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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화 (4/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4화

코앞까지 온 우신은 숨을 고르며 답했다.

“선배가 그런 몸 상태로 혼자 너무 깊이 들어가서요……. 그래서 제가 남겠다고 했습니다.”

“남겠다는 널 그냥 내버려 뒀다고?”

후발대 담당자가 누구였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게이트에서 나가면 이딴 부탁을 허락해 준 그 자식을 가만두지 않을 테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자 우신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제가 선배의 가이드라고 했습니다.”

“……뭐?”

어처구니없는 답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딴 말을 믿었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게이트에 가이드를 데리고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센터에서도 나에 관한 건 모두 기밀로 처리했기에 후발대 담당자가 강우신의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일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꼬여 갔다.

나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짜증을 냈다.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어……!”

큰 소리에 우신은 순간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는 변명하듯 작게 입을 열었다.

“선배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요. 가이딩할 때 속을 봤는데…….”

“그게 뭐.”

“네?”

“그렇다 한들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게이트 안까지 널 데려온 건 네 가이딩을 바라서가 아니었어. 착각했다면 미안하지만, 분수를 알았어야지.”

게이트 안은 애들 놀이터가 아니었다. 실제로 A급 게이트에서는 상급 에스퍼가 죽어 나가기도 했다.

이런 게이트에 나 하나 믿고 들어온 애였다.

이따위 상황을 만든 것도 끔찍하게 싫은데, 기어코 날 찾아온 우신이 참으로 미련해 보였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우신을 상처입히는 말이 나갔다.

내 말에 우신이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눈을 마주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

그의 눈빛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혀를 찼다.

그 순간, 바로 머리 위 천장이 무너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우신에게 손을 뻗었다.

“엎드려!”

몸으로 그를 감싸고 주변에 배리어를 쳐 떨어지는 바위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힘을 억지로 사용했더니 쇼크가 찾아오듯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우신을 안은 채 기절했다.

아까 꾼 꿈이 뭔지, 그제야 기억났다.

오랫동안 날 괴롭혀 온 악몽. 그건 14년 전 내가 각성한 그 날의 일이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가족에게 외식하자고 조른 건 나였다.

그때 외출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 끔찍한 사고에 휘말릴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 가족이 건너던 대교 위에 게이트가 발생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센터의 매뉴얼이 엉성했던 탓에 대처가 미흡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을 포함한 대교 위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게이트 브레이크로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눈을 감고 있으면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부모님은 모두 몬스터의 손톱에 몸을 관통당해 돌아가셨고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숨을 죽인 채 지켜보던 나는 각성했다.

한때 에스퍼를 연구하던 학자와 연구진들은 내 사례를 보고 강한 충격과 동기가 강한 에스퍼를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그건 모두 개소리였다.

그 끔찍한 일을 한 S급 에스퍼의 극적인 탄생기처럼 치부하는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마 그래서였던 거 같다.

길드가 아닌 센터에 몸을 담근 것도, 이런 부당한 업무량을 몸이 부서져라 견뎌 온 것도.

나는 나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더 이상은 없길 바랐다.

누군가는 내 삶을 보고 영웅의 일대기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지금껏 나와 맞는 가이드를 못 만난 이유 역시, 내가 S급 에스퍼이기 때문이 아니라 태어났으면 안 되는 돌연변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 * *

“선……!”

“…….”

“선배!”

끓어오르는 통증에 눈을 떴다.

흙먼지가 일어 주변이 엉망이었다.

그 속에서 우신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신을 보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쁜 꿈을 꿀 때마다 네가 깨워 주네.”

실없는 소리에 우신이 나의 등에 손을 받쳐 상체를 일으켜 줬다.

어째서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눈을 내리깔고 몸 상태를 확인하는데,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팠다.

발목이 돌아간 듯했다.

“하필 발목을.”

곧바로 우신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배리어가 잘 작동했는지 멀쩡해 보였다.

아마 우신에게 배리어를 씌우는 것까지만 간신히 성공하고 기절한 듯했다.

맨몸으로 떨어지는 바위를 맞았으니 몸이 이 모양이 됐겠지.

에스퍼의 몸이 단단하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본래의 컨디션일 때의 이야기다.

나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구멍이 많이 작아져 있었다. 이제 정말 한계였다.

나는 이어셋을 누르며 후발대를 호출해 보았지만, 망가진 기계음만 들릴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괜히 화가 나 이어셋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 상태로 우신을 업고 나가는 건 무리였다.

문이 있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쪽으로 내 머리칼도 조금씩 휘날렸다.

“…….”

혼자라면…….

혼자라면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 같았다.

슬쩍 우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 큰 사내놈인 줄 알았는데, 역시 아직 애인가 보네.

우신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보기 드문 수재라고 하더니.

“너도 참 재수 없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나를 따라와서.”

일부러 장난을 걸듯 우신의 어깨를 주먹으로 살짝 치는데 몸이 기울었다.

우신이 서둘러 어깨를 잡아 줬다.

내 맨살에 손이 닿은 우신은 놀란 듯 손끝을 움찔거렸다.

가이딩을 받지 못해 뭉친 에너지가 금방이라도 폭주할 거 같이 온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나는 민망함에 씩 웃어 보였다.

우신은 내 미소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다 이내 다 잠긴 목소리로 운을 뗐다.

“제가 S급이었다면…….”

뒤에 이어질 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나는 날카롭게 그의 말을 잘라 냈다.

“멍청한 소리 마. 지금까지 S급을 못 만나서 내가 가이딩을 못 받을 줄 알아? 그나마…….”

“…….”

그나마 네 가이딩이 가장 나았다는 말이 입 안에 머물렀다.

나는 그 민망한 소리를 겨우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한가한 소리는 살아 나가서 하자고. 이대로 있다간 여기가 너랑 내 무덤이 될 거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우신은 바라보는데, 순간 그의 얼굴이 한 뼘 가까이 다가왔다.

우신은 고개를 살짝 돌리고 키스할 듯 눈물 젖은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 모습에 당황해 코앞으로 다가온 입술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머리라도 다친 거야?”

내 물음에 우신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얼굴로 답했다.

“이편이 조금이라도 더 가이딩 효율을 높입니다.”

그거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상황에 가이딩할 생각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깨질 듯 지끈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좁혔다.

“윽…… 제발 헛소리 말고 네 살길이나 고민해.”

“살 생각해서 이러는 겁니다.”

우신의 눈이 물을 머금어 반짝하고 빛났다. 단호한 어투에 비해 얼굴에는 걱정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까 꿈을 꾼 탓인지 답지 않게 마음이 복잡해졌다.

“……너, 가족이 어떻게 되냐.”

뜬금없는 물음에 우신은 한쪽 눈썹을 찌푸리다 답했다.

“어머니랑 동생 한 명이 있습니다.”

“그래?”

생각해 보니 나는 여기서 나가도 문제였다.

폭주 직전인 몸이 센터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기계와 약물 가이딩만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삶을…… 계속 이어 가는 게 맞는 걸까.

아무 말 없이 우신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그가 다시금 나를 불렀다.

“선배……?”

이대로 혼자 살아 나갔다가는 어쩌면 악몽에 부모님뿐 아니라 강우신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악몽에서까지 이 녀석과 만날 생각을 하니 혼자 살아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싹 씻겨 나갔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편이 최선이다.”

“그게 무슨.”

순식간에 젤리처럼 생긴 얇은 막이 우신을 감쌌다.

우신의 눈은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이게 뭡니까…….”

“최선. 너 고마운 줄 알아.”

넉살 좋게 웃어 보이는데 머리에서부터 흐르는 피가 눈꺼풀을 무겁게 눌러 눈 뜨기가 힘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 피를 닦아 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려는데, 문득 내 새끼손가락을 붙잡은 우신의 커다란 손이 아주 옅게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 손보다 한참 큰 손이 애달프게 나를 잡고 있었다.

덤덤한 척하더니.

천천히 시선을 올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역시 고마워하지는 마라. 내 이기심이니까.”

불길함을 직감한 우신이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나 때문에 그러지 마요, 제발.”

눈물 때문에 잘생긴 얼굴이 엉망이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우신의 가슴께로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미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은 구실 하나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이만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땅한 이유 말이다.

“미안.”

그 말과 함께 게이트 전체가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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