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얄미운 크리스가 어떻게 일러바쳤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마고 부인은 스위트피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뺨을 내리쳤다. 스위트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뺨을 맞을 때마다 머리가 심하게 흔들려 눈앞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마고 부인의 일방적인 폭행이 끝난 건 스위트피의 인중에 흐르던 코피가 뺨을 내리치던 손에 튀고 나서였다. 그녀는 질색하며 스위트피의 머리를 내려놓고는 행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하지만 스위트피가 겨우 폭력에서 벗어나자마자 크리스는 또 다른 것으로 스위트피를 고자질했다.
“엄마, 엄마! 저 녀석이 요즘 숲속에 이상한 남자를 만나고 다녀요!”
“이상한 남자……?”
“엄마의 식량 창고를 훔쳐서 매일 그 남자에게 가져다주던데요?”
“뭐?!”
“아무래도 저 녀석이 은혜도 모르고 그 남자와 손잡고 우리한테서 도망칠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돈을 주고 데려온 만큼 스위트피를 노예처럼 여기던 마고 부인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건방지게 노예가 주인 몰래 도망치려 하다니, 단단히 혼쭐을 내줄 일이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전 음식을 훔친 적도 없어요……!”
마고 부인의 눈빛을 읽은 스위트피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이제부터 숲에 안 갈게요! 리시안셔스와는…….”
그러나 말을 마저 끝내기도 전에 머리가 또다시 돌아갔다. 마고 부인이 또 스위트피에게 손을 휘두른 것이다.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걸 보아하니 우리 아들의 말이 맞나 보구나?”
“마, 마고 부인…….”
“처음 듣는 이름인 걸 보아하니 외지인인 거 같은데, 그놈이 너를 뭐라고 꼬드기기라도 했니?”
“아, 아니에요…….”
“절름발이를 입양해 입혀 주고 재워 주고 먹여 줬더니! 돼지처럼 내 식량이나 축낼 줄 알지, 일도 제대로 못 하는 비렁뱅이가!”
스위트피에게 쏘아붙이던 마고 부인은 말을 할수록 화가 솟구쳤는지 두 손을 마구 휘둘러 스위트피를 때렸다. 마고 부인이 손을 휘두르는 대로 스위트피의 머리와 어깨와 등에는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마고 부인은 스위트피가 돌봐 준 은혜도 모르고 도망치려 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달랐다. 스위트피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크리스가 일러바친 ‘이상한 남자’, 리시안셔스는 스위트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남자였다.
붉은 드래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도 지켜만 보던 남자가 아닌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도와주기는 했지만…….
결국 그도 드래곤에 불과했다. 인간을 업신여기고, 살육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그런 괴물, 인간이 아닌 존재.
그런 존재가 자신을 데리고 이 지옥에서 도망치게 해 줄 리가 없었다.
“흐윽, 흑…….”
갈 곳이 없는 데다 다리를 저는 스위트피는 저항도 하지 못했다. 고작 머리를 감싸는 것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밀치고 때리는 힘에 뒤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물러나던 스위트피는 결국 몸이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윽……!”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친 스위트피는 바닥을 구르며 머리를 감쌌다.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지만 마고 부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이 천애 고아 주제에! 내가 거둬 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을! 쓸모없는 계집이!”
스위트피가 바닥에 엎어지자 이번엔 발로 작은 몸뚱어리를 짓밟았다.
“엄마! 그러다가 얘 죽겠어!”
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 낸 크리스가 보다 못해 나섰다. 아들이 끌어안고 말리자, 마고 부인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마고 부인은 은혜도 모르는 아이에게 벌을 준 것이라 여겼지만 폭력은 중독성이 있었다. 일손을 거둘 아이로 데려온 스위트피는 손쉽게 폭력을 휘두르기 편한 존재였다. 매를 맞으면서도 오히려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스위트피는 어느 순간부터 화풀이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언제나 자신의 부름에 재깍 달려오고 고개를 숙여야 할 아이가 스스로 도망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 너같이 못된 아이는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 해!”
마고 부인은 바닥에 쓰러진 스위트피의 몸을 질질 끌고서 주점을 나섰다.
“엄마! 걔를 어쩌려고 그래? 설마 내쫓으려고……?!”
스위트피가 다시는 자신에게 까불지 못하게만 하려던 크리스는 생각보다 일이 커지자 발을 동동 구르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마고 부인이 스위트피를 끌고 향한 곳은 주점의 뒤편에 있는 작은 창고였다. 각종 청소 도구와 쓰지 않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에는 먼지가 풀풀 쌓여 있었다.
“들어가!”
스위트피는 마고 부인에게 던져지다시피 창고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지금 마고 부인이 어떤 벌을 주려는 것인지 깨달은 스위트피는 아직도 남아 있는 극심한 어지러움과 욱신거리는 통증에도 문가를 향해 기어갔다.
“진심으로 반성할 때까지 이곳에서 나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엄마, 그러다가 얘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예끼, 이 녀석아! 넌 저 기지배한테 골탕 먹고도 편들어 주고 싶어?”
“난 편들어 주려는 게 아니라, 쟤가 저러다 죽을까 봐 그러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줄 알아?”
“그래도 이건 좀…….”
“너, 내 허락 없이 저 계집애한테 물 한 모금 줄 생각도 하지 마!”
두 모자가 자기들끼리 떠는 사이, 겨우 기어서 문치에 다가간 스위트피가 마고 부인의 발목을 붙잡았다.
“자,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스위트피는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용서를 구했다.
“그러게 잘못할 일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러나 진심으로 반성할 때까지만 가둬 놓겠다던 마고 부인은 벌레를 떼어 내듯 스위트피를 떨궈 냈다.
“부인! 가지 마세요! 마고 부인!”
쿠웅-
창고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는 듯했다.
스위트피의 애원에도 마고 부인이 끝내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깊은 어둠이 스위트피를 찾아왔다. 작게 뚫린 문틈으로 눈을 갖다 대자, 아들을 데리고 가는 마고 부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크리스는 신경 쓰이는지 몇 번이나 뒤를 힐끔대기는 했으나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열어 줘……. 제발 열어 줘요…….”
스위트피가 힘겹게 문고리를 당기고 문가를 긁었지만, 이 간절한 애원을 들어주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은 자신을 구해 줬던 리시안셔스까지도.
* * *
스위트피가 갇힌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주점을 찾아온 손님들은 종종 스위트피의 행방을 묻기는 했으나 다른 마을 친척 집에 잠깐 보냈다는 마고 부인의 거짓말에 쉽게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는 했다.
단단히 화가 난 마고 부인은 정말로 스위트피에게 물 한 모금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일하게 스위트피에 관한 문제로 끙끙대고 있는 건 크리스였다. 그는 감히 자신에게 기어오른 스위트피를 아주 살짝만 혼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고 부인은 아들의 만류에도 스위트피를 풀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사흘째 되는 날, 스위트피를 향한 걱정을 참지 못한 크리스는 창고 앞에 다가가 슬쩍 스위트피의 이름을 불렀다.
“야, 절름발이!”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내 말을 무시해? 죽고 싶냐?!”
문을 걷어차며 겁을 줬는데도,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야, 스위트피 로렌!”
이때부터 크리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 갔다.
“엄마!”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간 크리스는 마고 부인의 앞치마를 붙들고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계속 불렀는데, 저 절름발이가 대답을 안 해!”
“어휴, 내 아들이지만 너도 참 순진하다. 저것이 빨리 벌 받는 걸 끝내고 싶어서 꼼수 부리는 거잖아!”
“기절해 있는 거 아니야? 주, 죽은 거면?”
“시끄러워! 넌 저 계집애 꾀병에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엄마는 저 은혜도 모르는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놓을 테니까!”
하나뿐인 아들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던 마고 부인이 이번만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떡하지…….”
크리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 가기 시작했다.
* * *
다시 밤이 찾아온 창고의 내부에는 낡은 나무판자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 한 줄기를 제외하면 아주 깜깜했다.
가끔 동물들이 창고로 찾아와 말을 걸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어두운 곳의 외로움을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온전히 혼자 있어야 하는 어둠 속에 남겨지자 극심한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몸이 아픈데 아무도 걱정해 주는 이가 없어 서러웠다.
스위트피는 갈증이 나는 목으로 그동안 안 부른 지 오래되었던 그리운 존재들을 불러 보았다.
“엄마, 아빠……. 언니…….”
하지만 아무리 가족들을 불러도 그들은 자신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들은 모두 드래곤의 손에 죽었으니까.
드래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살아갈 터전과 가족들, 그 모두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스위트피가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대상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간 종족인 드래곤이었다.
부른다고 해서 도와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친근하고 가까운 사이도 아니지만.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을 전부 통틀어서 유일하게 자신을 도와준 적이 있는 것은 리시안셔스 한 명뿐이었다.
“…….”
스위트피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하는 이 어두운 창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드래곤이 싫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손을 뻗어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을 거 같다. 지금 당장 자신을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스위트피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해 잔뜩 쉰 목소리로 간신히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리…시안…셔스…….”
그때, 붉은 드래곤에게 죽을 뻔했을 때처럼 간절하게 리시안셔스를 찾았다.
‘리시안셔스……. 한 번만 내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나는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날 구해 준다면, 그렇다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부질없는 희망으로 끝없이 리시안셔스를 찾을 때였다.
“…….”
문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윽고, 창고의 낡은 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리시안셔스……?!’
스위트피는 희망에 찬 얼굴로 문가를 응시했다. 하지만 희미하게 웃던 스위트피의 얼굴은 문을 열고 들어온 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굳었다.
“뭐야, 생각보다 멀쩡하잖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크리스였다.
“살아 있었으면서 내가 부르는데 무시해? 죽을래?”
크리스는 주먹을 드는 시늉을 했다. 폭력에 익숙해진 스위트피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진짜로 때릴 생각은 없었는지 크리스는 곧장 주먹을 내렸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날 진짜 혼낼지도 몰라.”
“…….”
“너한테 물 한 모금도 주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큰마음 먹고 풀어 주는 거야.”
“…….”
“다시는 그 숲속에서 이상한 외지인 만날 생각 말고, 나한테 대들지도 마. 알았어? 왜 괜히 버릇없이 굴어서 이 고생을 하고 그러냐?”
“…….”
“에헴! 뭐 해? 안 나오고.”
“…….”
“야, 절름발이! 너, 설마 너무 맞아서 귀머거리도 된 거냐?”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스위트피는 그 바람을 철회하기로 했다.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주길 바랐으나, 적어도 그 대상에서 크리스는 제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