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3화
머리카락만큼이나 반짝이는 금색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우신은 그 깊은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잠시 당황했지만 머지않아 살며시 웃어 보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런 게 전부였다.
어느덧 해가 저물었고, 게이트 주변으로 조명들이 설치됐다.
“성시현 헌터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현장 요원의 호출에 시현은 우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켠 시현은 바로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우신 역시 사념에서 벗어나 시현의 뒤를 따랐다.
* * *
예상대로 일은 금방 끝날 거 같았다.
게이트 입장과 동시에 나는 묶은 머리가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 후 B급 고블린을 후발대에게 맡긴 채, 선발대로서 속도를 높였다.
뭐, 선발대라고 해도 나 혼자였지만 이편이 팀의 피해를 줄이며 클리어 속도도 올릴 수 있어 이득이었다.
게이트는 평범했다.
늘 마주하던 천장이 높은 동굴 형태로 고블린형 몬스터가 들끓는 A급 게이트였다.
샛길 없이 쭉 이어진 길을 따라 발을 옮기다 보면 이 게이트의 주인이 나올 것이었다.
그것만 물리치면 게이트는 닫힌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루틴으로 이보다 쉬운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좀 쉬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 사진으로 찍은 듯한 이미지들이 스쳤다.
불편한 자세로 쪽잠을 자는 동안 꾼 꿈 같은데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분명 기분 더러운 꿈을 꾼 거 같았는데, 뭐였지.”
한번 악몽을 꾸면 좀처럼 깨기 어려웠는데 아까는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왜였을까.
의문과 동시에 우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만히 날 올려다보고 있던 우신은 분명 인상을 쓰고 있었다.
새카만 눈으로 날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낯선 얼굴에 순간 그가 우신이 맞는지 한참을 쳐다봐야 했다.
금세 다시 웃어 보이긴 했으나 어딘가 신경이 쓰였다.
굳이 쫓아오겠다는 녀석을 모른 척 후발대에 두고 온 것도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사설 가이딩 센터를 벗어나고부터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를 게이트 안까지 데려온 것만으로도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충동적인 결정은 그걸로 족해.’
우신과 있으면 이상하게 페이스가 말렸다. 그는 후발대에 있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그렇게 어째선지 녀석에게 댈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손목에 채워진 전자시계가 울렸다.
그 소리에 급히 멈춰 섰다.
시계를 확인하니 문으로부터 측정 불가능한 깊이까지 들어온 모양이었다.
보통 이쯤 왔으면 게이트 주인이 나와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어깨 뒤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평범한 동굴인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올수록 길이 좁아지고 축축해졌다.
마치 생물의 목구멍처럼 말이다.
그런 기분 나쁜 생각을 한 순간, 엄청난 역풍이 불어왔다.
몸이 허공에 붕 뜨는 느낌에 빠르게 상체를 낮추어 엎드렸다.
바람이 멎고 정면을 확인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아까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수백 마리의 고블린들이 가득했다.
몬스터의 기척 같은 거,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평범한 A급 게이트가 아닌데…….”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채워진 홀스터에서 단검을 빼 들었다.
이번 게이트의 주인이라 할 것은 이 고블린 떼인가.
흰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온몸이 새하얀 고블린들은 표피가 단단하게 강화돼 있고,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벌목도를 들고 있었다.
초입에서 본 B급 고블린들과는 외형부터가 달랐다. 하지만 내가 이질감을 느끼는 건 그런 외형적인 면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몬스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공격성이 보이지 않았다. 나를 확인하고도 달려들기는커녕 무기력하게 쳐다만 봤다.
평온한 고블린의 얼굴은 마치 나태한 사람의 표정을 흉내 내고 있는 듯했다.
그게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불러일으켰다.
“…….”
아까부터 어딘지 꺼림칙하더니, 불길한 직감은 늘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 상태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졌다.
에너지를 운용해 보려 해도 길이 막힌 것처럼 잘 안 됐다.
아까 우신의 가이딩을 받은 탓에 방심하고 있었는데, 부족한 가이딩으로 인한 폭주의 징조였다.
“하필 이럴 때.”
후발대를 기다리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빠르게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결론과 동시에 나는 앞으로 튕겨 나가듯 고블린들 틈을 파고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저항 없는 몬스터를 상대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클리어 가능한 수준이었다.
짧은 동선으로 움직이며 급소만 노리는데, 순간 뒤통수가 섬찟했다.
불길한 기운이 덮쳐 오자 빠르게 몸을 회전시켜 공격을 흘려 냈다.
살기에 비해 속도가 느렸다. 덕분에 쥐고 있던 단검만 바닥에 떨어트리고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덮치던 고블린의 창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내가 피한 자리로 들어선 고블린을 찔렀다.
“……이게 무슨.”
고블린이 창을 뽑아내자 푸른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분 나쁜 피를 뒤집어쓴 채 고블린 무리에서 멀어졌다.
처음에는 나를 해치다 일어난 해프닝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신호탄이었는지 수백의 고블린이 엉켜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순식간에 동굴 안은 엉망이 됐다.
닥쳐올 위협을 예감하듯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나와 눈이 마주친 하얀 고블린은 순간 섬뜩하게 미소 지으며 떨어져 있던 내 검을 집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그 모습에 몸이 얼어붙었다.
자결하는 몬스터라니.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례였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고민할 시간도 없이 몬스터들의 집단 자살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 모두 전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죽어 버린 몬스터들의 사체 사이에서 숨 쉬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게이트가 창궐한 이후 나름 오랜 시간 현장에 몸 담가 왔다 자부했는데, 정말이지 혼란스러웠다.
일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듯 사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이트 클리어 사인이었다.
보통 게이트 주인이 죽고도 20분 넘게 게이트가 유지되는데 집단 자살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 빠른 속도로 동굴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미친.”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빠르게 후발대에게 퇴각 사이렌은 보내고는 들어왔던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나는 내 각성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센터에서 기록물로 그날의 일을 수십 번이고 회상시켜 준 덕분에 14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문, 그러니까 ‘게이트’를 통해 몬스터가 출현했을 당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아수라장이 됐다.
포식의 피라미드가 뒤바뀌듯 재앙 앞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체에 세계의 멸망을 손 놓고 바라만 보던 그때, 에스퍼가 등장했다.
말 그대로 영웅적 등장이었다.
맨손으로 건물을 들어 올리거나 파도를 가르고 몬스터를 종잇장처럼 찢는 힘은 사람의 것으로 보기 힘들었다.
히어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지만, 이미 게이트 등장부터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를 훌쩍 지나 있었다.
그렇게 에스퍼를 중심으로 세계가 재구축됐다.
지금의 헌터는 고연봉에 대중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내가 아직 열두 살이던 무렵까지만 해도 헌터를 직업으로 대우해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에스퍼는 말 그대로 에스퍼였고, 자연스럽게 등장한 가이드 역시 에스퍼의 부속물 취급을 받았다.
에스퍼와 가이드는 마치 게이트 속 몬스터같이 하나의 수식처럼, 새로운 인류로 일반 사람과는 구분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스퍼가 뭔지, 그들에게 가이드의 존재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악몽 같은 일을 겪기 전까지 나는 그저 열두 살의 평범한 아이일 뿐이었다.
* * *
퇴각 신호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문에 가까워지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지만 어째선지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진짜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지금껏 아무리 가이딩을 엉망으로 받아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어딘가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 일이 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동굴 벽이 허물어지는 바람에 바닥도 고르지 못했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겨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땅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역시 하루에 세 탕은 무리였나 보네.”
강우신 앞에서 게이트에 혼자 들어가도 괜찮다 허세 부린 게 떠올랐다.
“그대로 혼자 들어왔었으면 개망신당할 뻔했네.”
픽 웃음이 샜다.
“…….”
물론 지금 상황을 보면 혼자 들어온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였지. 이렇게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게.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냈다.
“어지러우니까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드네.”
“선배!”
“환청도 들리고 말이야.”
멀리서 우신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 그때, 돌무더기를 아슬아슬하게 넘어 내 쪽으로 뛰어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너 이게 무슨……!”
분명 퇴각 신호에 맞춰 후발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게이트를 빠져나갔어야 했다.
이런 비상사태가 혹여라도 있을까 우신을 그곳에 두고 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가라고.
그런데 그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이 무너지는 게이트 안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