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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172)화 (172/177)

172화

역시나 우리의 예상이 맞았다.

처음부터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을 찾아온 게 정답이었다.

오스첸스 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강하게 반응하는 마력석을 발견한 그 날.

여관으로 돌아간 나와 로지에는 우리의 기억을 더듬으며 오스첸스 아카데미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나는 평민 학생들이 사용하던 공간을, 그리고 로지에는 귀족 학생들이 사용하던 건물들을 위주로 지도에 담았다.

직접 그린 지도를 살피던 중, 나와 로지에는 서로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

만일 데클란과 이레사 공녀가 정말 오스첸스 아카데미 안 어딘가에 갇혀 있다면.

그들은 분명히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 건물 안에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다른 건물들은 전부 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출입이 가능해요.”

수업을 진행하는 교실이나, 학생들의 식사가 배식되는 식당. 혹은 연무장과 같은 훈련 공간.

오스첸스 아카데미의 대부분 공간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

단 한 건물만 제외하고.

그곳은 바로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이 있는 행정 건물이었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마담 쟈니에트의 호출이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허가증이 있어야만 했다.

바로 나와 로지에가 지금 서 있는 이 건물.

“내가 마담 쟈니에트를 최대한 붙잡아 둘 테니까, 사샤 양은 데클란 군과 이레사 공녀님을 찾는 데에만 힘쓰면 돼.”

로지에가 내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석을 꽉 쥐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으로 바지 주머니 위를 슬쩍 눌렀다.

가지고 온 물건은 주머니 안에 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이 다시 돌아왔다.

“마담 쟈니에트께서 지금 당장 만날 수 있으시답니다.”

“고맙군. 이건 수고비다.”

로지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하인에게 다른 보석을 하나 더 건네었다.

하인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헤벌쭉이 되었다.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로지에와 나는 하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 기억에 따르면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은 3층에 있었다.

1층과 2층 계단을 오르며, 나는 목에 걸어둔 마력석의 반응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오픈 하우스 당일이다 보니 건물 안은 무척이나 분주해 보였다.

마담 쟈니에트의 비서와 서기관들이 각종 자료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계단 근처에 웬 무장한 남자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남자들은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하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하나같이 크고 우락부락한 것이 마치 용병처럼 보였다.

‘뭐지?’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예전에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로 불려왔을 때 저런 사람들은 없었는데.

로지에 역시 이를 발견한 것인지 하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이곳에 재학했을 때와 많이 달라졌군.”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원래 이 건물 안에 저렇게 무장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 오픈 하우스여서 안전을 위해 경비를 세운 건가?”

로지에는 은근슬쩍 하인을 떠보듯이 물었다.

이미 로지에의 보석에 넘어간 하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니요, 딱히 오픈 하우스여서 그런 건 아닙니다. 일주일 전부터 저렇게 경비를 세우기 시작하셨더군요.”

“경비? 그럼, 저자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아닌 건가?”

“예. 제가 듣기로는 마담께서 외부로부터 고용한 분들이라고 합니다.”

외부에서 고용한 자들이라…….

나는 조심스럽게 복도 끝자락에 선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왕세자가 보낸 사람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 내 손바닥에 잡힌 마력석은 이전보다 더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내가 꽉 쥐고 있지 않으면 당장 내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 말은 즉, 이곳에 데클란과 이레사 공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곳입니다.”

하인은 로지에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곳은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 앞이었다.

“안내해줘서 고마워. 나 혼자 마담을 독대하고 싶은데, 내 시종이 쉴만한 곳으로 안내해 주지 않겠나?”

“예, 알겠습니다!”

뇌물의 효과는 강력했다. 로지에의 부탁을 들은 하인은 냉큼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따라오시지요. 사용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인을 뒤따라가기 전, 나는 로지에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긴장하지 말자, 사샤야!’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하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로지에가 집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로지에 도련님, 믿을게요!’

아카데미 수석 졸업 출신의 로지에가 현란한 말재주로 마담 쟈니에트를 오랫동안 집무실에 잡아둘 수 있기를 빌었다.

“이곳에서 쉬시면 됩니다.”

하인은 나를 2층에 있는 사용인들의 휴게실로 안내했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거나 잠시 간식을 먹는 공간이었다.

물론 마담 쟈니에트는 자기 사람들을 부려 먹기를 좋아했다. 따라서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그쪽 도련님이 볼 일을 다 보시면 다시 호출하러 오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하인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하인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인이 내가 있는 곳에서 완전히 멀어졌음을 확인한 뒤, 나는 휴게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무도 없네.’

건물의 복도는 텅텅 비어있었다.

오픈 하우스 때문에 다들 자기 사무실에서 서류 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마력석을 쥐었다.

건물 밖에 있을 때보다 안에 들어왔을 때 마력석의 반응이 더 강해졌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2층.

1층에 있을 때보다 마력석이 더 격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석의 반응이 가장 강했던 곳은 3층이었다.

‘설마, 3층에 있는 건가?’

쿵, 쿵.

심장이 미치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3층을 확인하려면 다시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러려면 다시 그 무장한 남자들을 지나쳐야 했다.

‘……그래도 일단 올라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어이.”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인을 따라오면서 보았던 무장한 남자 한 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의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당신, 여기서 일하는 사람 아닌 것 같은데. 뭐 하는 거지?”

나는 최대한 사회적인 미소를 쥐어 짜냈다.

“아, 저는 지금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 안에 있는 인페르나 소남작님 시종인데요—”

“휴게실에서 기다리지, 어딜 가려고?”

나는 급히 두 손을 뒤로 감추었다.

“소남작님이 깜빡하고 제게 맡기고 간 게 있어서요. 지금 빨리 전달해 드려야 해요.”

나는 잽싸게 거짓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자는 쉽게 속아 넘어오지 않았다.

“그게 뭔진 몰라도, 나한테 줘. 내가 대신 전달하지.”

“예? 안 돼요. 중요한 거라서 제가 직접 드려야 해요.”

“그게 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보자.”

“아하하, 이거 정말 정말로 중요한 건데…….”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전히 두 손을 뒤로 감춘 채였다.

“저희 소남작님에게 정말 잘 전달해 주실 건가요? 보여드릴 테니 가까이 와 보세요.”

내 말에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투덜투덜했다.

“도대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건데? 무슨 가보라도 되나 봐?”

그러면서 남자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그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활짝 웃었다.

“네, 가보 맞아요.”

“엉?”

“잘 보세요!”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진 순간, 나는 내 등 뒤에 숨겨두었던 내 주먹을 날렸다.

퍽!

내 오른쪽 주먹이 그대로 남자의 인중에 정확히 박혔다.

인페르나 남작가의 가보! 필승의 비법! 선빵!

예상치 못한 일격에 남자는 켁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가 온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도 큰 소란이었다.

“뭐, 뭐야?”

“방금 무슨 소리가 났는데?”

저 멀리서 놀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 육중한 소리를 들은 다른 남자들이 몰려올 것 같았다.

‘제기랄!’

마음이 급해진 나는 재빨리 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넣었다.

‘이대로 된 거, 바로 키오 오빠랑 크레스 투입이다!’

내 주머니 안에 넣어둔 무언가를 꺼낸 나는 냅다 창가로 달려갔다.

* * *

한편, 로지에는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예상치 못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로지에 님.”

집무실 정중앙에는 마담 쟈니에트가 자신의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대여섯 명의 무장한 장정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손에 무기를 빼 들고 있었다.

“…….”

남자들을 잠시 쳐다본 로지에는 그대로 마담 쟈니에트 앞으로 걸어갔다.

남자들은 로지에를 주시하며 각기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꽉 쥐었다.

‘함정이었군.’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뗀 로지에는 마담 쟈니에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입니다, 마담 쟈니에트. 그간 잘 지내셨나요?”

그 태평스러운 안부 인사에 마담 쟈니에트 역시 화답했다.

“그럼요. 로지에 님이 졸업한 뒤 아주 잘 지냈답니다.”

그러면서 마담 쟈니에트는 태연하게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낀 반지들이 햇살을 반사하며 로지에의 시선을 찔렀다.

“반지들이 늘었군요.”

로지에가 마담 쟈니에트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요즘 아주 큰 건을 하나 물어서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로군요. 그러고 보니 뒤에 좋은 호위들을 두셨고…….”

로지에는 마담 뒤에 선 남자들을 흘끔거렸다.

남자들은 모두 마담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당장 로지에에게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로지에는 가볍게 그들을 무시했다.

“……제가 기부를 해도 마담의 성에 차지 않을 것 같군요.”

“제 주제를 잘 아시네요, 로지에 님. 미안하지만 저는 당신의 푼돈을 받으려고 이곳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게 아니랍니다.”

마담 쟈니에트는 히죽 웃으며 로지에를 바라보았다.

“로지에 님은 사람을 찾으러 이곳에 오신 거지요?”

“다 알고 계시네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마담 쟈니에트. 데클란 군과 이레사 공녀님은 어디에 있지요?”

그러나 마담 쟈니에트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로지에 님은 오늘 원하시는 사람들은 찾지 못하실 거예요.”

마담이 자신의 등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남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 날카로운 칼날들을 바라보던 로지에는 마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담 쟈니에트, 저를 죽이실 건가요?”

“네. 왕세자 전하께서 당신을 죽여도 된다고 명령하셨거든요.”

그런 말을 하는 마담의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두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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