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아케르트가 돌아오자마자 콜린 핸슨은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화의 모습인 아케르트는 날갯죽지가 찢어진 채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왜소한 덩치라 아케르트를 부축도 못 하는 콜린 핸슨을 대신해 칼루스가 그를 부축했다.
아케르트의 부상으로 정신이 없어진 반려들은 제게 드래곤들의 전쟁이 끝난 건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이 전해 들은 소식은 자신들을 죽이러 왔던 드래곤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당장은 안전하다는 점이었다.
리시안셔스는 아케르트의 치유를 도우려 했으나 절단된 신체를 복구시키는 건 무리였다.
인간화의 모습이라 날갯죽지 부분의 살이 찢어진 걸로만 보이지만 사실 그는 신체의 일부분인 날개 한쪽이 뜯긴 상태였다.
리시안셔스가 해 줄 수 있었던 건 그의 고통을 조금 덜어주는 것뿐이었다.
샬롯은 아케르트의 몸에 난 땀을 닦아 주고, 콜린 핸슨은 어쩔 줄을 모르며 정신없이 울기만 했다. 스위트피는 그들을 지켜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고 뒤로 물러선 리시안셔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케르트는 괜찮을까요?”
“글쎄. 무사하길 바라야지.”
“찢긴 날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나요?”
“……힘들겠지.”
하늘을 지배하는 드래곤이 날개를 잃었다는 건 그만큼 큰 치욕일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남은 일이 있잖아요.”
드래곤의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오늘을 함께 버텨 낸 동료가 적이 될 수도 있었다.
반려를 살리려면 14일 이내로 다른 드래곤 반려의 심장을 뽑아야 하니까.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다면 상황은 아케르트와 콜린 핸슨에게 더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리시안. 혹시 떠오르는 방법이 있나요?”
스위트피는 혹시 몰라 리시안셔스를 떠봤다. 리시안셔스는 디에고의 고린도를 몸속에 심지 않은 채 품에 간직하고만 있었다.
그가 무슨 기억이라도 떠오른 건 아닐지, 조심스레 떠본 것이다.
“그러는 너는?”
그러나 역으로 돌아온 질문에 스위트피는 말문이 막혔다.
“왠지 넌 그 방법을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제, 제가요……?”
“…….”
“알잖아요, 리시안. 저는 그냥 막무가내로 이곳까지 오자고 우긴 것뿐이에요.”
지레 찔려서일까. 리시안셔스도 꼭 자신의 의중을 떠보는 거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
리시안셔스의 머릿속에 자신은 아직도 어린 시절 거둬 줬던 어린아이에 멈춰 있다.
그의 기준에서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게 어떤 방법이 있을 거라는 결론에까지 다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레티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꼬마가 무슨 진실을 알 거라 생각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런데 왜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지?’
어떻게 신의 정원에 들어간 것인지, 디에고와 나눈 대화는 무엇을 뜻한 것인지.
그의 기준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 행동이 많았을 텐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었다.
‘……정신없어서 그런 거겠지.’
여러모로 고단한 하루였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내내 아케르트를 간호하던 샬롯 그레이엄은 칼루스의 곁에서 잠이 들었고, 콜린 핸슨도 아케르트가 잠든 침대에 엎어져서 쪽잠을 청했다.
지친 건 인간뿐만 아니라 드래곤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들도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드래곤도 잠을 자는구나.’
리시안셔스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가 잠드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은 많이 보긴 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무방비해 보였고, 숨소리도 조금 더 고르고 느리게 들렸다.
‘신의 정원에서 아직 보지 못했던 과거가 있어.’
얼핏…… 알 거 같긴 했다.
본능적으로 느낌이 좋지 않았을뿐더러, 얼핏 보았던 마지막 기억에서 세레티가 목숨을 끊은 걸 보면…….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스위트피는 아직 완전히 와닿은 건 아니지만 자신이 세레티의 환생이라는 걸 어렴풋하게 알아챘다.
얼굴이 닮았다는 건 우연이라 치더라도 그 능력까지 닮았다는 건 그냥 넘기기 힘들었다. 디에고는 이미 확신하고 제게 집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기억을 엿보는 건 매개체를 통해 보는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감정까지 함께 고스란히 느껴졌다.
‘조금 더 확인해야 돼.’
스위트피는 조심스럽게 눈을 감은 리시안셔스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의 눈가에 손을 휘저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봐서는 정말 잠이 든 걸 수도…….
스위트피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몸을 일으켰다.
‘금방 다녀올게요.’
마음속으로 리시안셔스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남긴 스위트피가 다시 신전을 나섰다.
신의 정원으로 가는 길은 이제 늘 가는 길처럼 익숙했다. 스위트피는 계단을 내려가 헤매지 않고 단번에 신의 정원으로 향하는 문을 찾아냈다.
문이 열리고 다시 어둠이 스위트피를 맞이했다. 하지만 스위트피는 길 한 번 헤매지 않고 아주 먼 곳에 있는 눈부신 정원으로 향했다. 앞이 보이지 않던 세레티가 바로 정원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태양처럼 눈부신 천장의 빛에서 뻗어 나온 나무줄기에 나 있는 꽃들이 스위트피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실은 보고 싶지 않아.’
내가 세레티고, 세레티가 나라면.
과거의 세레티가 저지른 어마어마한 잘못은 곧 제 잘못이었다.
리시안셔스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이 되는 것이다.
전생의 죄를 마주 보기가 두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리시안셔스가 되찾은 고린도를 훔치고 싶어.’
리시안셔스가 고린도를 통해서 디에고의 기억을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면.
자신이 그를 배신했던 세레티라는 걸 알게 된다면.
‘무서워…….’
그때의 리시안셔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때와는 달라.’
그때의 세레티는 비겁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스위트피는 지금의 자신도 세레티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다. 가령, 불편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거나, 자존감이 낮고 때로는 비겁할 때도 있다는 것도.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자존감이 낮은 만큼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았다. 비겁한 마음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 비겁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가졌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경험을 하면 발전하고 성장하듯이, 환생한 지금의 스위트피는 전생의 세레티와는 다르게 발전하고 성장했다.
그러니 이겨 낼 수 있다.
전생을 마주하지 않고 제 잘못을 외면할 수 있는 비겁함을 극복할 수 있다.
세레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나뭇가지처럼 뻗어 내려온 뿌리에 핀 스위트피 꽃을 어루만졌다.
이번에도 오래전 세레티의 기억이 스위트피를 향해 문을 활짝 열었다. 스위트피는 두려움을 이겨 내며 전생을 보여 주는 기억의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
흐음-, 흠-
음정이 불규칙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세레티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세상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베일을 쓰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베일 너머로 색깔이 보였다.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아침의 태양도, 저녁에 하늘을 지배하는 무수한 별도, 초록빛 숲과 꽃들도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세레티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건 단순하게 세상이 보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네가 보고 싶었어.」
이제 세레티는 자기 자신에게 아쉬운 점이 없었다. 부족하다거나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졌으니까.
“어떡해…….”
리시안셔스와 입을 맞췄던 순간을 떠올린 세레티가 뺨을 감싼 채 고개를 도리질 쳤다.
“뭐하니, 세레티?”
혼자서 붉어진 뺨을 식히던 세레티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더욱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고개를 도리질 치고 뺨을 감싸는 행동이 남이 보기엔 이상해 보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 에리카.”
“…….”
“어,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어차피 베일을 써서 에리카에게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세레티는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애꿎은 베일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만났니?”
“뭐, 뭘?”
“리시안셔스, 그 드래곤 말이야.”
“…….”
“역시 만난 모양이네.”
에리카와 너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눠서일까.
무언가 이상했다. 자신이 알던 에리카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리시안셔스를 부르는 목소리가…….
위대한 드래곤을 높여 부르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