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신체검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평민인 척하며 특수 부대에 남아 있으려고 했던 귀족 남자는 그대로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 누구도 그 남자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국왕 폐하를 속이려고 한 것이니 큰 처벌을 받겠지?’
‘혹시 처형당하는 거 아냐?’
‘에이, 그래도 귀족인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남자와 어느 정도 안면이 트였던 부대원들은 서로 이마를 맞대며 속닥거렸다.
우리는 모두 그 남자가 어떻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러나 훈련관은 그 남자의 행방에 대해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다.
대신 훈련관은 키오를 지목했다.
“이름이 키오라고 했나?”
“네, 네넵!”
키오는 잔뜩 긴장한 채 허리를 빳빳하게 폈다.
“지금 당장 이레사 공녀님이 있는 백조궁으로 이동해라.”
그 말과 함께 훈련관은 왕궁 내에 일하는 하인 한 명을 불러다가 키오에게 길을 안내하도록 했다.
“이레사 공녀님 앞에서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여 실수하는 일 없도록 하여라.”
“아, 알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혹시라도 실례를 저질렀다가는 공녀님의 약혼자 되시는 라이렌 왕자님이 너를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훈련관의 강건한 훈계에 키오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어찌나 후들후들 흔들리던지 저러다가 관절이 나가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었다.
척 봐도 지나치게 긴장한 게 티가 났다.
‘저렇게 긴장할 필요 없는데…….’
나는 키오를 향해 딱한 눈길을 던졌다.
이런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키오가 나를 향해 절실한 시선을 돌려주었다.
‘누님, 저 이제 어떡해요!’
그는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키오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낑낑거리며 사라졌다.
‘……그나저나, 이레사 공녀는 도대체 왜 키오 오빠를 부른 거지?’
나중에 키오가 돌아오면 그에게 꼭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어야지.
그렇게 다짐한 나는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훈련관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훈련관이 이번에 우리를 이끈 곳은…….
“검 한 자루씩 잡아라.”
……어제 우리를 굴렸던 연무장이었다.
연무장 안에는 다른 훈련관들이 여러 명 대기하고 있었다.
“국왕 폐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준비가 되었나, 제군들!”
훈련관이 우리를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준비 안 됐다고요, 제기랄!
내게 주어진 진검을 꽉 쥔 나는 속으로 그렇게 울부짖었다.
그 뒤로 또다시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 * *
“으윽, 근육이 끊어질 것 같아…….”
“이러다 저희 다 과로로 죽는 거 아니에요?”
훈련이 끝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모두 1층에 있는 로비 공간에 축 늘어졌다.
몇몇은 아예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로 맨바닥에 뻗어 있었다.
“사샤 씨는 힘들지 않으신가요?”
마침 옆에 서 있던 부대원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안 힘들겠어요. 지금 바로 침대 위에 누워서 자고 싶은데요.”
“정말요? 조금 의외네요.”
“뭐가 의외예요?”
“사샤 씨는 훈련 내내 힘든 기색이 하나도 없으셨잖아요. 그리고 지금 저희들 중 가장 말짱해 보이고요.”
그 말에 마침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부대원들도 끼어들었다.
“맞아요. 사샤 씨는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훈련 중에 한 번도 쓰러지지 않으셨잖아요. 멋져요!”
“솔직히 사샤 씨 처음 봤을 때 체구도 작고 힘도 없어 보여서 걱정했는데, 다 제 편견이었네요. 존경합니다.”
“아하하…….”
난데없는 칭찬 퍼레이드에 나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이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그저 웃음만 나왔다.
사실 나도 훈련 내내 힘들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왕궁 병사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훈련관들은 과연 그 직책에 맞게 사람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훈련관들은 우리의 한계점을 알았다.
특히 우리가 평민이기에 마력을 쓰지 못한다는 점, 그래서 검을 쓸 때 근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리고 훈련관들은 우리를 한계점 너머로 굴리지만 않으면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덕분에 오늘 오후 내내 우리는 훈련관들이 시키는 극한 훈련에 도전했다.
훈련관들이 우리에게 시킨 훈련은 정말 기발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서 나무에 매달려서 훈련관들이 던지는 장애물들을 한 손으로 베거나.
길쭉한 나무 목마 위에 올라타 상대방과 검술 대련을 하거나.
혹은 오리걸음으로 걸어 다니며 목표 지점까지 10초 이내에 달려가 검으로 찌르기 등등.
무슨 의도로 우리에게 이런 훈련을 시키는지는 알았다.
문제는 그 훈련들이 너무나도 고난도라는 것이다!
훈련 도중에 몇 번이나 이대로 담장을 뛰어넘어 탈주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뒤이어 드는 생각에 나는 그 충동을 억눌렀다.
‘이레사 공녀를 지켜야 해.’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있는 다른 특수 부대원들은 데클란보다 훨씬 못했다. 이런 녀석들이 이레사 공녀를 잘 보필하며 호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조금 실례인 생각이었지만, 이런 비실비실하고 밋밋한 놈들보다는 차라리 내가 적격이다.
‘데클란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속으로 다짐한 나는 이를 꽉 악물고 훈련을 계속 전임했다.
그리고 부대원들은 그러한 내 모습을 보고 괜한 오해를 한 모양이다.
‘뭐…… 그래도 칭찬은 들으면 좋네.’
굳이 칭찬을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다른 부대원들은 내가 쑥스러워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사샤 씨. 우리 모두 다 사샤 씨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요.”
“맞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사샤 씨가 저희들 중에 가장 실력이 좋은 것 같아요.”
이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급히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하지만 부대원들은 오히려 나를 더 다독였다.
“사실 오늘 훈련 때 검술 대련에서 저희 중에 사샤 씨를 이긴 사람이 없잖아요.”
“맞아요. 사샤 씨가 정말 칭찬받을 만하니까 칭찬하는 거예요.”
“고마워요…….”
다른 부대원들의 말에 내 심장이 징, 하고 울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니 마음 한편이 포근해졌다. 오늘 하루 고생한 게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와 다른 부대원들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던 그때였다.
쾅!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울렸다.
‘뭐야?’
화들짝 놀란 우리의 이목이 절로 굉음이 터진 곳으로 향했다.
우리의 시선에 닿은 곳은 문이 제멋대로 걷어차인 채 열려있는 방이었다.
그리고 방문 앞에는 핼쑥해진 인상의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어, 저 사람들은…….”
“쟝이랑 베센이잖아?”
그랬다.
어제 감히 날 습격하려고 했다가 역관광 당해버린 놈들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벌써 나온 거야?’
자기들이 내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똑같이 줄로 묶어서 옷장 안에 처박아뒀는데…….
‘하긴, 안 그래도 오늘까지 아무도 녀석들을 발견 못하면 내가 밤에 몰래 가서 풀어주려고 했었지.’
혀를 쯧, 하고 찬 나는 쟝과 베센을 흘겨보았다.
두 사람 모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모양인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이 미친 여자가!”
“거기 가만히 서 있어!”
쟝과 베센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며 고함을 내질렀다.
두 사람의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나무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당황한 부대원들이 쟝과 베센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신들은 어디 있다기 이제 나온 거예요?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위험하게 시리, 손에 뭘 들고 덤벼드는 거예요!”
부대원들에게 붙들린 두 사람은 방망이를 위협적으로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이거 놔! 저 여자 죽여버릴 거야!”
“진정하세요! 다들 왜 이러시는 거예요?”
부대원의 말에 쟝과 베센이 내게 삿대질하며 고압적으로 외쳤다.
“저 여자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줄 알아? 우릴 총으로 공격했어! 그 뒤로 우릴 묶어다가 방에 가둬놨다고!”
쟝과 베센의 말을 들은 부대원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사샤 씨가 두 분을 묶어서 방에 가둬뒀다고요?”
“그래! 그래서 오늘 훈련에도 못 갔잖아! 저 여자 때문에 우리 인생 망했다고!”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여전히 인상을 찡그린 채 쟝과 베센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탈출했으면 당장 도망이나 칠 것이지…… 왜 굳이 내 앞에 나타난 걸까?
‘왜지? 도망간다는 발상 자체를 못 하는 건가?’
쌍으로 멍청하기도 참 힘든데.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았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은 이렇게나 동등한 수준으로 멍청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한테 정말 맞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는 건가?’
그렇게 곰곰이 쟝과 베센의 지능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데, 부대원들이 혼란스러워하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사샤 씨, 지금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나요? 정말 사샤 씨가 이분들을 공격하고 묶어서 방에 가둬둔 거예요?”
부대원들의 질문에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맞아요.”
“봐! 우리 말이 맞잖아!”
쟝과 베센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부대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샤 씨,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정당방위였어요.”
내 입술로부터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청명하게 흘러나왔다.
“정당방위라니, 그게 무슨…….”
“일단 다들 절 따라와 주실래요?”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부대원들을 내 방으로 안내했다.
부대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내 뒤를 따랐다.
몇 명의 부대원들은 씩씩거리고 있는 쟝과 베센을 억지로 제압하며 2층으로 이동했다.
계단으로 타고 올라가 내 방 앞에 선 나는 방문을 열었다.
“이 자국들이 보이시나요?”
나는 문 주변에 남아 있는 움푹 파인 자국들을 가리켰다.
“이건…….”
”어젯밤에 제가 총탄을 쏜 자국이에요.”
나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부대원들에게 설명했다.
“어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두 눈을 떠보니 쟝과 베센 씨가 제 방 안에 있더라고요.”
내 말을 들은 부대원들은 쟝과 베센을 향해 단번에 고개를 돌렸다.
“사샤 씨 말이 사실이에요?”
“아, 아니, 우리는…….”
당황한 쟝과 베센은 말을 더듬었다. 두 사람은 ‘왜 문가에 저런 자국이?’라고 되묻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재빨리 내 입장을 밝혔다.
“전 쟝과 베센 씨에게 왜 제 방에 왔는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제가 특수 부대에 있는 게 마음이 안 든다고, 절 해치려고 했어요. 그래서 전 총으로 두 사람을 제압해서 묶은 뒤, 방에 던져넣었을 뿐이에요.”
깔끔한 정리였다.
부대원들은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하며 그대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당신들, 제정신이에요? 아무리 방 배정 때 불만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같은 부대에 잠시라도 속해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런 파렴치한 짓을 꾸민 겁니까!”
부대원들의 시선이 쟝과 베센에게 화살처럼 꽂혔다.
그제야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쟝과 베센은 주춤거렸다.
“그, 그렇지만! 저 여자가 저희를 묶어서 방에 가뒀다고요!”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여요? 사샤 씨 말대로 정당방위잖아요!”
야밤에 남자 둘이 자고 있는 사람의 방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의뭉스러웠다.
거기다가 쟝과 베센은 방 배정 때 아주 노골적으로 내게 불만감을 표현했던 전적이 있었다.
“이놈들을 당장 훈련관님에게 끌고 갑시다.”
“이 새끼들은 남자의 수치, 아니. 인류의 수치예요!”
부대원들은 그대로 쟝과 베센에게 덤벼들었다.
아무리 방망이로 무장한 쟝과 베센이라도 열 명이 넘는 특수부대 부대원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쟝과 베센은 다시 밧줄로 묶인 채 부대원들에 의해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숙소에 남은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멍청이들.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 도망갔어야지…….’
역시 적자생존은 과학이다.
이런 식으로 인류의 역사는 도태된 지능을 가진 인간들을 배제하는구나.
참고로 문가에 남은 총탄 자국은 내가 나중에 낸 것이다.
어젯밤에 쟝과 베센이 내 방에 함부로 침입했을 때, 나는 총탄을 한 알도 낭비하지 않고 전부 그들에게 명중했다.
놈들을 옷장 안에 처넣고 난 뒤, 나는 혹시나 몰라서 문가를 향해 총탄을 여러 발 쏘았다.
그래야지 내가 정당방위로 총을 썼다는 증거를 남길 수 있으니까.
‘미리 수를 써두길 잘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쟝과 베센을 훈련관에게 넘기고 돌아온 부대원들이 내게 다시 다가왔다.
“저기, 사샤 씨…….”
“네?”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부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샤 씨. 어젯밤에 많이 놀라셨겠어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니, 저희에게 말해주시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 괜히 이런 일로 더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샤 씨…….”
어째선지 내 말을 들은 부대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째선지 모두가 감동한 눈치였다.
아니, 왜 이 타이밍에 단체 호감도가 올라가는 건데?
그때였다.
“사샤 누님!”
쾅, 소리와 함께 숙소의 대문이 열렸다.
그 뒤로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돌아왔어요, 사샤 누님!”
키오였다.
이레사 공녀에게 불려갔던 키오가 돌아왔다.