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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화 (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화

6년이나 흘렀다는 이곤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센터는 변한 게 없었다.

내가 아침에 방문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정확히는 6년 전 아침 말이다.

나는 로비 중앙에 서서 거대한 스크린에 뜬 날짜와 시간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확실히 이곤의 말처럼 그날로부터 정말 6년이 지나 있었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들 역시 전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스크린 한구석에 한국이 보유한 에스퍼와 가이드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6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S급 에스퍼는 나를 포함해 다섯도 안 됐는데, 지금은 S급 에스퍼 옆으로 열둘이라는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외관만 그대로지 확실히 뭔가 변하긴 변해 있었다.

시선을 돌리려는데, 가이드 현황판이 눈에 들어왔다.

S급 가이드 옆으로 숫자 일이 떠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반인과 확실히 구분되는 에스퍼에 비해 가이드는 에스퍼가 없으면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는 자신이 가이드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았고, 에스퍼에 비해 그 수도 확연히 적었다.

높은 등급의 가이드가 등장하는 건 그만큼 드문 일이었다.

나 역시 S급 가이드를 만난 건 용병으로 한국에 잠깐 방문했던 미국계 한국인 가이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그와의 매칭률은 꽝이었지만.

“……한 명도 없었는데 6년 사이에 S급 각성자가 나온 건가.”

나지막이 혼잣말하는데 누군가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다.

“양하나 헌터님.”

언제 왔는지 바로 옆에 선 직원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양하나 헌터님 아니십니까?”

아, 몇 번이나 나를 부른 모양이었다.

그 이름이 익숙지 않아 의도치 않게 말을 씹은 꼴이 됐다.

“맞습니다.”

내가 긍정하자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나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이딩실로 들어갔다.

좁은 방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늘 특실만 사용했기에 일반 가이딩실 방문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의자에 앉자 직원은 선 자리에서 말을 이었다.

“현재 모든 가이드가 업무를 보는 중이라 여기서 조금만 대기해 주세요. 곧 오실 겁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제야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우선 가이딩을 받고 행동하기로 했다.

내 몸이라면 모를까 지금 양하나의 몸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곧이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몰려드는 피로감에 눈을 감았다.

오면 알아서 깨우겠거니 생각하며 얕은 잠이 들었다.

곧은 개뿔.

올라오는 한기에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이미 창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가이딩실에 들어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가이드는커녕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이다.

바짝 오른 열감에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아, 나는 급한 대로 기계 가이딩실로 몸을 옮겼다.

S급이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설마 C급 에스퍼의 몸으로도 약과 기계로 응급 처치를 하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온몸이 부서질 거 같았다.

기계 사용이 익숙한 덕에 어렵지 않게 기계 가이딩을 마치고, 카드 키에 적힌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한 뒤로는 새벽 내내 후유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 돼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더 자고 싶었지만, 휴대폰이 계속 울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미친 거야? 장비 반납도 안 하고. 한 달 정지 처분받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뛰어와.]

그제야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둔 칼집이 보였다.

고작 저거 하나 반납이 늦었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건가.

헛웃음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마저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엉망인 상태로 일어나 거울을 봤다. 검은 머리칼이 엉망으로 엉킨 양하나가 보였다.

지금은 성시현이 아니기에 멋대로 행동할 수 없다.

* * *

센터로 돌아가 장비를 반납했다.

문자를 보낸 이는 예상대로 내 뺨을 후려친 홍 반장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굳이 모두가 보는 앞에 날 세워 두고 한참 잔소리를 이어 갔다.

아직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자, 홍 반장은 한 것도 없는 식충이 주제에 불쌍한 척은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게이트에서처럼 누구도 끼어드는 일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 여자, 양하나가 깨지는 게 일상인 듯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평온해 보였다.

그 이후, 엉망인 몸을 이끌고 지난 6년의 정보를 찾으러 정보실에 갔지만, 대부분 등급 제한에 걸려 확인할 수가 없었다.

딱 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이곤의 말처럼 내가 6년 전 그 A급 서초 게이트에서 죽었다는 사실뿐이었다.

* * *

뉴스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은 단편적이었다.

센터에서 보도한 것들 위주였기에 중요한 정보는 모두 잘린 보여 주기식이 전부였다. 뭔가 이상했다.

단지 나 말고 더 죽은 사람은 없는지, 이상 게이트가 맞는지 확인해 보려는 거였는데.

‘왜 서초 게이트 자료를 열람할 수 없게 해 놨지? 애초에 등급 제한 시스템은 언제부터 생긴 건지…….’

이 몸으로 고작 삼 일을 지냈을 뿐인데, S급일 때는 느끼지 못한 부당함이 너무 많았다.

나는 가만히 식판을 내려다봤다.

단체 식당 이용 역시 처음이었다.

각성한 순간부터 S급 에스퍼라는 이유로 항상 특별 혹은 특수 대우를 받았다.

훈련이 아니라면 다른 에스퍼와는 부딪칠 일도 거의 없었다.

원래라면 이런 건 평생 경험할 일이 없어야 하는데 양하나 덕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걸 참 많이 경험하고 있었다.

그 순간 뒤통수로 무언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지만, 알면서도 몸이 무거워 피할 수 없었다.

툭.

그것은 내 뒤통수에 힘없이 부딪히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젓가락질을 멈추고 시선을 내려 날 향해 날아온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반찬으로 나온 소시지가 발밑까지 굴러왔다.

성시현으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

이것 역시 그중 하나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에스퍼 한 무더기가 모여 앉아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낄낄,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 몸으로 있는 사흘 동안 6년 전 게이트에 관한 것은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한 게 없는데 양하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첫 번째, 양하나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 노골적인 괴롭힘과 함께 말이다.

내 뺨을 후려치고 한참을 보란 듯이 세워 뒀던 홍 반장이나 가이딩을 받기 위해 다섯 시간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던 것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

양하나가 센터에서 겉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뒤에 뭉쳐 앉은 에스퍼들의 비웃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떤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괴롭힘 자체는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각성하여 일반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을 가지게 된 에스퍼 중에는 그것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등급이 낮거나 비전투 계열의 에스퍼들은 항상 먹이 사슬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음식이 남아 있는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양하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놀란 두 번째 사실은 그녀가 이런 취급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음식을 버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일부러 치고 갔다. 덕분에 음식물이 내 몸쪽으로 쏟아져 셔츠 끝단이 붉게 물들었다.

“아 씨, 뭐야.”

고개를 들자, 키가 제법 큰 가이드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나와 부딪쳤다는 사실이 불쾌하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털어 내고는 지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에스퍼들 사이의 권력, 힘 다툼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가이드에게까지 무시당하는 에스퍼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괴롭힘이 빠르게 전염되어 양하나는 에스퍼뿐만 아니라 가이드에게도 표적이 된 듯했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와 세면대에 셔츠 끝자락을 가져가 빨았다.

벌써 스며들었는지 얼룩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살짝 들린 셔츠 틈새로 허리춤이 보였다. 시퍼런 색의 멍이 선명했다.

셔츠를 세탁하다 말고, 밑단을 잡아 살짝 들추었다. 맨살이 드러나자 멍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옷을 갈아입으며 몇 번이고 본 몸이지만, 참 엉망이었다.

아무리 봐도 몬스터와 싸우다 다친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더는 놀랍지도 않네.”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쯤 되니 양하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이곤, 그 녀석이 떠올랐다.

보아하니 A급 에스퍼인 거 같은데 이 애가 이 꼴이 될 때까지 그놈은 뭐한 건지.

한심한 새끼라고 욕을 하려는데 문득 내가 S급일 때는 이런 부당함을 겪고 있는 에스퍼가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조차 못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사실이 마음을 찝찝하게 했다.

저절로 미간이 좁아지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가이드와 연결되었습니다. 가이딩실 1012호로 방문해 주세요.]

3일 전에 요청한 가이딩이 이제야 잡혔다는 문자였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참 빨리도 온다.”

마음 같아서는 개나 줘 버리라고 무시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나는 별수 없이 가이딩실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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