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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화 (1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화

내 반응이 그의 예상과 달랐는지 희민은 눈을 끔벅이다 도로 몸을 똑바로 세웠다.

“답하기 싫으면 됐습니다.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슬슬 다음 가이딩을 하러 가 봐야 해서요. 질문 끝났으면 일이나 할까요.”

희민은 양손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희멀건 손끝을 보다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미리 말해 두지 않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무슨 소문을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박희민 가이드님도 제 가이딩이 힘든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 단호함에 희민은 한쪽 눈썹을 움찔거렸다.

“저도 강우신 가이드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센터 간판인데. 제 앞에서 다른 가이드 이야기만 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하는 겁니까?”

내 말을 오해했는지 희민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나는 손을 저으며 답했다.

“정보를 준 답례로 드리는 말이니 괜한 힘 빼지 말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희민이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짓궂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더 해 달라고 조르지나 마세요.”

자신만만한 태도가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물론 이런 시건방진 얼굴을 하진 않았지만.

요 며칠 강우신을 만날 방법만 모색했더니 그의 얼굴이 희민의 얼굴 위로 겹쳐 보였다.

“나 때문에 그러지 마요, 제발.”

하필 생각나도 왜 그 순간인지.

나는 스멀스멀 머릿속을 잠식해 오는 강우신을 떨쳐 내기 위해 희민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어차피 가이딩해 보면 알아서 사색이 돼 떨어져 나갈 테니 괜히 힘 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맞잡은 손을 타고 희민의 에너지가 흘러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비실비실하게 생긴 것에 비해 에너지가 힘차고 푸르렀다.

그 미묘한 감각에 눈을 찡그리는데 그의 손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힌 듯했다.

구역질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표정을 확인한 순간, 놀라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꿋꿋이 가이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하게 에너지를 흘려 보내고 있었다.

나는 놀라 그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쳐 냈다.

희민은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뭐 하는 짓입니까.”

얼마나 필사적으로 가이딩을 했는지 내 손마디가 저릿저릿했다.

희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푹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리한 가이딩은 탈수 증세를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심장 마비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미련한 행동이었다.

나는 혀를 차고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기울였다.

“괜찮습니까? 의무진을 불러야 할까요.”

내 물음에 겨우 숨소리가 잠잠해진 희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한 순간 몸이 굳었다.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은 무리한 가이딩을 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희민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다 갈라진 목소리로 운을 뗐다.

“죽이는데요? 이게 뭡니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눈이 맛 가 있었다.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내게 닿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나는 사뿐히 뒤로 물러나 그를 피했다.

미친놈인가?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그대로 가이딩실 입구에 서 있는 담당자를 불렀다.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박희민에게 들은 강우신은 내가 알던 이와 너무 달랐다.

6년의 공백을 모두 메울 수는 없어도 손에 쥐고 있는 키가 어느 정도 있어야 협상을 시도해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강우신이 복귀하기까지 남은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최대한 정보를 찾아내야 했다.

그래, 분명 그럴 생각이었다.

변수를 확인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날 이후 희민은 계속해서 가이딩하게 해 달라며 나를 쫓아다녔다.

그런 에너지는 어떤 에스퍼에게도 느끼지 못했다며, 말초 신경을 자극해 하마터면 갈 뻔했다는 성희롱도 서슴지 않았다.

B급 가이드처럼 겁에 질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편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변태 새끼한테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린 기분이었다.

하나, 나는 오랜 경험으로 이런 놈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전담 가이드 없이 14년을 지내다 보니 별의별 추파를 다 겪어 봤다.

이런 놈들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관심도 주면 안 된다.

화를 내면 화를 내는 것을 관심으로 여길 미친놈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그를 피해 다니는 데 열중했다.

덕분에 정보를 모으기는커녕 쥐 죽은 듯 조용히 다녀야 했다.

삼사 일 정도만 견디면 이 고생도 끝날 거라 예상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고 주위에 뭐라고 말하고 다녔는지, 기어코 희민은 저 같은 것들을 꼬이게 만들었다.

“…….”

식당 초입에 들어서는 날 막아선 건 가이드 무리였다.

주로 양하나를 노골적으로 괴롭히던 건 에스퍼지 가이드가 아니었다.

당연했다. 가이드가 아무리 에스퍼를 우습게 본다 한들 에스퍼가 신체적으로 훨씬 월등했다.

그러니 만만하게 취급하긴 해도 이렇게 대놓고 앞을 막아서진 않았는데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희민 형한테 다 들었어요. 그 형이 내기하면 절대 지는 법이 없는데. 되게 재밌는 몸을 가지고 있다면서요.”

벌써 식당 안쪽에 있는 에스퍼들의 시선이 내게 닿아 있었다.

요 며칠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얼마나 수그리고 살았는데, 이 새까맣게 어린놈들 때문에 일을 망칠 수 없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늘 하던 대로 그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러자 가장 끝에 있던 가이드가 슬며시 발을 걸었다.

나는 넘어지기 직전에 반사적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몸이 조금만 우둔했어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꼴사납게 넘어져 웃음거리가 됐을 거였다.

“완전 쌩까네. C급 정신계라면서요. 매년 겨우겨우 퇴출 위기를 넘긴다던데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사람을 개무시하세요?”

“…….”

등 뒤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났다. 이 상황이 즐거운지 웃음이 높고 날카로웠다.

나는 말없이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양하나의 몸으로 산 지 며칠이나 됐더라. 고작 일주일 정도 지났을 거다.

고작 일주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유도 알 수 없는 멸시와 괴롭힘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처 가늠해 보지 못했다. 이런 적대감 속에 혼자 놓여 있었을 양하나를 말이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꿈쩍도 하지 않자 기세등등해진 가이드가 말을 이었다.

“또 무시하고 가시려고요?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요. 가이딩하자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성시현으로 살 때만 해도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것들이 있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게이트를 클리어해 내고 나면, 누구 한 명은 더 사람답게 살게 될 거라는 믿음.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4년간 그 고생을 하며 지킨 게 이딴 새끼들이란 생각이 들자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가이드가 내 손을 잡으려는 순간, 도리어 내가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반응할 줄 몰랐는지 가이드는 놀란 듯 굳었다.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에스퍼가 가이드를 공격하는 건 징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양하나’라면 더더욱 말이다.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손에 잡힌 가이드의 손목을 부러트리려는 순간, 명랑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양하나 헌터님!”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공포물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

미친.

멀리서 나를 발견한 희민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상황을 가장하고 싶은 듯했지만, 내가 작정하고 숨은 것처럼 그 역시 나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센터를 뒤지고 다녔을 거다.

“어디 계셨어요? 제가 되게 많이 찾았는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발랄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머리끝까지 올라왔던 화가 차게 식었다.

갖은 스트레스로 분노에 삼켜지는 동안 일을 이렇게 만든 원흉은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손아귀에 힘이 풀리자 가이드는 서둘러 손을 빼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겁만 줬는데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이라고 오해할 얼굴이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한데 묶어 썩은 정신머리를 모조리 뜯어고쳐 주고 싶지만, 나는 주변을 살폈다.

싸움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에스퍼들이 본능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수모를 견뎠는데 화를 참지 못해 일을 다 망칠 뻔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게 되뇌었다.

‘동요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 하던 대로.’

“양하나 헌터님, 오늘은 저랑 같이 밥을……!”

어느덧 희민이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주저 없이 몸을 틀었다.

“어?”

그리고 희민이 어떤 행동을 보이기 전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내 모습에 희민은 본능적으로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같이 가요, 헌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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