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출세하셨네요. 왕세자 전하에게 직접 의뢰도 받고.”
로지에의 말에 마담 쟈니에트는 빈정거렸다.
“아니요, 오히려 로지에 님에게 감사드려야지요. 덕분에 섭섭지 않은 보수를 받게 되었으니.”
마담 쟈니에트는 굳게 닫힌 집무실 문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사전에 왕세자가 보낸 사람들에게 정보를 입수했다. 로지에가 사람들을 데리고 데클란과 이레사 공녀를 되찾으러 올 것이라고.
‘무슨 수로 두 사람이 오스첸스 아카데미 안에 있는 걸 알았지?’
로지에가 어떻게 두 사람을 정확히 추적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왕세자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로지에를 처리하기로 했다.
그 명령을 받은 마담 쟈니에트는 이미 이 건물 안 사람들에게 명령해 두었다. 이 집무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절 죽이는 대가로 얼마 받으시기로 하셨나요?”
로지에가 대뜸 물었다.
마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왜 궁금하시죠? 더 많은 돈을 제시해서 목숨을 구걸해보려는 건가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요. 이 바닥 장사는 전부 다 신뢰로 하는 거라.”
“으음, 딱히 마담에게 목숨 구걸할 생각은 없는데요……. 그저 왕세자가 제 목에 얼마나 돈을 걸었는지 궁금해서요.”
“……별걸 다 궁금해하시네요. 뭐,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그냥 말씀해드리지요. 대가로 금화 300닢을 받기로 했어요.”
“300닢?”
로지에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 모습을 본 마담 쟈니에트는 코웃음을 쳤다.
뭐야, 저 반응은?
“왜요, 너무 큰 돈인가요? 하긴, 찢어지게 가난한 영지 출신의 귀족이 만져보기 힘든 돈이겠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로지에가 진지하게 고심하는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중에 인페르나 영지로 돌아가면 어머니에게 잔소리 들을 것 같아서요.”
“뭐요?”
“얼마나 약해 보였으면 고작 금화 300닢에 팔렸느냐면서 혈압이 오르실 것 같아요. 그러다가 쓰러지시면 어쩌지…….”
스릉—.
로지에가 제 검을 빼 들었다.
“제가 효자라서 어머니 쓰러지시는 건 못 보겠어요.”
마담 쟈니에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싸우겠다고요?”
“네.”
로지에는 선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 300닢짜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실래요?”
명백한 도발이었다.
* * *
창가로 달려간 나는 바깥이 가장 잘 보이는 창문을 골랐다.
‘이거면 되겠다!’
창문을 있는 힘껏 밀친 나는 호주머니 안에서 꺼낸 손거울을 밖으로 내밀었다.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게다가 중천을 향해 떠오르는 해가 참 밝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거울을 이용해 햇빛을 반사했다.
거울에 맞부딪힌 햇살이 반짝거리며 눈부시게 빛났다.
바깥으로 분주하게 걷고 있는 신입생들과 그의 부모님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엉거주춤하게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바로 키오와 크레스였다.
‘저기다!’
나는 그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거울을 흔들었다.
반짝거리는 빛을 본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와 두 눈이 딱 마주친 두 사람은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내 신호를 받았다는 뜻이었다.
‘됐다!’
재빨리 거울을 거둬드린 나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서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세상에, 저기 누군가가 쓰러져 있어요!”
“당장 가서 경비들을 불러와요!”
마담 쟈니에트 밑에서 일하는 비서들과 행정관들이었다. 복도에서 난 소란을 듣고 사무실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급히 창문을 닫았다.
“어라? 누구……?”
내가 창문을 원상복구 하기가 무섭게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경을 낀 여자였다. 옷차림으로 미뤄보아 행정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서 같았다.
나는 얼른 비굴한 얼굴을 자아냈다.
“도와주세요!”
비서 앞으로 달려간 나는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황한 비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네, 네에? 무슨 일인데요? 그,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예요?”
“딱 보면 모르시겠나요? 신입생이에요!”
내일모레 스무 살 다 되어 가는 주제에 사기를 치려니 양심에 찔렸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내 작은 체구를 언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까!
“무슨 일이에요?”
“저기 뒤편에 마담께서 데리고 오신 용병이 쓰러져 있어요!”
대화 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도리어 잘 됐다.
나는 재빨리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저는 이번에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인데요! 저기 밖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상한 사람들?”
비서들과 행정관들의 이목이 전부 내게 쏠렸다.
다행히 이들 중 그 누구도 내가 신입생이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신입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다. 왜냐하면 애초에 신입생은 이 건물 안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모두가 당황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그들의 사고 흐름을 방해하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저기 밖에 이상한 폭탄? 같은 거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포, 폭탄?”
내 말에 모두가 기겁했다.
나는 그들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네! 엄청나게 커다란 폭탄처럼 보였어요!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외치면서 나는 창문 너머를 흘끔 바라보았다.
크레스와 키오는 미리 준비해온 물건들을 가방 안에서 꺼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더더욱 비명을 지르며 혼신의 연기를 다 했다.
“저희 다 죽어버릴 거예요! 살려주세요!”
“하, 학생!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저기 밖에 폭탄 든 아저씨들 안 보이세요?”
그러면서 나는 바깥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창밖으로 쏠린 그 순간.
나는 그대로 계단을 향해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 하, 학생! 어디 가는 거—”
순간.
쾅! 콰쾅!
바깥에서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 소리의 여파로 창문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꺄아아악!”
“포, 폭탄이다!”
그제야 내가 빈말을 한 게 아님을 깨달은 비서들과 행정관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미안한데 사실 진짜 폭탄 아니에요!’
계단으로 날쌔게 달리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크레스와 키오가 가방에서 꺼낸 건 연막탄과 폭죽이었다.
폭죽이 맨바닥에 터지면서 폭발음 같은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연막탄이 터지면서 자욱한 연기를 피워냈다.
멀리서 보면 폭탄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종의 길거리 공연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저 자욱한 연기 안에서 알록달록한 폭죽들이 반짝이는 팡파르와 함께 터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쯤 저기 모여 있던 신입생들과 부모들은 이게 환영회의 일부인 줄 알고 있을 테다.
특히 어린 신입생들이 좋아하며 짝짝 손뼉 치고 있겠지.
괜히 아무런 죄 없는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던 내가 고안한 방법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건물 안의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폭탄이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침입한 게 분명해요!”
“어떡하지? 저러다 신입생 다치면 저희 해고당하는 거 아니에요?”
행정 건물 안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그들을 잽싸게 피하며 3층 위로 올라갔다.
웅웅—.
마력석의 반응이 점점 강해졌다.
‘여긴가?’
3층의 방들을 하나씩 돌며, 나는 마력석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렇게 방 하나하나를 조사하고 있던 때였다.
계단 아래 창고를 지나가던 그때였다.
마력석이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여기다!’
나는 급히 창고 문 앞에 귀를 대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창고의 문고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단단히 걸어 잠가 둔 거야……!’
문고리를 철컥철컥 당기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등 뒤에 숨겨둔 총을 꺼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총소리를 듣고 남아있는 다른 용병들이 몰려올 것 같았다.
‘어떡하지?’
식은땀을 흘리며 문고리를 바라보고 있던 때였다.
끼이익—.
창고 문고리가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화들짝 놀란 나는 뒤로 펄쩍 뛰었다.
창고 문이 완전히 열린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오셨군요.”
열린 문 뒤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다, 당신은……!”
* * *
마담 쟈니에트는 로지에를 노려보며 이를 꽉 악물었다.
“지금 혼자서 이 많은 장정을 상대하겠다는 건가요?”
로지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나친 자만은 금물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요, 로지에 님?”
그러자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배운 적 없는데요. 아카데미에서 배운 게 없어서 말이죠.”
쾅!
마담은 그대로 책상을 내리쳤다.
“당장 죽여버려요!”
마담의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들이 로지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기습에 로지에는 즉각 반응했다.
그가 검은 묘기를 부리듯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검의 끝이 우측에서 날아드나 싶더니, 곧 반대쪽을 찔러 들었다.
순식간에 궤적이 바뀐 검은 남자들을 정확히 노렸다.
“뭐, 뭐야?”
뒤늦게 남자들이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와장창!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유리창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저 멀리 무언가가 반짝이며 나가떨어졌다.
한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무기였다.
“이, 이런……!”
순식간에 비무장 상태가 된 남자는 아연실색이 되었다.
로지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콰앙!
로지에의 검에서 마력이 떨쳐 나왔다.
용의 꼬리처럼 늘어진 마력은 날카로운 채찍처럼 남자를 그대로 휘감았다.
“아악!”
단말마를 내뱉은 남자가 그대로 카펫 위에 쓰러졌다.
“……!”
예상치 못한 격변이었다.
순식간에 자신들의 동료가 당한 것을 본 다른 남자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와, 왕세자 전하께서는 분명히 별 볼 일 없는 영식이라고…….’
‘고작 남작가 핏줄인데 마력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쓴다고?’
등 뒤로 절로 식은땀이 났다.
남자들은 순식간에 직감했다.
자신들이 대면하고 있는 이는 보통 상대가 아님을.
이 상황을 지켜보던 마담 쟈니에트가 악을 썼다.
“뭣들 하는 거예요? 상대는 고작 한 명이라고요!”
그 말에 주춤거리던 남자들은 도로 무기를 쫙 쥐어 잡았다.
그때였다.
쾅! 콰쾅!
창문 밖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창밖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밖에 무슨 일이지?”
당황한 마담 쟈니에트와 남자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창밖으로 향했다.
로지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앗!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로지에의 검이 그대로 남자들을 향했다.
검 끝에 모여 있던 마력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적들을 타격했다.
로지에의 검은 흡사 자기 의지를 지닌 하나의 생물체 같았다.
그 검은 마치 모든 적을 꿰뚫는 것처럼 능숙하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검이 움직이는 궤도에 따라 남자들이 하나씩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지에가 검을 거두었을 때.
—쿵!
마담 쟈니에트 앞에 서 있던 모든 장정이 쓰러졌다.
로지에는 가볍게 검에 묻어난 이물질을 털어냈다.
“나중에 왕세자 전하에게 보고드릴 때, 보수비로 준 금화 300닢이 너무 적어서 실력 있는 용병을 고용하지 못했다고 말씀드리세요.”
손등으로 볼에 묻은 자국을 닦아낸 로지에가 마담 쟈니에트에게 고했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고작 금화 300닢에 팔렸다는 사실에 단단히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