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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화 (14/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화

“…….”

이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이트에서 우신을 살리고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14년 동안 나를 옭아맨 굴레를 우신이 대신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절대…… 절대로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내 뜻과는 별개로 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우신이 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제 본 차가운 얼굴의 우신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강우신은 성시현을 뭐라고 생각할까.”

입 밖으로 낼 생각 없던 질문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곤을 쳐다봤다.

이곤 역시 상상치도 못한 질문을 받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서둘러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손을 젓는데 이곤이 툭 내뱉듯 답했다.

“글쎄, 그전까지는 대단한 팬이었다지. 급여가 적은 센터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가 팬심 하나 때문이라고 할 만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성시현의 팬이었다고……?”

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리고 어디까지나 6년 전 이야기일 테지.”

“…….”

“강우신 가이드도 아니고, 그날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사람만 알겠지만…….”

이곤은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현 상황만 보면 강우신 가이드에게 성시현 에스퍼는 좋게 쳐줘도 배신자 정도가 아닐까.”

이곤의 평온한 표정 탓인지 현실감이 없었다.

“나라면 그럴 거 같아. 덕분에 성시현 에스퍼가 하던 센터의 개 노릇을 재각성한 강우신 가이드가 오롯이 떠맡게 된 거잖아. 성시현이 강우신을 살리고 혼자 죽는 바람에.”

* * *

이곤에게 지난 일을 들은 이후 한동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6년 전 그날로 돌아갔다.

애원하는 우신의 눈물진 얼굴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자 죽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의도와는 별개로 6년간 고통받은 사람이 있다면, 과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정이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생각이 샛길로 새는 바람에 러닝 머신 위에서 다리를 삐끗했다.

나는 넘어지기 전에 서둘러 러닝 머신을 종료했다.

숨이 차올라 크게 심호흡하는데 어수선한 생각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뛰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헬스장에 왔는데, 도리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는 걸어 둔 수건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이곤과의 대화 이후 확신이 생겼다.

덕분에 나아갈 방향 역시 정할 수 있었다.

서초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든 강우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든, 당장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1군에 들어가는 것.

이전과 달라진 센터의 시스템은 약육강식에 환장하는 에스퍼에게 낙원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제힘을 과시하길 원하는 그들에게 피라미드의 최고층인 1군은 꽤 매력적인 감투일 것이다.

그곳에 오르기까지 지독한 경쟁을 벌여야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상관없는 일.

설마 양하나의 몸으로 그런 수렁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맹세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다.

그 생각은 이 몸을 벗어나는 날까지 변함없을 거라 여겼는데, 이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에스퍼를 1~3군으로 분류한 것은 나처럼 책임을 짊어질 강한 에스퍼를 찾기 위함일 것이다.

그때까지의 공백을 강우신이 막도록 한 거고.

최악이었다.

나는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땀 흘린 몸 위로 물이 세차게 떨어졌다.

모든 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나는 지난 일을 회상했다.

1군에 들어가겠다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몸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에스퍼는 각성과 동시에 라이선스를 받게 되는데, 그 항목에는 등급뿐만 아니라 능력의 계열이 함께 등록된다.

크게 감각계, 정신계, 물리계, 치유계로 나뉘며 등급이 높을수록 여러 계열의 능력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S급 에스퍼에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비교적 낮은 등급의 에스퍼들은 평생 한 계열만을 특기처럼 발전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양하나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입사 2년 차 C등급의 정신계 에스퍼이다.

그녀는 텔레파시로 상대의 얕은 생각을 들여다보며 전투를 보조하곤 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카데미를 수료할 적 배운 기억이 있다.

나는 양하나의 기본 능력치를 알게 된 날부터 매일같이 사내 헬스장을 방문하여 기초 체력을 키우는 일에 집중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체력으로는 1군은커녕 게이트 안에서 뼈도 못 추릴 거였다.

물리계나 감각계 에스퍼가 판을 치는 헬스장에서 나는 사람들이 눈치를 주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곳에 살다시피 했다.

그 모습에 이곤은 정말 머리를 제대로 다친 거 같다며 놀리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쓸 수 있는 휴일을 모두 당겨 쓰며 체력 증진에 힘썼다.

센터 소속 에스퍼는 병가를 낸 게 아닌 이상 한 달에 채워야 하는 게이트 투입 횟수가 존재했다.

그래도 보통 등급이 낮거나 정신계 에스퍼 같은 비전투 계열은 그 횟수를 채우지 않아도 됐는데 양하나는 예외인 듯했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이 놀랍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투정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1군으로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편이 좋았다.

나는 샤워 부스에서 나온 후 옷을 갖춰 입었다.

얇은 검정색 목티 위에 점퍼까지 갖춰 입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헬스장을 빠져나왔다.

드디어 개고생한 성과를 볼 날이었다.

나는 곧장 현장 담당자가 있는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홍 반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사무실 한쪽에 나를 내버려 뒀다.

내일모레까지는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게이트 투입 횟수를 채워야 한다.

기한을 넘기면 페널티가 부과되기에 때문에 이미 수차례 경고를 받은 양하나는 바로 3군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전 경고 한 번을 받지 못했다.

홍 반장이 무슨 생각으로 이랬는지 뻔히 보이는 처사였다.

지금도 내가 지쳐 나가떨어지길 원하는 거 같아 미동도 없이 두 시간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부서 담당자가 눈치를 주고서야 홍 반장이 나를 불렀다.

그는 내 용건을 듣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C급 게이트 보조 인력으로 넣어 줄 테니, 그만 걸리적거리게 하고 가 봐.”

홍 반장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어지간히 내가 귀찮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홍 반장의 말대로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1군에 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답했다.

“B급 게이트 주요 인력으로 넣어 주세요.”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뭐?”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던 홍 반장은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올려다봤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최소 B급, 그 이상으로 보내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는 벌어진 입을 달싹이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가 죽고 싶어 환장한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뒈지고 싶은 거면 게이트 밖에서 뒈지라고.”

“…….”

모멸적인 말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자 그가 버럭 소리쳤다.

“누구한테 똥물을 튀기고 싶어서 안달이야!”

권한을 쥔 건 그였기에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똥물 안 튀길 테니 일단 넣어 주시면…….”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이만 가 봐. C급 게이트 뜨면 연락 갈 테니까.”

홍 반장은 지쳤다는 듯 손을 저어 보였다.

고개를 돌린 채 이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티를 팍팍 냈다.

지난 게이트에서도 그랬지만 유독 양하나에게 야박하게 구는 남자였다.

이렇게 곤란하게 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시위했어야 했는데.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게이트 투입 기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그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며 직원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홍 반장님!”

직원의 다급한 부름에 홍 반장은 의자에 걸쳐 둔 재킷을 챙겨 들며 답했다.

“어, 지금 나가.”

그는 의자를 빼고 일어나 나를 쓱 흘겨보았다.

“너도 이만 나가 보라고.”

홍 반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와 마주 선 직원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홍 반장님…… 그게 아니라 투입 예정이던 주영 에스퍼의 부상으로 결원이 생겼습니다.”

“뭐?”

직원의 말에 홍 반장의 낯빛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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