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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화 (2/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화

우신은 다섯 달 전, 내가 소속된 공격 1팀에 입사한 막내 가이드였다.

그는 C급의 낮은 등급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피지컬과 판단력으로 어렵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센터의 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다.

잘생긴 것도 모자라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수재라며 그가 막 입사했을 때는 팀 전체가 시끄러웠다.

물론 그 당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에 대한 소식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우신과의 매칭률 역시 7%의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출입을 막지 않은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선배님.”

불쑥 어둠 속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도 될까요.”

낮고 부드러운 울림이 나를 사념 속에서 건져 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강우신의 가이딩은 그렇게 불쾌하지 않았다.

매칭률 수치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다른 가이드에게서 느낀 불쾌감, 그래,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11%를 기록한 가이드보다도 우신의 가이딩이 훨씬 평온했다.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은 우신이 내 손을 조심히 그러잡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의 에너지가 내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우신의 에너지는 푸르른 잎처럼 청량했다.

손을 맞잡고 있으면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생각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나는 들판에 누운 듯 우신과 맞잡은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엉망이던 기분이 나아지는 거 같았다.

나는 무의식중에 맞잡은 그의 손을 들어 뺨을 묻었다. 내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우신이 작게 움찔거렸다.

“…….”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게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가이딩은 가벼운 접촉보다는 포옹이, 포옹보다는 좀 더 진한 스킨십이 더 효과적이다.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다른 가이드와의 키스는 도리어 구역질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옆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날 바라보고 있었는지 우신과 눈이 마주쳤다.

우신은 옅게 얼굴을 붉혔다. 어둠 속에서도 그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혹시’라는 의구심을 만들었다.

내게 순수하게 다가오는 이 가이드라면, 강우신이라면.

포옹같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더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그가 내게 안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 우신은 어떤 얼굴을 할까.

피로감에 시야가 어두워지며 노골적이고 끈적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다른 한 손을 뻗어 우신의 귓불을 매만졌다.

“선배님……?”

우신의 작은 부름에도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귓불을 지나 그의 검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아득한 정신에 점점 그에게 다가가던 순간, 손목시계 화면에 파란 불이 번쩍이며 게이트 출현을 알렸다.

A급 게이트의 출현이었다.

그 신호에 정신이 돌아왔다.

파랗게 번쩍이는 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우신이 먼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센터에 연락할게요.”

“…….”

그제야 우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한참 선배인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숨을 삼키며 이마를 매만졌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지.’

에스퍼에게 가이드란 본능적인 갈증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배웠지만, 나까지 팀의 막내를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나는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무슨 연락을 하겠다는 거야.”

내 심드렁한 반응에 우신이 답했다.

“아직 속이 엉망이에요.”

“…….”

아무리 경험 많은 에스퍼나 가이드도 내 앞에서는 꼬리를 말고 무서워하기 일쑤인데, 우신은 그렇지 않은 듯 그의 반짝이는 두 눈은 오직 나만 비추고 있었다.

나는 픽 웃어 보이고는 벗어 둔 점퍼를 집어 들었다.

“먼저 센터로 돌아가 있어.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까.”

나는 허리춤까지 늘어져 엉망으로 엉킨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 올렸다.

그리고 주저 없이 문밖으로 향하려는 순간,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힐끗 뒤를 확인해 보니 우신이 내 점퍼 끝을 쥐고 있었다.

“……기어코 가시겠다면.”

“…….”

“저도 데려가세요.”

가이드가 등급이 높은 게이트 안까지 따라오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에스퍼와 각인한 가이드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에스퍼야 제 몸을 지키는 일이 숨 쉬듯 자연스럽지만, 가이드는 가이딩을 할 수 있다는 점만 빼면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었다.

게다가 C급 가이드가 A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시한 채 고개를 돌리자, 우신은 조급한 듯 내 손을 턱 잡았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축에 속하더라도 S급 에스퍼를 저지하기에는 턱도 없는 힘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다칠까 쉽사리 쳐 내지 못하는데, 우신은 그 찰나를 틈타 가이딩을 했다. 청량한 에너지가 급속도로 몸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등급 차가 심해 더 이상 가이딩할 에너지도 없을 텐데 말이다.

예상대로 우신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여전히 끈질기게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껏 만난 가이드들은 호기롭게 도전한 게 무색할 만큼 제 에너지가 순식간에 동나는 것에 놀라 도망가기 바빴다.

그에 비해 우신은 낮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두렵지 않은지 아니면 아닌 척하는 건지 주저 없이 행동했다.

그게 제법 대단했다.

한 번쯤은 충동을 핑계로 그의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받아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게이트 정보를 빠르게 확인했다.

이번에 열린 A급 게이트는 혼자서도 클리어 가능한 정도였다. 사람 하나 지키는 일쯤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잠깐의 고민 끝에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허락이 떨어지자 우신은 활짝 핀 얼굴로 힘차게 네, 라고 대답하며 따라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문제없을 줄 알았다.

돌아오면 우신에게 마저 가이딩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피로도가 얼마나 쌓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 * *

A급 게이트를 눈앞에 두고도 태평하게 쪽잠을 잘 수 있는 건 성시현뿐일 거다.

그녀는 접이식 간이 의자에 곧은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관계자들은 익숙하다는 듯 그들의 할 일을 했다. 오직 우신만이 시현의 옆을 지켰다.

게이트에 도착한 직후 바로 입장하겠다는 그녀를 막아 세운 건 우신이었다.

“아무리 선배님이라도 지금 몸 상태로는 안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후발대 없이,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말하던 시현은 우신의 저지에 귀찮다는 듯 제 뒷머리를 헝클었다.

그 모습에 관계자들은 긴장하여 한 마디도 얹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만 봤다.

그도 그럴 것이 C급 가이드가 S급 에스퍼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못 할 짓이었다.

모두 그 자리에서 우신의 다리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현은 후발대 도착 예정 시각을 묻고는 간이 의자에 앉아 눈을 붙였다.

그렇게 삼십 분가량이 흘렀다.

우신은 미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꼼짝 않고 그녀의 상태만 확인했다.

‘언제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야.’

그럴 만도 했다. 게이트를 몇 개씩 뛰고도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신입 가이드인 우신이 봐도 알 만큼 심각한 상태였지만 그 누구도 시현을 말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녀에게는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됐다. 국가적 에스퍼의 명성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우신은 잠든 시현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를 올려다봤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안색이 더 나빠진 것 같았다.

“…….”

찡그려진 미간을 지나 이목구비를 천천히 살폈다.

안색은 창백했지만 부드러운 피부와 굳게 닫힌 혈색 좋은 입술이 말랑해 보였다.

에스퍼는 제 파장의 영향을 받아 힘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고유의 색으로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이 변했다.

그 힘이 강할수록 색이 선명하게 발한다고 한다.

시현의 파장은 황금빛이었다.

오랫동안 헌터 생활을 한 시현의 긴 머리는 금색으로 빛났다.

그 찬란한 색 덕분에 많은 이가 현장을 날아다니는 그녀를 밤하늘의 별에 비유했다.

우신은 그것이 퍽 어울리는 별명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 별, 시현은 우신에게도 그런 존재였다.

여러 길드의 러브 콜을 제쳐 두고 센터에 입사한 이유도 오직 성시현 하나 때문이었다.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종종 시현의 가이딩을 맡을 기회까지 생겼으니, 이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행운.”

우신은 그 말을 입 안에서 작게 굴렸다.

C급 가이드가 S급 에스퍼를 가이딩하는 일은 광활한 사막을 맨몸으로 건너는 것처럼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신은 본인보다 시현이 더 걱정됐다.

고작 저 따위의 가이딩이 그녀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금의 우신이 시현에게 만족스러운 가이딩을 선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리 바라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등급이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자신이 높은 등급의 가이드였다면, 시현의 피로감을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점점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던 그녀의 이름이 작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시현 선배.”

아주 작은 목소리였는데, 그의 부름에 시현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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