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화
B급 가이드와 대화한 이후 강우신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6년 전 기사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조작된 듯했고, 정보실에서도 그 당시 일은 기밀문서로 분류돼 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자니, 하나같이 양하나와는 말을 섞지 않았다.
이곤을 찾아갈까 했지만, 양하나를 잘 아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을 듯했다.
가까운 사이라면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내가 양하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쉬이 눈치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골치 아픈 경우의 수를 모두 빼고 나자 남은 것은 B급 가이드가 말한 ‘강우신’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6년 전 그 현장에 함께 있었으며 어떻게 보면 내게 목숨을 빚진 사람.
잘하면 영혼이 바뀌게 된 이유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이 정리된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강우신 가이드의 스케줄을 압니까?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내가 흥미를 보이자 앳된 얼굴의 희민이 빙그레 웃었다.
“궁금해요? 그럼 오고 가는 게 있어야죠.”
* * *
지난밤 B급 가이드와의 가이딩 이후, 나는 양하나의 이전 가이딩 기록을 확인했다.
양하나는 센터에 등록된 대부분의 가이드와 무리 없는 매칭률과 효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각인한 가이드는 없지만, 정신계 에스퍼인 양하나는 가이딩 적합도가 높아 웬만한 B급, C급 가이드의 가이딩만으로도 피로가 쉽게 풀리는 듯했다.
물론 가이딩을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의도적으로 가이딩을 누락시키는 문제를 빼면 가이딩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B급 가이드가 가이딩을 실패한 건, 단연 내가 빙의한 탓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 영혼이 양하나의 신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이나 힘은 무엇 하나 따라온 게 없는데, 참 골치 아픈 체질만 옮겨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내가 양하나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날 가이딩하는 게 B급이든 A급이든…… 설령 S급이라고 해도 실패할 거란 말이었다.
내가 성시현의 몸으로 14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몸이 바뀌었는데도 제대로 된 가이딩을 못 받는다니 참으로 저주 같은 일이었다.
그 생각을 끝으로 앞서 걸어가는 희민을 힐끔 살폈다.
결과가 뻔한 일임에도 내가 그를 따라가는 건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강우신.’
그 녀석과 만나기 위해서다.
자신만만한 이 A급 가이드도 격차를 느끼고는 사색이 될 게 뻔했다.
다만 B급 가이드처럼 겁에 질려 달아나지만 않았으면 했다.
나는 희민을 따라 가이딩실로 들어왔다.
며칠 전처럼 의자에 앉으려는데, 희민이 입을 열었다.
“아니요, 의자 말고 소파에 앉아 주실래요?”
나는 상대와 나란히 앉아야 하는 크림색 소파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손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편이라서요. 저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집중도가 오릅니다.”
희민이 능구렁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내가 곤란한 얼굴을 하자 그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헌터님 질문에 성실히 답할 테니 양손만 주세요. 2차 가이딩은 제 쪽에서도 사양입니다.”
희민은 제 양손을 들어 보였다.
희멀건 얼굴로 해가 없는 척하지만, 어린놈의 시커먼 속이 훤했다.
가이딩실까지 따라 들어온 마당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나갈 수도 없고 이번을 놓치면 또 언제 질문할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생각 끝에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입을 열었다.
“좋아요.”
희민은 아싸, 하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단, 가이딩하기 전에 내 질문에 답부터 해 줘요.”
희민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약속이니까. 좋아요.”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자 나는 주저 없이 본론부터 물었다.
“아까 강우신 가이드가 지금 센터에 없다고 했는데, 외근 나갔다는 말인가요?”
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아무래도 바쁜 몸이니까요.”
“언제 돌아오는지 알고 있습니까?”
희민은 제 아래턱을 만지며 뭔가를 가늠하더니 답했다.
“지방으로 원정을 간 거라, 아마 빠르면 일주일 안으로 오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온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희민은 그렇게 말하곤 웃어 보였다.
나는 희민의 대답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게 6년의 공백이 있다 해도 그렇지, 이제는 하다 하다 센터 소속의 C급 가이드가 지방으로 원정을 간다니.
죽기 직전, 내 부재로 센터의 인력이 일순 소실돼 체계가 엉망이 될 거라는 우려를 했었다.
그러나 양하나로 깨어난 첫날 본 통계에 의하면 S급 에스퍼의 수도 2배 이상 늘고 S급 가이드도 등장했다.
그런 상황에 C급 가이드가 바빠 봤자 얼마나 바쁘다고 만나기 어렵다니.
내가 말없이 희민의 답변을 곱씹고 있자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질문은 이게 끝인가요?”
“아니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요.”
나는 서둘러 답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마지막 질문을 뱉었다.
나머지 의문은 직접 강우신은 만나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그쪽은 강우신 가이드 스케줄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공용 가이드 스케줄표에는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안 쓰여 있던데.”
강우신을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가이드 스케줄을 확인했었다.
스케줄표에는 A급부터 D급에 이르는 모든 가이드의 스케줄이 간략하게라도 다 쓰여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명, 강우신의 스케줄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의뭉스러운 얼굴을 하자 희민이 빵 터졌다.
“되게 똑똑한 척하면서 은근 얼빵하네, 진짜.”
희민이 비웃듯 말했다. 삐딱한 태도에 표정을 굳히자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표는 급하게 가이딩이 필요한 에스퍼에게 직통으로 가이드를 붙이려고 공개한 거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희민은 그럼 답이 나와 있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강우신 가이드는 일정이 빈다 한들 아무나 못 부르는데 뭐 하러 스케줄표에 적어 놓습니까? 물론 스케줄이 비는 날이 있을까 싶지만.”
“스케줄이 비어도 못 부른다니, 왜죠?”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겁니까?”
희민은 정말 멍청한 질문을 듣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이곤에게 성시현에 관해 물었을 때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불길한 감각에 마음이 울렁였다.
희민은 흥미롭다는 듯 볼을 긁적이다 되물었다.
“혹시 말이죠…… 강우신 가이드가 누군지 알고 있긴 한 겁니까?”
당연한 질문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6년 전 봄에 공격 1팀으로 입사한 C급 가이드잖아요.”
내 말이 뭐가 그리 웃긴지 희민은 배꼽을 잡고 소파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콘셉트입니까? 아까부터 당연한 질문만 해 대고, 꼭 6년 전에 시간이 멈춘 사람 같네요.”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 정확히 말해요.”
“뭘 그렇게 미간에 힘을 줍니까. 양하나 헌터님 말대로, 강우신 가이드님이 C급 가이드였을 때가 있었죠. 딱 6년 전에요.”
“C급 가이드였을 때가 있다니, 그럼…….”
내 물음에 희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를 지우고 답했다.
“네, 6년 전 서초 게이트에서 살아 나오신 이후 재각성하셨잖아요.”
“…….”
“S급으로.”
강우신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대화의 포인트가 어딘가 하나씩 엇나가는 기분이긴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거기서 오는 괴리감일 거라 가벼이 넘겼는데 아니었다.
6년 전 그날, 서초 게이트에서 나는 죽고 강우신은 S급 가이드로 재각성했다.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희민은 내 심각한 표정이 흥미로웠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이어 갔다.
“재각성자가 드문 건 아니지만, S급으로 재각성이라니. 완전 인생 역전인 거죠. 당연하지만 각성 이후로는 한국 유일의 S급 가이드라고 아주 고공 행진하고 팬클럽까지 생겼잖아요.”
“…….”
“아, 물론 S급이라고 떠받드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압니다. 작년부터는 센터의 가이드 대표로 해외 파견이나 대외 활동에 집중하며 위험 구역은 멀리해서 능력이 아깝다는 말도 많고 뭐, 복잡합니다.”
복잡하다며 안타까운 척 말하지만, 희민의 표정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건조했다.
나는 희민이 묘사하는 강우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의 입을 통해 듣는 강우신은 낯설었다.
S급으로 각성했다는 사실을 빼더라도 내가 아는 우신은 센터의 마스코트를 자처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날 일만 해도 그랬다.
우신은 A급 게이트에 자처해 들어갔다.
들어가야 할 이유도 책임도 없는데 가이드로서의 사명감 하나 때문에 말이다.
제 목숨을 걸 정도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가이드는 드물었다.
희민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뭐가 됐든 유명인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인데, 그런 유명인을 모르다니.”
“…….”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고. 그럼 뭘까요?”
희민이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강우신 가이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애타게 찾고 계셨을까, 양하나 헌터님은.”
나란히 앉아 있는 소파가 한쪽으로 힘이 들어가며 자연히 내 몸도 뒤로 기울었다.
그가 부쩍 가깝게 다가오는 게 불편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