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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화 (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화

양하나에 대한 일련의 사실들은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게 있었는데, 그것 역시 이제 확인할 수 있을 듯했다.

똑똑.

약속을 잡고 온 거지만 예의상 노크를 했다.

당연히 들려와야 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그냥 문을 벌컥 열었다.

안에는 노랗게 머리를 탈색한 가이드가 다리를 꼬고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날 본체만체하는 그의 앞에 다가가 의자에 앉자 그제야 힐끗 쳐다보고는 핸드폰을 내렸다.

“늦었네요.”

“…….”

내가 할 말이었다.

어떤 에스퍼가 가이딩을 사흘이나 기다리는지.

내가 아무런 대답 없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자 그는 뻘쭘한 듯 쓱 손을 내밀었다.

“그쪽이 늦은 거니 10분 차감하고 가이딩할 겁니다. 원래 저한테 가이딩받기 어려운 거 아시죠?”

명찰을 보니 B급 가이드였다.

그는 묻지도 않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본인이 얼마나 유능한 가이드고 얼마나 대단한 에스퍼를 가이딩해 봤는지, 묻지도 않은 말들이 속사포처럼 지나갔다.

나는 입 다물고 가이딩이나 시작하라는 의미로 그에게 손을 뻗는데, 그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강우신만 아니었어도 내 입지가 더 높았을 텐데 말이죠.”

손이 허공에 우뚝 멈췄다.

“강우신?”

내 물음에 가이드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꼴에 강우신 이야기에는 반응하는 겁니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C급 가이드 때문에 B급 가이드의 입지가 줄어들 일이 뭐가 있지.

내가 고심하는 얼굴을 하자 그는 빈정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쪽이 강우신 그 자식한테 가이딩받을 일은 추호도 없을 테니, 꿈 깨시죠.”

여전히 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강우신이 살아 있고 아직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만큼 서초 게이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란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지금 강우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묻자, B급 가이드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째려봤다.

“이러니까 취급이 그렇지. 주제 파악을 좀 하는 게 어떱니까.”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눈을 마주하던 가이드는 내 눈동자에서 어떤 분노나 수치심도 확인할 수 없자, 민망한 듯 혼잣말했다.

“이곤 에스퍼한테 들이대더니 그걸로는 모자란가. 하긴 봉을 잡을 거면 A급보다는 S급이 낫지.”

그 말에 미묘한 표정으로 가이드를 바라보자 그는 내 손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말도 없이 가이딩을 시작했다.

“…….”

나는 숨을 죽이고 몸속으로 거칠게 들어오는 에너지를 읽었다.

양하나에 대해 확인하고 싶은 마지막 한 가지는 양하나의 몸으로 가이드의 에너지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였다.

성시현의 몸으로는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을 수 없었으니…….

만약 S급의 성시현의 영혼이 양하나의 몸에 빙의한 게 맞는다면, 내 영혼이 양하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곧 가이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뭐야, 이게.”

내 몸속 에너지를 읽어 나가던 가이드는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겁에 질려서는 급히 손을 뗐다.

“당신 도대체 몸에 무슨……!”

가이드는 말을 하다 말고 참을 수 없다는 듯 헛구역질을 했다.

보아하니, 마지막 나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예’인 듯했다.

가이드는 테이블 아래서 한참 숨이 넘어갈 듯 기침했다.

나는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인 내 손을 내려다볼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입 주변이 침으로 범벅된 추레한 몰골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눈을 피하기는커녕 관찰하듯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무감한 시선에 도리어 가이드의 눈빛이 흔들렸다.

가이딩이 실패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기에 그를 추궁할 마음도, 무례에 대한 사과를 바랄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가 시답지 않은 에너지를 흘려 보낸 탓에 불쾌한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걸 털어 내기 위해 손을 위로 들어 올린 순간, B급 가이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이었으나 그에게는 위협적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가이딩 전까지 보인 기고만장한 모습은 어디 가고 사색이 돼 있었다.

따돌림당하는 에스퍼라며 무시하더니 이제 와 주제 파악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잇새로 웃음이 샜다.

가이드는 그제야 제가 한참 어린 에스퍼에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는 소매로 입가를 쓱 닦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능력 강화제 복용은 마약 흡입으로 간주하는 걸 알고 있겠죠. 이 일에 관해서는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내 안을 들여다보고 혼자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지 제 분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부니 보고니 하는 것은 성시현에게 협박은커녕 간지럽지도 않은 단어들이지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양하나는 달랐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한발 물러나 그의 기분을 맞춰 줘야 했다.

판단은 분명 그러했는데.

나는 턱을 괴고 그를 올려다봤다.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부족한 걸 깨닫지 못하고 남 탓하는 건 참 불행한 일입니다.”

“…….”

“그렇죠?”

말끝에 빙긋 웃음을 지어 주었다.

가이드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가이딩실 문으로 몸을 틀었다.

그는 사춘기 학생처럼 문을 쾅 닫고는 자리를 피했다.

척 봐도 입이 가벼워 보이는 놈인데, 괜한 일을 한 게 아닌지 잠깐 걱정했지만 역시 꼬리를 내리고만 있는 건 적성에 안 맞았다.

* * *

예상대로, 가이딩실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센터 전체에 소문이 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상부에서 나를 찾는 일은 없었다.

B급 가이드의 바람과는 달리 소문은 다른 방향으로 흐른 듯했다.

나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양하나’의 가이딩을 하다 구토까지 한 가이드라는 소문이 더 널리 퍼져 조롱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건 다름이 아닌 이런 놈들 때문이었다.

“시간 좀 내 줄래요?”

“…….”

센터로 출근하기 무섭게 처음 보는 가이드가 냅다 이렇게 물었다.

앳된 얼굴의 곱슬머리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뒤에서 수군덕거리는 그의 일행이 더 눈에 들어왔다.

묻지 않아도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소문은 덩치를 키워 B급 가이드가 C급 에스퍼를 가이딩하다가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덕분에 도장 깨기를 하듯 매시간 가이드가 날 찾아왔다.

좀처럼 혼자 있을 시간을 안 주는 탓에 6년 전 게이트 사건을 조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센터에 일찍 방문하면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아침잠까지 줄여 가면서 왔는데, 귀신같이 나를 찾아냈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가이딩이라면 괜찮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그를 지나치려 하자 상대방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렇게 방어적으로 굴 필요 없어요. 이거 보이죠?”

그는 급히 호주머니에서 제 명찰을 꺼내 보였다.

[A급 가이드, 박희민]

내가 그 명찰을 확인하자 그는 기고만장해진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어중이떠중이들이랑은 다르단 말이죠. 듣자 하니 그쪽을 찾아간 가이드들이 하나같이 1차 진입을 실패한 덕에 당신이 가이딩 불능이라는 말이 돌던데.”

“…….”

“말도 안 되는 소리죠. S급도 아니고 C급이 가이딩 불능일 리 없잖아요. 저는 누구처럼 소문을 믿고 온 게 아니라, 저기.”

그는 턱짓으로 제 뒤편의 일행을 가리켰다.

그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돈내기를 해서 말이죠. 금방 끝날 테니 저랑 한 번 하죠.”

제 목표 의식에 취해 사람을 연구 대상 정도로 보는 이였다.

설마 C급 에스퍼가 돼서도 이런 취급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헛웃음이 났다.

“어? 지금 웃었죠? 그래요, 서로 상부상조하자고요. 작년에 테스트한 기록을 보니까 우리 매칭률 꽤 높던데, 기분 끝내줄 거예요.”

내 엷은 미소에 뭔가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내 어깨에 얹었다.

불쾌한 감각에 그의 손을 강하게 쳐 냈다.

마음 같아서는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이 몸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 손짓에 희민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를 쏘아보고는 지나쳤다.

“이렇게 피해 다니면 소문만 더 부풀려질 겁니다!”

“…….”

“그 소문이 정말이었나 보네요. 우신 가이드님 정도 돼야 상대해 줄 거라더니. 당분간 센터에 없는 것도 모르고.”

희민은 다 들으라는 듯 혼잣말했다.

조롱할 목적으로 말한 모양이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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