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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화 (6/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화

* * *

다시는 내 발로 게이트를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게이트의 문이 멀쩡하게 열려 있었다.

나는 이곤과 게이트를 빠져나와 마치 현장을 처음 본 사람처럼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센터의 현장 직원들과 가이드들은 게이트를 빠져나온 헌터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금 혼잡할 뿐 죽은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도 아니었다.

내가 표정 없이 한참을 서 있자, 앞서가던 이곤이 뒤돌아봤다.

“양하나.”

“…….”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자 이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 쪽으로 걸어와 덥석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단단한 힘으로 이끌었다.

“양하나, 이제 네 이름도 모른 척하면 나는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냐.”

나는 저항 없이 이곤에게 끌려갔다.

정확히는 몸에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별수 없이 이곤과 함께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치유계 에스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탁상 중앙에 놓인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주변 게이트 현황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곤이 나를 의자에 앉혔다.

구급함을 꺼내 내 맞은편에 선 그는 현장에 능숙해 보였다.

저 정도로 현장 경험이 있는 A급 에스퍼라면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조용히 이곤을 살폈다.

살짝 펌이 들어간 갈색 머리에 위로 올라간 입꼬리는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이곤이라는 외자 이름을 가진 A급 에스퍼에 대해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신입인가.”

그렇게 웅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일순 내 시선이 멈췄다.

오른 벽면의 거울 속에 한 여자가 보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머리색도 체형도 능력도 무엇 하나 내 것이 아니라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거울로 보니 확실했다.

원래의 내 몸, 성시현의 모습이 아니었다.

빛나는 머리칼도 타오르는 눈동자도 없었다.

대신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삶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처투성이의 여자가 말이다.

내가 묘한 얼굴로 거울 속 나와 눈싸움하고 있자, 그 모습을 본 이곤이 말을 붙여 왔다.

“……오늘은 웬일로 순순히 따라온다 했다.”

이곤은 구급함에서 연고를 꺼내더니 손끝에 연고를 짰다.

나는 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정확히는 성시현이 아닌 양하나라는 여자를 말이다.

“자리 날 때까지 먼저 연고 좀 발라 놓자.”

이곤은 찢어진 내 입술로 손을 뻗었다.

나는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제지당한 이곤이 당황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남 걱정하기 전에 본인부터 챙겨.”

“뭐?”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내 첫마디에 놀란 듯 이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에너지 흐름도 엉망이고 출혈도 심해.”

나는 이곤을 훑어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태연한 척 웃고 있지만 내 눈은 못 속였다.

“하하, 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 양하나답지 않달까.”

“…….”

“그래도 내 걱정해 주는 건 고맙네.”

이곤이 환하게 웃었다.

반듯하게 생겨 웃는 얼굴이 제법 보기 좋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강우신. 그러고 보니 강우신 가이드는 어떻게 됐지.

분명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밖으로 내보냈는데…….

잊고 있던 강우신의 우는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조금 전의 일인데 굉장히 오래된 일처럼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흐릿했다.

“괜찮겠지.”

이기적이지만 그래 주길 바랐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오는데, 거울에 비친 양하나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 보는 여자가 정말 내가 움직이는 그대로 움직였다.

낯선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영혼을 바꿔치기할 수 있는 에스퍼가 있던가.

이게 몬스터의 농간인지, 에스퍼의 농간인지는 몰라도 환상이나 꿈은 아닌 듯했다.

이곤과 마찬가지로 내 가슴께에 수놓인 문양을 내려다봤다.

푸른색을 띤 태양이 기하학 모양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확실히 양하나는 센터 소속의 에스퍼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자와 영혼이 바뀐 거다.

그렇다면 이 순간 가장 큰 문제는 죽기 직전의 내 몸에 들어간 양하나의 영혼이었다.

C급 에스퍼가 S급 에스퍼의 몸을 제어하기란 불능에 가까울 테니 아주 위험한 상태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폭주했을 수도 있었다.

어서 안부를 확인해야 했다.

정리를 끝낸 나는 침착한 얼굴로 이곤을 쳐다봤다.

“이봐.”

“응?”

“혹시 오늘 서초에서 발생한 A급 게이트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내 뜬금없는 물음에 이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초에 A급 게이트? 오늘 A급 게이트가 출몰했다고는 못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 몰랐다.

운이 나쁘면 내가 우신과 게이트에 들어갔던 날이, 오늘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렇다면.

“성시현은 어떻게 됐지?”

“……뭐?”

성시현이란 이름에 일순간 이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성시현’에 관해 설명했다.

“……성시현 헌터 말이야.”

여기가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이 맞다면 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발아래부터 서서히 잠겨 오는 불안감에 설명을 덧붙였다.

“S급의 물리계 에스퍼인데, 왜 큰 키의 금발 머리 여자 말이야. 혹시...... 몰라?”

불안함에 마른침을 삼키며 묻는데 이곤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모르긴 왜 몰라, 성시현 헌터님을.”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얼굴이 환해져 물었다.

“그럼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조금 급해서 바로 만나 봐야 할 거 같거든.”

서둘러 말을 잇는데, 내 말에 이곤의 표정이 일그러지다 못해 미친 여자를 보듯 변했다.

“너 아까부터 왜 이래? 다른 사람처럼. 진짜 머리라도 다친 거야?”

“어?”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이곤은 헛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죽은 지 6년이나 된 사람을 어떻게 만나겠다고 하는 거야.”

“뭐?”

그 순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라디오가 정각을 알리며 아나운서가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알렸다.

내가 게이트에 들어간 날로부터 6년이 흘러 있었다.

* * *

“……양하나?”

내가 파리하게 질린 안색으로 꿈쩍도 하지 않자, 이곤도 덩달아 사색이 됐다.

그는 대체 뭐가 문제냐며 내게 손을 뻗었다.

때마침 천막 문이 열리며 가이드 명찰을 단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곤에게 곧장 말을 걸었다.

“또 여기 계셨네요. 이곤 헌터님은 바로 가이딩실로 오시라니까.”

“……가이딩받을 정도는 아니라서요.”

살갑게 말을 붙여 오는 가이드에게 이곤은 손바닥 뒤집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심드렁하니 답했다.

“그것보다 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이곤은 말끝을 흐리며 나를 가리켰다.

내게 가이딩 차례를 양보해 주는 듯했다.

나는 핑 도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확실히 상태가 별로였다. 도대체 이 몸으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하루에 게이트 두세 개씩 돌던 원래 내 몸보다 더 무거웠다.

아까부터 계속 속도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쓰레기 같은 몸 좀 어떻게 해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곤의 상태 역시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차례를 뺏을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곤의 말이 사실인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양하나 헌터님은 센터 가이딩실로 가시면 됩니다.”

거절하기 위해 운을 떼는데 가이드가 빠르게 내 말을 잘랐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가이드는 싱긋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현장 가이드가 부족해서요.”

이해해 달라는 말을 뒤늦게 덧붙이기는 했으나 가이드의 표정이 퍽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묘하게 적대적이기까지 한 눈빛이었다.

이곤이 한 말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 안 그래도 나가 볼 참이긴 했으나 찜찜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아까 현장 담당자부터 이 가이드까지. 도대체 뭐가 뭔지.

나는 한숨과 함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랑 같이…….”

“됐어.”

나는 따라 나오겠다는 이곤을 떨쳐 내고 센터로 향하는 단체 수송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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