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화
1. 저무는 태양
“성시현 헌터님은 지금 안에 계신 겁니까.”
사설 가이딩 센터로 들어선 신입 가이드 김형도는 앞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이필엽의 뒤통수에 대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이필엽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넥타이를 단정하게 조여 매며 답했다.
“그래.”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두 사람은 가장 꼭대기 층을 눌렀다.
김형도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는 이필엽의 모습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성시현 헌터님을 실제로 뵙게 된 것도 신기한데, 제가 가이딩을 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
이필엽은 아무런 대꾸 없이 높아져만 가는 층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각성 이후 한 번도 전담 가이드를 안 두셨다는데, 어쩌면 저한테 기회가 있는 거 아닙니까.”
김형도의 목소리에는 시건방진 웃음기가 다분했다.
그의 말처럼 성시현 헌터는 에스퍼로 각성한 이후 지난 14년간 각인은커녕 전담 가이드도 두지 않았다.
S급 에스퍼답게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를 찾기 어려웠겠지만, 14년씩이나 지나다 보니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김형도 역시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이필엽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조금만 맘에 들면 2차 가이딩을 권한다느니, 가이딩할 때 필요한 필수적인 최소한의 접촉도 혐오한다느니…… 소문이 아주 가지각색이던데 길드장님이 보시기엔 어떤 거 같습니까?”
단편적으로 보아도 두 소문은 그 내용이 상반되는 뜬소문이었지만, 소문의 사실 따위 중요치 않았다.
성시현은 유명한 데 비해 얼굴 말고는 제대로 알려진 게 없었다.
“굉장한 미인이던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해명도 없이 소문을 방치하는 게…… 꼭 무언가 더 숨기고 있는 거 같지 않으십니까?”
이필엽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김형도는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제 생각에 사실 성시현 헌터님은 숨겨 둔 가이드가 있는 게…….”
그때 줄곧 정면을 바라보던 이필엽이 시선을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치자 김형도는 움찔 몸을 떨었다.
“가서도 그런 멍청한 소리를 했다간 가이딩은커녕 손가락이 부러질 거다, 신입.”
“네?”
이필엽의 경고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김형도는 열린 문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긴 복도 끝에 철문이 하나 있었다.
다른 가이딩실과는 달리 데스크는 물론 안내원도 보이지 않았다.
섬뜩할 만큼 고요했다.
“…….”
좀 전의 패기 넘치는 말과 달리 김형도는 쉽사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했다. 신입이라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철문 너머의 존재로 인해 털이 쭈뼛 서는 거 같았다.
그 층 전체가 성시현 헌터의 날 선 에너지를 머금고 있었다.
김형도는 엘리베이터에서 보인 호기로움을 잊고, 옅게 떨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이필엽은 이번에도 글렀다는 얼굴을 했다. 그는 혀를 차며 엘리베이터 안에 선 채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삼 분이라도 버티다 나와. 기본 수당이라도 받고 싶다면 말이야.”
* * *
<세기의 천재>.
<급이 다른 에스퍼 혹은 구원자>.
이 낯간지러운 말들은 모두 ‘S급 에스퍼 성시현’과 관련된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수식어들이다.
그것들을 보고 있자면, 기자들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나는 무박 삼 일을 게이트 안에서 해가 지고 뜨는지도 모른 채 몬스터를 해치우고 나오는데, 기자들은 태평히 세상을 구원할 힘이라며 입만 나불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힘을 쓰고 게이트를 나온 순간에는 정말이지 얼굴 앞으로 마이크를 가져다 대는 기자의 손목을 부러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내일 신문 1면에 세상을 멸한 힘이라는 헤드라인이 걸릴 게 뻔했다.
“…….”
이렇게 에스퍼의 피로가 가볍게 여겨지는 건 모두 가이딩 때문이다.
가이딩이 만능인 줄 아는 멍청한 사람들은 가이딩만으로 엉망이 된 에스퍼의 에너지가 안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 물론 가이딩만으로 안정이 되기도 한다. 높은 매칭률을 지닌 가이드에게 효율적인 가이딩을 받는다면 말이다.
“그만.”
내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에 낮게 내려앉았다.
동시에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던 가이드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것도 잠시, 그는 손을 떨면서도 다시 가이딩하려는 듯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그만두라는 말이 안 들리나 봅니다.”
불쾌한 기분에 입을 열자, 방 전체가 울렁였다.
가이드는 구역질이 올라오는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침대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피로감에 젖은 얼굴을 숨길 생각 따위 들지 않았다.
매번 기분이 더러워져 돌아가면서도 매뉴얼처럼 사설 가이딩 센터에 들르는 일은 빼먹지 않았다.
오늘도 벌써 두 개의 게이트를 주파하고 왔기에 헛걸음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팀장과의 약속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벗어 둔 셔츠를 도로 입고 단추를 하나씩 채워 나가며 눈으로는 어둠 속에서 몸을 조아린 가이드의 명찰을 확인했다.
[A급 가이드 김형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패기 넘치는 가이드라고 그렇게 강조하더니 신입을 밀어 넣은 거 같았다.
이 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좀 너무하네.
아무리 실적이 중요해도 그렇지 저렇게 벌벌 기는 신입을 붙일 생각을 하다니.
S급의 전담 가이드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타이틀만으로도 그 가이드가 소속된 길드는 단숨에 센터 정도의 입지를 얻게 된다.
게다가 그 S급 에스퍼가 각성 이후 14년간 한 번도 곁에 가이드를 둔 적 없는 나라면…….
가치는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조그마한 틈만 생기면 이곳저곳에서 내게 가이드를 밀어 넣고는 했다.
결국, 전부 이 꼴이지만.
나는 옷을 다 입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이만 나가 봐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형도는 입을 틀어막은 모습 그대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쾅 닫힌 문을 바라봤다.
이 팀장에게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그 생각에 급히 침대 밖으로 발을 뻗어 일어나려는데,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트를 잡았다.
곧바로 흐릿해진 초점이 돌아왔지만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괜한 가이딩에 에너지의 길이 더 엉망이 된 거 같았다.
나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에스퍼에게 가이딩은 생명을 연장하는 일과도 같았다.
힘을 써 엉망이 된 에스퍼 에너지의 길을 가이드의 에너지로 안정시키는 것. 그게 가이드의 역할이었다.
그 구조 덕분에 에스퍼에게 가이드란 절대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 가이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 매칭률 15%가 넘어야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가이딩을 받을 수 있었다.
그에 못 미치면 지금처럼 괜히 에너지의 길이 엉망이 된다.
매칭률 높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는 일은 정신이 녹아들 만큼 기분 좋은 일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다.
‘80%가 넘으면 각인도 한다지만…….’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각성 이후 14년간 나와의 매칭률 11%를 넘긴 가이드가 없었다.
14년쯤 되다 보니 웬만한 아니, 센터나 길드에 등록된 거의 모든 가이드와 매칭 테스트를 했다.
가장 높은 수치인 11%를 기록한 가이드가 잠깐 임시 전담이 된 적도 있었지만, 그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에스퍼와 각인을 했다.
징계를 받는 한이 있어도 내 가이드는 못 하겠단 뜻이었다.
당시에는 별일 아닌 척 넘겼지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국가적 에스퍼에게 전담 가이드가 없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조심해라. 네 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규제 없이 사용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핵폭탄. 그건 이 팀장이 쓰던 비유였다.
나를 핵폭탄과 비교하지 말라고 화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나은 비유가 없다.
결국 나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언제부턴가 매칭률 테스트도 받지 않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기 시작했다.
사사로운 생각을 하는 사이, 몸 상태가 조금 나아져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센터에 가서 보조제를 먹고 기계로 가이딩을 받다 보면 그나마 숨을 편히 쉴 만큼은 회복될 것이다.
그 생각에 짐을 챙겨 드는데.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
무거운 눈꺼풀을 끔벅이며 문을 바라봤다.
이 팀장인가. 짜증이 솟구치려는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강우신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마법처럼 미간이 펴졌다.
“……들어와.”
내 허락에 문이 열리며 어두운 방 안으로 빛이 새어 들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빛 한가운데 우신이 서 있었다.
우신은 입꼬리를 예쁘게 올려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역시 방금 방을 빠져나간 가이드와 비슷한 복장에 왼쪽 가슴에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C급 가이드 강우신]
“센터에서 보내서 온 거니.”
내 물음에 우신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요. 선배님 일 끝나면 곧장 여기로 오잖아요.”
“…….”
“그래서요,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우신이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고개를 작게 갸웃했다.
입사 초 스치듯 지나가며 본 얼굴은 웃음기는커녕 서늘했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눈만 마주치면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웃어 보였다.
크고 다부진 체형에 피부가 까무잡잡해 인상 더러운 막내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