 겁니다.”
“뭐?”
텔레파시로 음파를 차단한 탓에 에스퍼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만, 저건 명백한 포효였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는 거예요.”
내 담담한 말을 끝으로 땅이 울렸다.
저만한 크기의 놈들이 떼거리로 움직이니 필드 지축이 흔들렸다.
여기 가만히 있다가는 순식간에 괴멸당할 것이 분명했다.
홍 반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어셋을 통해 명령을 전달했다.
-지금부터 앞만 보고 달린다! 게이트 보스만 정리하고 바로 빠져나가는 거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좋을 텐데.
이 인원으로는 일반 몬스터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조차 벅차 보였다.
여기서 힘을 더 뺐다가는 게이트 주인을 만나기도 전에 인원이 반토막 날 거였다.
홍 반장에 신호와 함께 모두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들과 발맞춰 속도를 냈다.
도로를 따라 쭉 달리다 보니 끝에 생뚱맞은 문이 하나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