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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화 (13/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화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한 번 더 병가 냈다가는 2군에서 아예 퇴출당할 거 같고…….”

이건 사실이었다.

양하나의 방을 뒤지다가 그녀가 이미 수차례 임무 불이행 혹은 작전 지역 이탈 등의 사유로 여러 번의 경고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센터는 언제든 양하나를 내칠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병가라도 냈다가는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꼴이 될 거였다.

이곤은 그런 양하나의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 자세한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알아들은 눈치였다.

내 손목을 잡은 이곤의 손아귀에서 점차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손에서 팔목을 빼내며 말을 이었다.

“큰일 아니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좀 쉬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안심하라는 내 말에도 이곤은 대답 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제법 부담스러웠다.

양하나의 숙소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옷 몇 벌과 약봉지가 전부인 방은, 마치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준비해 놓은 사람의 방 같았다.

그 작은 방에서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바로 액자였다.

사진에는 지금보다 더 앳돼 보이는 양하나와 이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센터에 들어오기 전부터 친구였던 모양이다.

이곤의 묘한 눈빛에 죄책감이 일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널 걱정시키려고 이런 말을 한 게 아니야.”

“……그럼?”

이제 본론이었다.

나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

“새삼스럽게…… 물어봐.”

어떤 이유에서인지 센터에서 겉도는 양하나의 유일한 편, 이곤이 내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정보를 알고 싶은 사람이 있어.”

“네가? ……누군데.”

“강우신 가이드.”

당장 이곤에게 그의 이름을 꺼낸 건 도박에 가까웠다.

어제 그를 실제로 보고 마음이 조급해진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강우신과 양하나는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인 듯했다.

그러나 둘의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의 강우신에게 내 사정을 말해도 되는지, 그러니까…… 강우신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아봐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강우신에게 물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방법은 양하나를 잘 알고 있는 이곤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라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던진 물음이었는데 이곤은 생각보다 더 확실한 표정으로 확신을 주었다.

그는 이전보다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역시 두 사람 사이 무슨 일이 있었고, 이곤 역시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너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성시현 헌터에 관해 물었지?”

강우신에 관해 물었는데 뜬금없이 나온 내 이름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랬지.”

“뭐라도 기억난 거야?”

아까까지만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에 펄쩍 뛰던 놈이, 이번에는 무언가 기억해 낸 거냐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이곤은 의아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갑자기 강우신 가이드는 왜?”

“어제 복도에서 마주쳤거든.”

“강우신 가이드를?”

“응, 그런데 듣던 거랑은 달라서…… 원래 더 사근사근한 사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내 말에 이곤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픽 웃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거야. 사근사근하다는 말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인데.”

“…….”

이곤은 나를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번에 네가 물어봤었지? 서초 게이트 사고.”

막 양하나의 몸에 빙의했을 때, 6년이나 지난 것도 모르고 그런 질문을 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곤은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네가 대뜸 물어본 게 걸려서 얼마 전에 자료실을 다녀왔거든. 그때 자료 좀 찾아보려고. 물론 내가 볼 수 있는 자료는 한정적이지만.”

한정적이라 해도 아마 내가 봤던 것들에 비할 순 없을 거다.

강우신에 대해서만 들을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그래서?”

내가 재촉하자 이곤은 진정하라며 말을 이었다.

“벌써 육 년 전 일이지만 S급 헌터가 죽은 큰 사고여서, 나도 기억나는 게 있거든.”

이곤은 지난 일을 회상하듯 팔짱을 꼈다.

“이상 게이트라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만했는데도 한 사람의 죽음과 다른 한 사람의 각성으로 초점이 완전히 다른 데로 향했지.”

“그 두 사람이.”

“그래, 네가 궁금해하는 두 사람. 성시현 헌터와 강우신 가이드야.”

“…….”

“강우신 가이드는 목숨을 겨우 건졌지만 성시현 헌터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어.”

이곤의 말에 어제 일처럼 선명한 그 날의 사건이 떠올랐다.

“……거기까지는 기억나.”

“문제는 거기서부터지. 혼자서 하루에도 몇 개씩 게이트를 주파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니까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졌어.”

“…….”

“게이트를 감당하지 못하고 번번이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해 도시 하나가 괴멸되기까지 했지. 덕분에 그 이후 많은 게 바뀌었어. 우리가 곧 치를 심사도 그 이후 도입된 거잖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새삼스러웠다.

내가 죽고 난 이후의 세상을 알게 될 줄 몰랐으니까.

나는 신을 믿지 않았고, 딱히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죽고 나면 남은 세상은 산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 내 죽음으로 인해 불행해졌다고 욕을 한다면 그것 역시 나의 몫이라 생각했다.

미동 없이 그의 말에 집중하는데, 이곤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가만 보면 6년 전에 어떻게 센터가 멀쩡히 돌아갔는지 싶어. 모든 시스템이 S급 에스퍼 한 명에게 의지하는 비정상적인 구조였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렇게 된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무심하게 툭 내뱉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내가 아무런 반응 없자 이곤이 씩 웃었다.

“어때, 질문에 대한 답이 좀 됐어?”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곤에게 다시 내 질문을 상기시키려고 입을 여는데, 이곤이 한발 빨랐다.

그는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강우신 가이드에 관해 물었었지.”

이곤은 오래전 기억을 더듬듯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사건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서초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강우신 가이드가 아마 가슴에 큰 내상을 입었다지?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송치되고 법정에 서기까지…….”

“잠깐만, 어디에 서?”

“법정.”

“왜?”

내 물음에 이곤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야 성시현 에스퍼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으니까.”

황당함에 입이 벌어졌다.

내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신이 졌다는 말에 머리가 핑 돌았다.

“들어 보니까 성시현 에스퍼의 가이드라고 거짓말했었다는데, 그게 꼬투리 잡혀서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됐다나 봐. S급 에스퍼의 죽음은 국가적 손실이니까 누구 하나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했거든.”

“그런 말도 안 되는.”

“맞아. 참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건 여기서부터야.”

이곤은 흥미로운 걸 이야기하듯 허리를 기울여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강우신 가이드, 충분히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정신적 충격이 컸는지 센터의 뜻대로 움직여 줬대. 센터는 몸 상태가 엉망인 사람을 억지로 차에 태워 법정으로 끌고 가려 했지. 그런데 차 안에서 강우신이 고열과 함께 쓰러지더니.”

이곤은 포인트를 짚어 주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딱, 재각성한 거지. 정말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어떻게 그 타이밍에.”

“그럼 그 이후로는…….”

“그래, S급 재각성자가 된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어. 한국 최초의 S급 가이드이기도 했고 강우신이 책임을 진다 한들 이미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가벼운 벌금형으로 마무리됐어.”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라.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강우신이 아직까지 센터에 남아 있는 게 제 의지일까.

의심이 자라났다.

“이건 나도 기억나는 건데, 그때 강우신 가이드가 욕을 무지막지하게 먹었지. 나라의 구원자를 잡아 먹은 재앙이라고.”

“…….”

“우습지만, 그 재앙 덕에 가이드 효율이 지난 6년 사이 기준치를 한참 웃돌고 있어. 게이트를 전전하던 성시현이 사라지니까 이제는 그 자리를…….”

“강우신이 대신하고 있네.”

내 나직한 목소리에 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결국 누군가 하나는 희생해야 지금처럼 ‘평화롭게’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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