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왜 그래, 유리나?”
“데클란 씨는…… 마담 쟈니에트 집무실 안에 갇혀 있어요.”
유리나의 말에 나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집무실 안에? 그렇지만 거기에 로지에 도련님이 들어갔는데?”
그 말을 들은 유리나는 ‘헉’하고 숨을 거꾸로 들이켰다.
“아, 안 돼요! 마담 쟈니에트가 자기 집무실 안에 용병들을 잔뜩 배치해 놓았는데!”
이에 나와 유리나는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열었을 때.
“헉!”
나와 유리나는 동시에 기겁했다.
집무실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유리창은 전부 깨져있었고, 바닥 위에는 유리 파편과 쇠붙이들이 난장판으로 늘어져 있었다.
카펫 바닥 위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남자들과 마담 쟈니에트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몸뚱이들의 끝으로.
“……도련님?”
자기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로지에가 보였다.
나와 유리나는 급히 로지에를 향해 달려갔다.
“도련님, 왜 그래요? 어디 다치셨어요?”
“인페르나 소남작님, 괜찮으세요?”
“……사샤? 이레사 공녀님?”
나와 유리나의 목소리를 들은 로지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져 있었다.
비에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해 보였다.
“왜, 왜 울고 있어요, 도련님!”
화들짝 놀란 나는 급히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로지에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마담 쟈니에트를 가리켰다.
“마담 쟈니에트가!”
“마, 마담이 왜요?”
“나도 모르던 데클란 군의 비밀을 알고 있어!”
“……네?”
로지에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래서 울고 있는 거야? 고작 마담 쟈니에트가 본인은 모르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서?
아니, 그나저나.
지금 잡담을 할 시간은 없었다.
“이레사 공녀님, 데클란은 어디에 있지요?”
내가 유리나에게 급히 물었다.
“흐, 흐흐…… 데클란을 찾는…… 건가?”
등 뒤에서 끊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담 쟈니에트였다.
마력으로 이곳저곳을 얻어맞았는지 몰골이 영 말이 아니었다.
“너희는…… 데클란을 못 찾을 거다…….”
마담이 콜록콜록 마른기침을 하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못 찾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흐흐…… 데클란은 집무실에서 이어지는 비밀 공간에 갇혀 있지…… 마력도 안 통하는 특수한 공간에…….”
마담이 나를 조롱하듯 비소를 흘리며 말했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비밀 공간을 향하는 방법을 알지 못……,”
그때였다.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간 유리나가 한 책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구궁—.
그녀가 붉은 표지의 책을 빼내자, 책장이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담 쟈니에트의 얼굴이 창백히 변했다.
“그, 그걸 당신이 어떻게……!”
“마담 쟈니에트, 기억 안 나시나요?”
천천히 움직이는 책장을 바라보며, 유리나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날 가뒀던 건 바로 당신이었잖아요.”
“뭐……? 난 당신을 그곳에 가둔 적이…….”
“당신이 사람들을 시켜서 날 여기로 납치해왔을 때 말이에요. 기억 안 나나요?”
유리나가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납치……?”
유리나의 말에 로지에는 멍하니 굳어버렸다.
유리나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숨을 멈췄다.
“잠깐만요, 이레사 공녀님—”
“마담 쟈니에트, 당신이 원래 평민이었던 나를 납치해서 이레사 공녀로 꾸몄잖아요. 그리고 절 이레사 공작가로 보내기 전에 저 공간 안에 가둬놨었잖아요. 정말 기억 안 나요?”
“아…….”
쿵.
책장이 완전히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 뒤에 감춰져 있던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샤!”
꿈에서 그리워하던 사람이 서 있었다.
화창한 여름날, 햇살에 반투명하게 반사되던 붉은 빛의 갈색 머리카락이 눈앞에 살랑거렸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데클란.
정말 데클란이었다.
“데클란!”
나는 그대로 데클란을 향해 몸을 던졌다.
“살아 있었구나!”
“……내가 감히 널 놔두고 죽을 것 같아?”
그대로 나를 끌어안은 데클란이 중얼거렸다.
꼭 데클란다운 말이었다.
“데클란 군!”
로지에가 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클란 군! 무사해서 다행—”
“만지지 마세요.”
나를 한 팔로 끌어안고 있던 데클란이 다른 팔로 로지에를 철썩 쳐냈다.
시무룩해진 로지에를 바라보며 유리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뭐 어쩔 건데?”
마담 쟈니에트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녀의 목청은 찢어진 듯이 날카로웠다.
“곧 내가 고용한 용병들이 이곳에 도착할 거다. 너희들은 전부 다 포위된 거야!”
“세티프니가 저희를 위해 마차를 준비했다고 했어요. 위조된 귀족 가문 인장까지 제대로 달아두었으니, 추적당하지 않을 거예요.”
유리나가 마담 쟈니에트의 말을 무시하며 우리에게 고했다.
그 말을 들은 데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창을 가리켰다.
“이쪽인가요?”
유리나는 얼이 빠진 얼굴로 집무실의 문을 가리켰다.
“네? 아니요, 저쪽인데요…….”
“창문 깨고 나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그 말과 함께 데클란이 그대로 마력을 끌어냈다.
쾅! 콰쾅!
데클란의 마력이 향한 창문이 그대로 날아갔다.
유리는 물론이고, 창문의 뼈대까지 전부 다 없어졌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 하나 없이 말끔히.
데클란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도록 하죠.”
창문 아래를 내려다본 유리나는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자, 잠깐만요! 여기 밑으로 뛰어내린다고요? 이건 자살이에요!”
“마력 쓰면 안 죽어요.”
그렇게 대꾸한 데클란이 그대로 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 어어?”
졸지에 데클란의 품에 안긴 나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순식간에 풍경이 뒤바뀌었다.
난장판이던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 대신, 푸른빛의 하늘이 내 시야를 장악했다.
마치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연이 된 기분이 들었다.
몽실몽실 구름이 손가락 안에 잡힐 듯이 보였다. 저 멀리 아카데미 안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색의 점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데클란이 보였다.
당장 콧잔등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데클란의 목덜미를 감고 있는 내 팔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원래 마력 쓰면 이렇게 천천히 내려가?”
“아니.”
사뿐히 바닥 위로 내려온 데클란이 대꾸했다.
순간, 창문 위에서 유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전 평민이라 마력이 없다니까요!”
“공녀님, 걱정하지 마시고 제 손 잡으세요.”
“저 이러다 떨어져서 죽는 거 아니죠?”
“안 죽어요. 절 믿으세요.”
그러자 유리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남작님을 믿고 싶은데 안 믿겨져요!”
유리나는 그대로 로지에의 손을 꽉 잡았다.
그대로 유리나를 붙든 로지에는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쿵!
로지에와 유리나가 단번에 땅 위에 착지했다.
“……보통 저렇게 떨어져.”
데클란이 내게 중얼거렸다.
“그럼 아까 천천히 떨어진 건 뭐야?”
“네 얼굴 더 오래 보려고 마력 좀 썼어.”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데클란을 바라보았다.
“가, 갑자기 설레게 하지 마! 심장에 안 좋다고!”
한편, 로지에의 도움으로 내려온 유리나는 비틀거리며 우리에게 소리쳤다.
“마차는 저쪽에 있어요!”
우리는 그대로 집무실 건물의 뒤편으로 달려갔다.
그때 나는 로지에가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방은 왜 챙겨왔어요?”
그러자 이런 답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마담 쟈니에트한테 주기 싫어서.”
“아.”
나는 가방 안에 든 보석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보석들을 마담 쟈니에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강가에 갖다 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저기 있다!”
“놓치지 마라!”
마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데, 무장한 남자들이 우리를 따라붙었다.
마담 쟈니에트가 말한 용병들이 분명했다.
먼저 달려가던 로지에가 검을 뽑았다.
그러자 뒤에서 데클란이 외쳤다.
“도련님, 그 검 좀 줘 봐요.”
“어? 왜?”
로지에는 반문하면서도 일단 데클란에게 제 검을 건네주었다.
검을 받은 데클란은 제 팔을 길게 뻗었다.
그러자 마력이 검 끝까지 발산되었다.
콰쾅! 쾅!
데클란의 마력이 그대로 용병들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길을 막고 섰던 이들이 전부 쓰러졌다.
“어서 마차 안으로 들어가세요!”
로지에가 마부석에 올라타며 외쳤다.
나와 데클란, 그리고 유리나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로지에가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도련님! 가는 길에 크레스랑 키오 오빠 잊지 말고 데려가야 해요!”
“알았어!”
말고삐를 잡은 로지에는 그대로 아카데미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마차 창문을 통해 밖을 주시했다.
크레스와 키오가 준비한 연막탄에서 나온 연기는 거의 다 날아간 상태였다. 때문에 앞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둘 다 저기 있어요, 도련님!”
내가 마부석을 향하는 창문을 향해 외쳤다.
키오와 크레스는 인파들에 섞여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은 집무실 건물에서 뛰어나온 비서들과 행정관들을 피해 얼굴을 숙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여기에요!”
내 목소리를 들은 키오와 크레스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마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발견한 비서들과 행정관들이 소리쳤다.
“저, 저 마차는 뭐야?”
“저 사람들 잡아요!”
그러나 오픈 하우스에 참석한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은 영문을 모른 채 멀뚱히 서 있었다. 그들은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키오와 크레스가 마차까지 달려오는 데 막는 이들은 없었다.
마차 위로 먼저 뛰어오른 크레스는 식겁했다.
“이, 이레사 공녀님! 주, 주, 죽으신 거 아니었어요?”
“……네, 안 죽었어요.”
이레사 공녀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데, 데클란? 너도 살아 있었어?”
크레스는 데클란을 보고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
데클란은 그런 크레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키오와 크레스가 마차 안으로 올라탄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문을 쾅 닫았다.
“도련님, 다 탔어요!”
“알았어!”
내 신호를 받은 로지에가 말고삐를 세차게 흔들었다.
흥분한 말들이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마차는 순식간에 오스첸스 아카데미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