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02.
팔월 팔 일.
파도가 치고 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 바다 앞에서 기다렸다. 혹시나 잠시라도 놓칠까 싶어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는 웃으며 나를 안아 주셨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눈은 저 먼 바다를 향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졸린 눈을 비볐다. 아버지는 그러자 내 뺨에 입을 맞추고는 ‘피곤하니? 우리 아가?’ 하셨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안고 벽의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졸리다고 말하면 우리 아버지는 꼼짝 못 했다. 항상 나에게 따뜻한 우유를 주고 책을 읽어 준 다음, 내가 악몽을 꾸지 않도록 해 주니까.
그런데 다 들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배가 보였다. 어머니가 타고 가신 배였다. 나는 아버지의 옷을 흔들었다.
“저 뒤 좀 봐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나를 안은 것도 잊고서 바다로 달려가는 게 아니겠나.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아버지는 너무 유난스러우셨다. 내가 그러다가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깜짝 놀랐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 간다. 어머니가 배가 잔뜩 부른 채로 일을 하려고 나가셨으니까.
배가 도착하고 어머니가 그 안에서 걸어 나왔을 때. 나는 배가 뚱뚱해져 간 어머니 배가 별로 뚱뚱하지 않음을 알았다. 어머니는 배에서 내려와 나를 보며 웃었다. 아버지는 나를 안은 것을 또 잊으셨다. 엄청 빠르게 달려갔다.
“이야라.”
나는 아주 기뻤다. 어머니가 드디어 나를 안아 줄 수 있을 테니까. 어머니에게 손을 뻗고서 안아달라며 갔는데. 아뿔싸. 우리 어머니의 손에는 이미 다른 아기가 들려 있었다. 그 아기를 멀뚱히 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작게 웃었다.
“네 동생이야.”
불안했다. 아버지가 나를 땅에서 내려놓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가 못나게도 생겨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아기를 나보다 더 조심스럽게 안으셨다. 어머니도 나를 두 달 만에 봤는데도 전혀 봐주지 않으셨다. 아기만 보고 있었다.
“너 닮았어.”
아버지는 눈이 삐신 게 틀림없었다. 좋아서 죽는 얼굴로 어머니한테 그렇게 말하는데. 어머니는 그제야 나를 보고 두 팔을 벌렸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달려가 안겼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 뺨에 입도 안 맞춰주시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숙제는?”
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지만 그래도 어머니한테 자랑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기다렸으니까. 손을 펼치고 까만빛을 불러보았다. 어머니는 내 손바닥에 둥둥 떠다니는 빛을 보고서 그제야 하하, 웃으셨다. 내 뺨에 입을 맞추어주셨다.
“일린저. 우리 리서는 천재 아닐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했는데.”
아버지는 꼭 어머니가 누구를 칭찬하면 자기도 그렇다면서 말하신다. 기분이 나빴지만 아버지의 기분이 너무 좋아 보였길래 내가 그냥 참았다.
어머니가 바깥에서 낳아 가지고 온 내 동생은 쭈굴쭈굴 못생겼지만, 할머니의 관심을 온통 독차지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는데. 내가 걔 장난감 좀 어떻게 했다고 금방 나한테 세모 눈을 하셨다. 엄청난 배신이었다.
* * *
팔월 십 일.
나는 이제 아버지하고 완전히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언제나 공주님, 공주님 하면서 나를 떠받들어주시던 우리 아버지가 그 아기한테 왕자님, 왕자님 하는 거를 보았다. 사실 저 아기는 내 하인쯤으로 쓰려고 했는데 나는 완전히 마음을 바꿔 먹었다. 쟤는 내 말로 쓸 예정이었다.
아기들은 조금만 있으면 기어 다닌다고 하니까 내가 타고 다닐 것이었다. 아주 채찍까지 준비하면서 호되게 가르치겠다 싶었는데. 할머니가 말채찍 같은 것은 아직 내가 어리니까 사 주시지 않겠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 저 못생긴 애를 말로 들이려는 것을 알고 막으시는 것 같았다.
너무너무 심심했지만 그저 참았다. 아버지도 맨날 그 아기만 안고 다니고 할머니도 우리 레번스, 레번스 하면서 걔한테만 관심을 주시고. 오늘은 심지어 어머니의 집무실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아버지가 방해를 하시는 게 아닌가!
“공주님. 잠시 나가서 놀아.”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몸을 훅 들어서 밖에 내버려 두었다. 너무 속상한 내가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들겼어도 어머니나 아버지나 둘 다 아무 말이 없으셨다. 심술이 나서 아기를 구경하려고 갔다가 다시 어머니의 집무실로 돌아가니. 어머니는 책상에 엎드려 주무시고 있으셨고, 아버지는 셔츠를 벗고 있으셨다.
“아버지. 더워요?”
아버지는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서 단추를 끼우셨다. 나에게 다가왔다.
“잘 놀았어?”
“어머니랑 뭐 했어요?”
아버지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안아 올리셨다.
“어머니 기쁘게 해 드리는 놀이가 있어.”
그런 것 치고는 어머니는 너무 힘이 없어 보였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손가락 하나 꿈쩍 안 하신다. 코 골면서 자고 있지 않으신가.
“저도 배울래요.”
“뭐를?”
“어머니 기쁘게 하는 거.”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면서 나를 고쳐 안으셨다.
“안 돼.”
“왜?”
“네 어머니는 내 거니까.”
내가 다른 말은 다 넘어갈 수 있어도 그 말은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인데요?”
“네 어머니는 내 아내인데요?”
아버지가 똑같이 나를 따라 하면서 말을 하는데 나는 신경질이 났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요즘 나에 대한 관심이 아주 적어져서 짜증이 났는데. 내가 심술 궂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째려보니까 아버지는 웃으면서 나를 꼭 끌어안아 주셨다. 그러고는 어머니가 주무시니까 이제 나가자며, 집무실 밖으로 나를 안고 가셨다.
아버지는 나를 안고서 못생긴 아기의 방으로 가셨다. 나는 엄마랑 똑같이 예쁜 꿀 색깔의 머리에 초록 나뭇잎 눈인데. 얘는 아빠랑 똑같이 까만 머리카락에 바다 색깔의 눈이었다. 아버지는 새근새근 자는 그 아기를 왼팔에 안으셨다. 나는 오른팔이고. 아버지는 우리 둘을 들고서 창가로 가셨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아버지가 그랬다.
“이게 내 꿈이었거든.”
“꿈?”
아버지는 옛날에 왕자였다고 한다. 동화책에 나오는 왕자. 지금 있으신 왕이 우리 고모였다. 나는 아빠한테 왜 왕자님이 여기서 사냐고, 궁전에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아버지는 불행한 왕자였거든.”
“저주에 걸린 것처럼?”
나는 아버지가 너무 좋았다. 너무 좋은데 우리 아버지는 혼자 있으면 너무 슬퍼 보였다. 나는 그래서 아버지의 옆에 맨날 가서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어머니를 제일 좋아하고, 이제는 아기 왕자님까지 생겼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저주 걸린 왕자님이 나오는 동화책으로만 골라서 아버지한테 가져갔다. 침실 문을 꼭 닫고 있어서 똑똑 했는데도 안 열렸다. 낑낑거리며 문을 열어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위에서 말 타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그때 욕을 하셨다. 깜짝 놀라서 아버지 밑에서 내려가다가 바닥에 떨어질 뻔한 것을 아버지가 받아주셨다. 어머니랑 아버지랑 더운지 두 분 다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어머니는 빨리 단추를 잠그셨다.
“아기 식사 주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가끔 아기한테 가슴을 물려 식사를 주셨다. 어머니는 얼굴이 빨개져서 침대에 드러누웠고 아버지는 나에게 이리로 오라며 손짓하셨다.
“공주님.”
“네.”
“왜 노크 안 했어?”
“했는데.”
어머니는 피곤하다면서 먼저 누우셨고, 나는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딱 누웠다. 아버지한테는 책을 읽어 달라고 하고 자는 어머니의 등을 꼭 껴안았다. 어머니도 나한테 팔베개해 주고 꼭 안아 주셨다.
“옛날, 옛날에…….”
아버지는 내가 가져온 책을 읽어 주셨는데. 미안하지만 조금밖에 못 들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어머니도 토닥토닥해주시고 아버지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고. 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을 잤다. 내가 자는데도 자꾸만 두 분은 말을 하셨다. 그래서 깨어났는데도 눈을 안 떴다.
“아기들은 어떻게 하고.”
“유모 있고, 어머니 계시니까.”
“위험한 곳인데 우리 둘이 어떻게 가. 그러다가 둘 다 잘못되면.”
그때까지 피곤해서 그냥 자고만 있었는데. 어머니랑 아버지랑 얘기하는 거 들으니까 너무 무서웠다. 특히 나를 토닥토닥해주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 차가웠다.
“죽으려면 같이 죽어. 나를 남겨 둘 생각을 하지 말라고.”
“너는 이제 아버지인데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너 죽었다는 소식 듣고도 내가 애들 키우면서 멀쩡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반미치광이 돼서 바다에 뛰어드는 거 보고 싶으면…….”
나는 거기서 눈을 뜨고 말았다. 처음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너무 차가웠다. 내가 울면서 ‘아버지.’ 하니까 우리 아버지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리서. 안 잤어?”
“어머니 죽어요?”
내가 다 들었다는 거를 아는지 어머니가 얼굴을 굳히고 나를 안아 주셨다.
“무슨 소리야. 어머니가 왜 죽어.”
“아까 그랬잖아.”
결국 나는 어머니한테 약속 열 번을 하고, 맹세 다섯 번을 한 뒤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맨날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아버지한테 어머니한테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결국 어디에 가려고 했는데 안 가셨다. 나도 웃었고, 아버지도 웃었다.
어머니는 내가 구했다.
일기 끝.
* * *
엎드려 자고 있는 리서의 일기를 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엊그제 딸아이 때문에 아찔했던 순간이 떠올렸다. 들키지 않았으니 망정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꾸 젖을 짜준다고 다가오는 일린저를 피해서 집무실로 숨어들었으나 소용없었다. 그는 몇 달간 독수공방한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냐면서 나를 옭아매려 하는 것이다.
“같이 가면 될 문제야.”
근래 들어 바다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소식에 나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북쪽에서만 괴상한 짐승들이 발견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바다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방방곡곡 생기고 있으니 아이 둘이 있는 나로서는 이제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키지 못하면, 해결하지 못하면 리서가 예레카가 되었을 때 분명 힘들어할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확인하려고 했으나 일린저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나 되었냐고 그러면서 나를 막아 세우는 것이었다. 일린저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평상시 그와 모든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내가 할 일을 둘이 나누어 하면서 부담이 많이 덜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서부를, 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일린저는 내가 예레카일 때를 싫어했다. 혹여나 문제가 생겨, 그에게서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곳도 아닌데.”
“위험한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가는 거면서.”
“나 힘도 세잖아.”
“힘으로 따지자면 너보다 내가 낫지 않을까?”
나는 일린저에게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한번 마음이 틀어지면 굉장히 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연인을 넘어서 부부가 되어도 그의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예레카가 된 내가 주변의 마수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지난번에는 북부 예레카의 만남으로 파티에 함께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레번스를 임신하고 있는 중이어서 배가 많이 부른 상태였는데도 일린저는 주변에서 내게 춤을 신청하면 눈에 띄게 불쾌해했다. 어차피 내 지위가 높아서 남들이 예의상 한 번씩 물어보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정부 같은 것을 너그럽게 봐주는 사람이 아니야.’
‘정부?’
그의 감시에 지쳐서 파티 한구석에 가 같이 케이크를 먹던 중 일린저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정부라니. 평소 그런 얼토당토않은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나였다. 일린저는 아까 내 앞에 와서 인사한 사내애를 바라봤다.
올해 이드리하임에 입학했다며, 선배님이라고 능청을 떨며 간 사내애였다. 일린저는 굉장히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다. 올해 이드리하임에 입학한다고 했으니까 열일곱이었다.
이제 서른 줄에 막 들어서려는 우리 눈에는 저런 애가 남자애로 보이지 않을 법한데. 그저 어린아이 아닌가.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기려는데 일린저의 표정은 싸늘했다.
‘나한테 들키면, 리서랑 레번스 데리고 사라질 거야.’
‘뜬금없이 왜?’
그가 이럴 때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요즘 일 문제로 늦게까지 외출 두어 번을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마다 일린저의 표정이 그렇게 나쁘지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속사정은 전혀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속에서 담아두다가 그는 이렇게 은근히 내비치는데. 나는 행복하게 지내다가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날카롭게 나오니.
나는 그의 기분을 풀어 보고자 파티장을 나왔다. 함께 북부의 흰 정원을 거닐었다. 눈이 많이 쌓인 그곳을 걷을 무렵, 이드리하임에 입학할 때가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그때가 아쉽고, 아련했다. 생각해 보면 그와는 항상 다투느라고 바빴더랬다. 기분 좋게 학원에서 있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매일 진저리 치면서 그를 피해 다니기 일쑤였는데. 어느덧 우리 둘이 혼인해서 아이 둘을 낳고 있었다니.
‘나 질리지 않아?’
나는 이드리하임의 추억을 떠올리는 반면, 일린저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네가 왜 질려.’
‘나랑은 아이 둘이나 있으니까. 다른 남자랑도 한 번 손잡아 보고 싶고, 색다른 기분 느껴보고 싶을 수도 있잖아.’
‘하하!’
어이없는 그의 말에 나는 웃었다. 색다른 기분이라니.
‘너는 무슨 사랑을 색다른 기분으로 해?’
요즘 들어 그가 거울을 자주 보는 게 그런 이유에서였나. 나야말로 그가 바람 든 줄 알았다. 서른에 들어서는데도 그는 여전히 잘난 남자여서, 파티에 함께 오면 나야말로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다른 여자들처럼 그와 오래 함께 있을 수도 없고, 매일 일이다 분쟁이다, 밖으로 자주 다녀서 그에게 외로움을 주기도 했다.
까만 하늘에 빛이 터졌다. 하늘에서 터진 빛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그의 어깨에 기댔다. 나는 그의 손만 잡아도 마음이 든든한 지금이 좋았다. 예전에 벽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를 외롭게 만들었고, 다시 사랑을 고백해서 찾아왔음에도 그는 온전히 행복을 누리고 있지 못했다. 리서가 태어나기 전까지 내가 다른 남자랑 얘기만 해도 속상해서 끙끙 앓았던 남자였다.
부쩍 자신의 외모를 신경 쓰는 것도 예전에 내가 지겹다고 말했던 것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진심으로 지겨워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생 갈 상처를 남겼으니, 나는 그의 앞에서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다.
“같이 가.”
이번 조사를 위해 떠나는 것도 내가 보기엔 별로 위험하지 않은 것이었다. 단지 그런 현상이 있으니 와서 확인해 보라고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벽 안에서 홀로 나를 걱정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는 벽 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바다였다. 내가 있는 곳을 따라 파도를 치고, 나의 물결을 타고 있어야지 행복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단둘이 여행하네.”
몰아친 파도에 나의 벽은 마모되었다. 조금은 패이고, 무너지더라도. 나는 여기에 서 있고, 파도는 언제나 나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언제까지나.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